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7월에, 아니 6월의 어느 날부터 나의 하루에 ‘걱정하기’라는 일과가 추가됐다. 하루에 한 번쯤은 어디서든 나는 걱정했다. 세계의 멸망에 대해 말이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에 따르면 1999년 7월 24일에 모든 게 사라진다고 했기 때문이다. 당시 어렸던 나는 멸망의 가능성에 관해 몰두했다. 우리는 왜 종말을 준비하지 않는지 의아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얘기를 해보았으나, 대부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했다. 혼자 걱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걱정은 공상속에서 아주 잘 자라서, 걱정하는 게 정말 쉬웠다.
나는 멸망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머릿속에서 고민했다. 우리가 모두 죽는다면 무엇을 남겨 놓아야 하나. 훗날 멸망한 행성을 방문할 외계인을 위해 우리가 있었다는 걸 어떻게 알려줄 수 있을까. 나는 인간들이 쓴 일기장들을 생각했고, 바이올린을 배우고 있어서 클래식 CD를 생각했다. 랄로와 멘델스존 중 골라야 한다면 누굴 고를까 고심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가 죽은 다음에라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일까. 중요한 건 우리가 서로를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것이다. 가족도 친구도 보고 만질 수 없다. 학교도 나무도 그네도 없어진다. 모든 게 사라질테니까. 나도 그렇게 된다. 신체와 정신 또는 의식이 없는 상태. 한 순간에 꺼져버리는 불빛. 게다가 내가 사라지면 세상도 없다. 나의 멸망은 결국 세상의 멸망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근데 만약 나만 사라져서 세상의 종말을 막을 수 있다면, 그런 SF소설이나 영화같은 순간이 온다면 난 어떤 선택을 할까. 죽어야겠지. 죽더라도 자연의 일부가 되고 별의 잔해로 돌아가니 상관없는 건가. 내가 나라는 의식이 없는 건 괜찮을까. 그렇게 사는 게 혹시 더 나은 건가?
나는 20세기 마지막 해의 여름을 이런 생각을 하며 보냈다. 종일 앉아서 이런 공상만 해도 시간이 후딱 지나갔던 때였다.
예언의 날인 7월 24일이 지나고 시간이 더 흘러 가을이 왔을 때, 나는 사람들이 그런 예언은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여긴다는 걸 알았다. 또 일어나지 않은 일에 관해서 걱정하는 건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도 배웠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은 실제 멸망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여러 관점에서 해석될 수 있는 글이라는 것도 어디서 읽었다. 나는 그 말에 집착해 혼자 약간의 편집증적 증세를 보였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일어나지 않은 일을 걱정하는 건 여전히 내 일과였다. 나는 때때로 허무에 빠져들었다. 걱정의 끝에 다다르면 언제나 나는 세상에 없어서, 살 이유가 무엇일까 고민해야 했다. 그래서 재밌는 걸 찾았다. 정신이 빼앗길 것이 필요했다. 그중에서 나는 만화를 선택했다. 처음에는 인기가 많은 순정이나 스포츠 만화를 봤다. 사랑과 열정이 가득한 이야기들이었다. 사랑해서 안 될 이를 사랑해 죄를 짓고 현세에 떨어진 천사는 또 다시 죽더라도 사랑을 쟁취하고 죽는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서툴렀던 인물은 남다른 열정으로 실패를 극복하고 한 단계 성장하여 최고의 자리에 오른다. 항상 혼자였던 주인공은 소꿉친구의 끈질긴 우정으로 세상 밖으로 나온다. 짝사랑만 하던 인물은 짝사랑하던 대상에게서 배신당하지만 자신을 지켜보고 지켜주던 다른 캐릭터에게 고백받는다. 나는 그 작품들에게서 위로 받았다. 다만 마음 한 구석이 불편했다. 세상은 정말 더 좋아지고 있는 걸까. 세상은 이만큼 멋지지 않은 것 같은데.
나는 만화방 구석에서 어두운 기운을 뿜어내는 만화들을 보기 시작했다. 비관으로 가득 찬 희망이 없는 만화를 보면서 세상의 모습은 이런 것과 가깝다고 생각했다. 당시에는 나이 제재가 심하지 않아서 끔찍한 내용의 형사물이나 범죄물, 도박물도 볼 수 있었다. 가장 무서웠던 것은 형사인 주인공이 범죄자들을 잔인하게 죽이고 다니는 내용의 만화였다. 만화 속 세계에서 행복한 결말을 맞는 인물은 없었다. 이 만화를 보고 나서부터 나는 자주 악몽을 꿨다. 전쟁과 범죄와 죽음, 귀신들이 뒤섞인 만화 속에서 나는 허우적대다 깨곤 했다. 만화에서 보던 게 뉴스에 나올 때도 있었다. 만화 속 세상은 어느 정도는 나의 이야기였다. 거기서 세상을 배우는 건 좋았다. 하지만 그 배움을 통해 당시 심약한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고작 끔찍한 세상에 대한 걱정과 악몽 꾸기였다. 내게도 때로는 기쁨과 희망도 필요하단 걸 그때 깨달았다.
나는 걱정과 비관을 잊어보는 방법들을 고안했다. 그 방법 중에 하나는 불안하거나 무서운 기분이 들 때, 그 순간이나 생각들을 머리 뒤로 보내는 연습이다. 세상에 대한 걱정 혹은 무서운 만화, 영화를 본 순간을 꼬깃꼬깃 접어 포물선 그리듯이 뒤통수로 보내는 상상을 한다. 그럼 그 기억은 내 눈 앞도 머릿속도 아닌 뒤통수에 자리를 잡는다. 눈앞에서 사라진 것은 나에게서 떠나간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한 것이 정말이었다. 연습의 횟수를 늘리자 그 속도가 매우 빨라졌다. 만화든 영화든 무서운 걸 보면, 문득 세상의 불행한 사건들이 떠오르면, 바로 생각을 뒤통수에 달린 쓰레기통으로 던졌다. 뉴스를 보다 걱정이 되면 또 이 방법을 썼다. 몇 번 하다 보니 쉬워서 이 짓을 많이 했다. 뒤통수에는 무서운 장면들, 전쟁 영화, 토요 미스터리, 두려운 뉴스, 내가 창피를 당한 순간들까지 많은 것들이 뒤섞여 쌓여갔다.
근데 나는 명확하지 못한 컨트롤러였던 것 같다. 뒤통수로 날려버리기의 부작용으로 나는 의도하지 않은 것조차 잊어버렸다. 나도 모르게 그 방법을 쓰는 것 같았다. 사람 얼굴을 한 번만 보면 잊지 않았는데, 언젠가부터 작년에 같은 반이었던 아이들의 얼굴을 잊어먹기 시작했다. 좋아했던 만화책의 내용이 너무 좋아서 기억해 놓으려고 받아 적기까지 했었는데 순식간에 잊었다. 선생님이 무슨 일을 시키면 그 말도 가끔 바로 날려버렸다. 해야 할 것들을 자꾸 까먹었다. 많은 것들이 포물선을 그리며 사라졌다. 나는 고장 난 기계가 된 기분이었다. 집중력이 나쁘지 않았는데, 매우 산만하다는 평을 받기 시작했다. 나는 점점 정신없는 인간이 되어갔다. 나는 뒤통수로 날려버리기를 관두어야 했다. 무서운 것들을 잊으려다가 좋아하는 것까지 잃게 생긴 것이다. 이미 돌이킬 수는 없었다. 내 머릿속에서 기억하고 싶은 것과 잊고 싶은 것, 걱정과 즐거움이 뒤죽박죽으로 섞여버렸다. 나는 그런 것들을 정리하지 않고 그냥 살았다. 계속해서 아직 일어나지 않았고, 일어날 확률이 극히 적어도 가능성만 있으면 걱정했고, 좋아하는 건 많이 읽고 보고 들었다. 좋아하는 이야기 속에서 내 걱정들을 키우고 또 일어나지 않은 일들을 상상했다. 다른 평행 우주에선 이 일이 일어났을지도 몰라. 아니면 이미 이 세계의 보이지 않는 데서 일어난 일일지도 몰라. 사실 내가 걱정하는 일들은 이미 일어난 일인 거야.
가끔은 어린 나에게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않은 것 같다. 유아적인 태도를 숨기려고 노력하는 게 최선이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상상하는 게 내 직업처럼 되어버린 건 다행인건가 싶다. 오늘도 그런 일을 했다. 걱정하고, 무서워하다가 망각의 기술을 쓴다. 그 기술을 써도 강력한 순간들이 다시 찾아와서 문을 두드리면 나는 문을 열어준다. 나는 그것들에 대해 생각하다가 끄적댄다.
이 글의 제목에 관해 고민했다. 일어나지 않을 일들. 일어나지 않은 일들. 두 개 중 무엇이 적절한 걸까. 어쩌면 두 개가 같다는 생각이다.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있는 시공간에서 앞과 뒤가 관점의 차이일뿐이라면 과거와 미래는 구분할 수 없다. 그 한 가운데서 이 말을 생각하는 행위가 내가 있는 이 세계를, 이 세계를 사는 나를 받아들이는 방식인가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