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마감 노동자에게 추천하는 독일문학

호들갑 독일문학

by 박효경

호들갑 독일문학 5

- 마감 노동자들이여, 발저를 읽읍시다.



모처럼 평일에 쉬어서 밀린 집안일이나 해야지 싶었는데, 마침 같이 휴가인 친구 A가 요란스럽게 호통을 쳤다. 직장인의 평일 낮, 금쪽같은 휴식 때 집에만 머무는 것은 말이 되냐고, 남들 일할 때 갖게 된 꿀 같은 여유는 최선을 다해서 누리며 뽐내야 한다며 카페에서 느긋하게 앉아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놀자고 말이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지만, 친구 A가 보내온 카페 사진이 마음에 들어 그러자고 하고 약속장소에 나갔다. 이미 도착해 카페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친구 A를 보니 그냥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졌지만, 아인슈페너는 꼭 한잔 너무 하고 싶어서 카페 문을 열었다.



“왔어? 여기 카페 너무 좋지! 아, 이거~ 하하하하 <산책>이라는 책인데, 아 너무 웃겨. 나, 발저가 너무 좋아. 발저? 작가 이름이야 로베르트 발저! 대략 100년 전 사람인데, 완전 우리 감성이야. 발저가 지금 살아있다면 인기 트위터리안이 되어있지 않을까 싶어. 관찰력이 남다르고, 자신만의 렌즈로 사회를 보고 그걸 비틀어서 글로 쓰는데 그게 너무 웃긴 거지. 근데 마냥 조소만 있는 게 아냐. 그 사회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애환과 섬뜩함이 묻어있어. 이번 생은 망했다고 낄낄대고 웃지만, 눈가엔 눈물이 고여있는 감성을 담았다고나 할까. 이 책은 주변 곳곳 각종 마감 노동자에게 선물해주고 싶어! 주인공 직업은 글 쓰는 작가야.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영감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는 상상을 자유로이 할 수 있는 여유가 꼭 필요하잖아. 주인공은 이를 위해 오전에 아침 산책을 나서. 산책하면서 정신없이 노동하고 있는 공장노동자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가, 밤에 집필로 중노동을 하는 자신의 신세를 자각하고 연민을 거둬들이며 낮의 한가로움을 합리화하지. 캬 진정 마감 노동자의 태도가 아니냔 말이야. 이 소설은 사실 특별한 줄거리나 사건은 없어. 다만 주인공이 산책하면서 만난 사람들, 풍경을 관찰하면서 자기 생각을 마구 쏟아내. 발저의 책은 뭔가 기승전결을 기대한다기보다는 주인공의 생각과 작가의 문장에 집중해서 읽는 게 포인트인 거 같아. 가장 마음에 들었던 얘기는 산책하러 나간 김에 각종 업무를 처리를 위해 들린 구청 골목 혹은 세무서. 아, 이게 또 재미 포인트인데! 어딘지 정확하게 기억을 못 해. 정확한 명칭은 그에게 크게 중요하지 않거든. 아무튼, 그곳에서 할 일 없이 산책한다고 면박을 주는 소장님 혹은 세무사에게 명변명을 쏟아내는 장면이야. p.45였나. 나 완전 감동 했잖아. 누군가에겐 변명이겠지만, 누군가에겐 소신 발언이오. 위로이며 매뉴얼이 될 말이란 것이지. 그리고 알지 못하는 이로부터 후원금을 받는 대목도 좋더라. 작가의 진심을 담은 희망을 담은 사건이 아니냐 하고. 예술은 사실 무조건적인 후원에서 창의력을 발휘하는 건데 말이야. 아 마감의 압박도 창의력을 향상에 도움이 되지. 혹시 내 마음을 읽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현대인의 마감 노동자의 애환을 유쾌하게 써 내려가서 진짜 재미있어.”



아인슈페너가 굉장히 맛있어서 친구 A의 이야기를 조금 흘려들은 거 같다. 친구 A는 우리도 어렵사리 얻어낸 낮의 시간을 만끽해야 한다며 산책하자고 졸랐고, 나는 서둘러 커피를 들이켜고 카페를 나섰다. 여유를 뽐내기는 무척 피곤한 일이었다.


<산책/ 로베르트 발저/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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