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들갑 독일문학
- 애절하고, 애틋하고 소중해
1인 가구로 살아가는 일은 고되다. 출퇴근도 해야 하고, 집안일도 해야 하고, 내 몸까지 살펴야 한다. 일이 몰리는 시즌에는 어김없이 탈이 나고야 만다. 올해도 결국 앓아눕고야 말았다. 친구 A로부터 우연히 전화가 와 나의 상태를 듣고는 어쩐 일인지 죽 사 들고 집으로 찾아오겠다는 것이 아닌가! 웬만하면 거절을 했을 텐데 거절할 힘도 없어서 그러라고 했다. 집에 방문한 친구 A는 안쓰러워하는 눈빛을 보내더니, 나에게 죽과 약을 건넸다. 옆에 있다 가겠다고 편히 자라는 말을 듣고 기절하듯 잠들었다. 잠에서 깨어났을 땐 한결 몸이 가벼워졌다. 그리고 친구 A가 아직 집에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배가 고파 남은 죽을 마주 앉아 먹으며 내가 자는 동안 뭘 하고 있었냐고 물으니 갑자기 친구 A는 귀여운 책 하나를 내밀었다.
“예쁘지? 표지가 참 예뻐. 이야기는.. 완전 내 스타일이야! 너 알지? 내가 알콩달콩 사랑 얘기 안 좋아하잖아. 주인공이 엇갈리고 엇갈리면서 썸만 타다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순간! 드라마 안 보잖아. 나는 그리워하고, 못 잊고, 후회하거나, 헤어져야만 하는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가 좋아. 더 애절하고 애틋하고 소중해. <제복의 소녀>라는 소설도 그런 분위긴데...좀 더 센티멘탈하다고나 할까? 이야기를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주인공 마누엘라가 기숙학교 들어가는 뒷부분 얘기가 더 재미있더라고. 마누엘라는 엄마를 잃고, 무관심한 아빠로 인해 가톨릭 여자 기숙학교로 들어가게 돼. 이야기 읽다 보면 영화<경성학교>가 생각나. 학교는 싫은데 교복, 명찰, 교정 같은 학교 특유의 분위기는 좋아서 이중적인 감정이 들어. 소설 속 기숙학교는 가톨릭 재단에다가 배경이 1900년대 초라 현모양처 양성을 목표로 하는 곳이니 얼마나 금지규칙이 많겠어. 왈츠도 못 듣게 하고, 초콜릿도 금지야, 계단에 앉아있지도 못해. 교복만 입어야 하고, 머리 손질 방법도 정해져 있어서 마누엘라가 처음 학교 갔을 때, 다 똑같이 생겨 구분하기 어렵다는 말까지 하거든. 숨 막히는 학교에서 주인공은 엘리자베트 폰 베른부르크 선생님이라는 운명의 상대를 만나지. 마누엘라는 선생님을 사랑하게 되고, 적극적으로 마음을 표현하는데, 선생님은 애써 못 들은척해. 너는 학생이고, 나는 선생이라며 자신의 감정을 숨겼던 어느 드라마가 막 생각나지 않니? 아 맞다. 너 자는 동안 내가 종이랑 펜 좀 썼다. 독일소설 다 좋은데 등장인물이 많아지면 멘붕이야. 뭔 놈의 이름이 베른부르크, 브로켄부르크 죄다 부르크 타령이야. 하아... 마누엘라의 감정이 잘 드러나는 소설이라서 사랑하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는 느낌이 전이 돼서 나 지금 좀 멜랑꼴리해. 책장에 요시야 노부코의 <물망초>소설 있더라. 그러고 보면 비슷한 시기의 비슷한 소재의 이야기인 거 같아. 그거 재미있게 읽었으면 이 소설도 재미있을 거 같네.”
친구 A는 식어가는 죽은 잊은 채 아련해진 눈빛으로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친구 A가 떠나고 멍하니 앉아있다가 친구 A가 남겨놓은 메모를 읽었다. 약 기운이 아직 맴돌아서일까. 친구 A의 영업 때문일까. 아련해지는 로맨스 이야기가 문뜩 읽고 싶어졌다. 나는 책장에서 <물망초>를 꺼내 들고 침대에 누웠다.
<제복의 소녀/ 크리스타 빈슬로/ 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