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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지만.

by 하스텔라

세상은 너-무 크고, 나는 너-무 작다.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거나, 높은 곳에 올라 도시를 내려다볼 때면 나는 언제나 같은 생각에 잠긴다.

나는, 이 거대한 세상에 작은 점 이구나.

빼곡한 건물과 길, 산들 사이에서 나의 존재는 너무도 작아서 보이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실감하게 된다. 나는 이 거대한 세상 속에서 정말 작고, 보이지 않는 존재라는 것을.

이렇게 작은 내가 도대체 뭘 할 수 있을까.



내가 자연을 생각하며 쓰레기 배출을 줄이고, 고기를 덜 먹고,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타고, 탄소 배출을 줄이겠다고 애쓴다 한들, 과연 이 거대한 지구에 어떤 영향이 있을까? ‘나 하나쯤이야’라는 마음이 아주 쉽게 스며든다.

남들은 여전히 마음껏 플라스틱을 쓰고, 환경에 대해 아무런 고민 없이 살아가는데, 내가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


나는 자연을 아끼고 싶다. 아니, 아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데 내가 아는 방법이라곤 이런 소소한 실천들뿐이다.

플라스틱 대신 유리병을 사고, 일회용 컵 대신 텀블러를 쓰고, 비닐봉투 대신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는 것. 처음에는 뿌듯했다. 나도 뭔가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있다고 느껴지니까.

지구가 아파요 엉엉..

하지만 그마저도 오래가지 않았다. 플라스틱 대신 유리를 쓴다 한들, 이게 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유리를 계속 사고 버리다 보면, 그걸 만들고 옮기고 폐기하는 데 들어가는 에너지가 오히려 더 많다고들 한다.


텀블러 역시 마찬가지다. 환경을 생각해 텀블러를 들고 다니지만, 그걸 세척하는 데 쓰이는 물과 세제, 에너지를 생각하면, 그것조차도 ‘과연 옳은가’ 싶어진다.


내가 자연을 위해서 뭔가를 한다고 하지만,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진짜 자연을 위하는 일인지조차 잘 모르겠다. 옳은 줄 알고 했던 행동들이 다시 의심받을 때마다, 나는 또다시 작아진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이런 행동들을 계속하는 건 환경에 대한 확신 때문이라기보다는 죄책감에서 비롯된 경우가 더 많다.

무언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정말 막연한 불편함. 나도 그 일부라는 자각.


환경보호를 위한다고 포장을 하면서 사실은 나의 양심의 가책을 덜기 위해 행동하는 것들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 마음을 지워버릴 수는 없다. 내가 하는 일이 ‘진짜’로 도움이 되는지 모를지라도, 완전히 외면하고 살 수는 없으니까.


때로는 죄책감에서 비롯되고, 때로는 주변의 시선을 의식한 행동일지라도, 그 안에는 ‘이대로는 안 된다’는 나만의 작고 흐릿한 확신이 있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망설이고 흔들리면서도, 작은 실천을 계속한다. 그것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건강한 지구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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