호들갑 독일문학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고, 청명한 하늘이 높으니 여행 생각이 저절로 났다. 단풍놀이를 가고 싶다는 말을 사무실에서 던지는데, 아뿔싸 사내 산악 동호회 총무에게 딱 걸렸다. 영락없이 주말에 직장동료들과 산행이 결정되어 주말이 전혀 기다려지지 않는 상황이 되었는데...
“선선한 바람이 솔솔 불어와 방심하고 말았군. 역시,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말조심해야지. 여행은 모름지기 아무도 나를 모르고, 나도 그들을 모를 때가 제맛인데 말이야. 어떡하냐. 주6일제 하는 기분 들겠네. 쯧쯧쯧. 내가 하나 조언해 줄까? 독서를 통해서 낯선 여행의 감각을 체험해 보면 어때? 그렇지 않아도 이번에 페르시아라는 낯선 여행지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 <페르시아에서의 죽음>이 나왔는데 말이지. 테헤란부터 이란의 지역을 다니면서 화자가 그려내는 풍경과 이야기가 낯설다 보니 더 상상력을 자극하더라고.
종소리를 내며 사막을 건너는 상인들, 끝없이 펼쳐지는 평원을 달리는 자동차, 천막과 정원, 왕궁과 신전. 작가가 기자 출신이라 그런가? 관찰하는 묘사들이 독특하고 감각적이더라고. 그리고 낯선 곳에서 여행에 묘미가 뭐겠니. 사랑 아니겠니? 1부에서는 낯선 여행지 묘사를 통해 여행기의 재미를 알려준다면, 2부에서 화자도 여행지에서 만난 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 그 여자는 아버지의 감시와 통제를 받고 있어서 화자와의 만남도 굉장히 방해를 받아. 애달픈 사랑 얘기가 예상되지 않니? 개인적으로 사랑 얘기는 자고로 어긋나야 더욱 애틋해지는 거 같아.
화자? 여자야! 그래! 레즈비언 소설이기도 해. 표지 보이니? 작가가 정말 매력적이지 않니? 당시에도 성별 구분 없이 매력을 발산으로 인기가 많았더라고. 토마스 만 자녀인 에리카, 클라우스 만 남매와도 실제로 친했다고 하더라고. 특히 에리카 만을 좋아했던 작가는 여러 번 구애했지만, 에리카 만이 친구 이상의 여지를 주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 당시에 작가의 엄마는 딸의 성적지향을 숨기고 싶어서 작품이 출간되는 걸 막기도 했다고 하더라고. 아니 이런 외모에 이런 작품이 감춰진다고 감춰지는 게 아닌데 말이지. 이번 소설에 <한 여인을 보다>라는 수록작도 포함되어 있는데 말이지. 이것도 낯선 곳에서 우연히 마주친 중년 여성에게 반한 화자의 이야기거든. 어때 한번 맛을 보지 않을 테니? 20세기 초에 레즈 문학은 어떠한지 궁금하지 않니...?”
아니, 지금 주말에 회사 사람들이랑 등산하게 생겼는데, 책 보면서 낯선 여행 대리만족을 하라고? 그걸 해결책이라고 말하고 있는 거냐? 근데 표지가 참 매력적이긴 하네. 그래서 작가님 존함이 어떻게 되신다고...?
<페르시아에서의 죽음/ 안네마리 슈바르첸바흐(박현용 옮김)/ 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