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들갑 독일문학
- 누군가 죽이고 싶을 때 참고하면 좋을 독일문학
친구 A가 잠수를 탔다. 일이 정리되면 연락을 다시 하겠다는 애매모호한 말을 남긴 채 친구 A는 종적을 감추었다. 정리되면 어련히 연락이 오겠지 하던 것이 벌써 한 달이나 지났다. 걱정되기 시작할 때, 친구 A로부터 전화가 왔다. 연락이 끊겼던 날과 달리 들뜬 목소리였다. 가타부타 설명 없이 엄마 반찬을 나눠주겠노라 집으로 오겠다는 메시지였다. 아니 선전포고였나보다. 곧바로 비번 누르는 소리가 들렸고, 친구 A는 자기 집 인양 냉장고로 직행해 반찬을 정리하면서 난데없이 최근에 재미있게 읽은 독일소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고전소설만 읽어서 요즘 작품을 찾아보다가 발견한 책이야. 작가가 러시아 사람인데 독일로 건너간 배경이 있더라고. 책이 꽤 두꺼워서 고민하다가 집어 들고 첫 장을 읽는데! 그냥 게임 끝. 완전 대박! 주인공에게 꿈이 있는데, 하나는 엄마에 대한 글을 쓰는 거고, 나머지 하나는 어떤 남자를 죽이겠다는 거야. 처음부터 살인예고를 하니깐 도대체 남자와 엄마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너무 궁금하더라고. (이거는 금방 쉬니깐 내일까지 먹어) 소설이 1인칭 시점인데, 주인공이 너무 매력적이야! 너 넷플에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 봤지? 뭐? 안 봤어? 얘는 맨날 <프렌즈>만 보더라. 거기 메이브랑 되게 닮았어. 소설 속 주인공 샤샤도 고등학생이고, 독립적이고, 아주 똑똑해. 그리고 냉정하고 차분해. 주인공 네 가족도 작가처럼 러시아에서 독일로 온 이민자야. 주로 러시아 이주민들이 거주하는 공동주택은 그다지 좋지 못한 환경이야. 샤샤에게는 아빠가 다른 동생이 두 명이 있어. 동생들의 아빠가 바로 엄마를 죽인 놈이야. 폭력적이고 무능력한 이 새ㄲ...아니 남자가 이혼하고도 엄마를 괴롭히더니 엄마와 엄마 애인을 죽이고 감옥엘 가. 그래서 복수하려고 그 샊...아니 남자를 죽이려고 결심한 거지. (김치는 아직 많네) 근데 이야기를 읽다 보면 복수 그 자체보다는 샤샤에 집중하게 돼. 이민자에다가 넉넉지 못한 살림, 여자, 청소년인 샤샤는 상대적으로 중심에서 벗어난 존재잖아. 키워드로 인한 일상의 폭력과 불안에 익숙해진 샤샤는 또래보다 성숙해 보이지만 미숙한 부분이 많아. 불만과 경계가 뒤엉켜있어. 소설 초반에 남자를 증오한다고 3번이나 반복하더라고. 계부 때문에 남혐이 온 거지. 독일에서 태어났다고 가정하는 부분에서도 억울함이 느껴져. 왜, 우리도 일 안 풀릴 때 부모 탓하고 그랬던 때 있었잖아. 그러던 샤샤도 사람들을 만나면서 사는 게 마냥 꽃밭인 사람은 없다는 걸 깨달아. 제목 쉐르벤이 유리조각이란 뜻이거든. 사실 사람이 하나의 모습만 있는 게 아니잖아. (이 장아찌 완전 맛있음! 라면이랑 먹어야 하는데... 라면 있냐?) 예쁜 조각도 못난 조각도 어쨌든 내 모습이니깐 어루고 달래며 살아가야 한다는 걸 깨닫는 게 성장 아니겠어.”
친구 A의 영업은 라면을 다 끓이고서야 끝이 났다. 갑자기 나도 꿈이 생겼다. 연락이 없다가 느닷없이 나타나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할 생각도 없는 친구 A를 내 손으로 죽여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소설 속 주인공은 꿈을 이루었을까? 참고할만한 방법이라도 있나. 장아찌는 진짜 맛이 좋군.
<쉐르벤파크/ 알리나 브론스키(송소민 옮김)/ 걷는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