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 별이 되어 어두운 세상을 비춰 줄...
8월 응급실 근무 중 바다에서 휴가를 즐기다 불의의 사고로 익수 심정지로 실려 온 한 여성이 있었습니다. 이미 심정지 시간이 30분이 넘어간 채로 들어온지라 보통 나이가 지긋한 경우에는 '돌이킬 수 없습니다. 너무 늦게 오셨습니다. 사망하셨습니다.'라고 짧고 간결하게 보호자에게 이야기하고 사망진단서를 작성합니다. 하지만 이 환자는 너무나도 꽃다운 나이였습니다. 공교롭게도 와이프와 한 살 차밖에 나지 않는 분이라 쉽사리 포기할 수 없어 심폐 소생술을 지속하기로 하였습니다.
자발 순환 회복이 되더라도 이분이 예전처럼 건강하게 걸어 다니고 사랑하는 사람과 마주 보며 밥을 떠먹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지만, 우리는 일단 '살려야 하는 사람들'이라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30분간 멈춰있는 심장이 다시 뛰는 것도 가능성이 희박하다 싶었는데 기관삽관을 하고 에피네프린을 쓰니 정말 기적적으로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습니다. 자발순환회복 후 혈압 50/20, 병원 내에 있는 승압제 최대용량으로 갖다 쓰며 가까스로 안정적인 혈압을 유지하였고 폐렴 및 뇌부종 정도를 확인하기 위해 CT를 촬영하였습니다.
결과는 예상대로였습니다. 머리의 뇌부종은 이미 심각한 상태였고, 바닷물 흡인으로 인해 뿌옇게 변해버린 양쪽 폐... 그동안 서울에서 환자의 어머니가 도착하였고 당시 사고 상황 및 현재까지의 진행 정도를 설명해 드렸습니다.
어제까지 건강하고 예뻤을 딸의 모습.. 그리고 불과 한 시간이 채 안 되는 시간 만에 뇌부종으로 인해 경련을 지속하며 혼수상태로 인공호흡기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부르르 떨고 있는 딸의 모습.
당사자가 아니고선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슬픔에 젖어있는 어머니의 '자식을 잃을지도 모를 두려움의 울음소리가 한 시간을 넘게 이어졌습니다.
어머니와 같이 사고를 당했던 남자친구는 서울로의 헬기 이송을 강력히 권유하였으나 헬기 이송 시 의료진이 동승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폐부종 폐렴이 너무 심해 기계호흡 중 Fio2 100% PEEP 12에도 산소포화도가 80이 채 나오지 않는 분이었습니다. 기계호흡 없이 기압차가 발생하는 상공에 앰부만 짜며 의료진 없이 헬기를 타고 가는 건 '가다가 죽게 내버려 두겠다'와 별반 다를 바 없어 완곡히 헬기 이송은 어렵다 말씀드리고 내원한 지 6시간 만에 동맥혈 검사를 통해 산소공급이 어느 정도 회복되는 것을 확인한 후 가까운 상급종합병원으로 전원 조치하였습니다.
와이프의 나이와 비슷하여 유난히 더 신경이 쓰였습니다. 저체온 치료는 잘 받으시는지, 경련은 더 없는지, MRI 결과는 어떠한지.. 수일이 지나 어머니에게 연락을 드렸고( 환자 이송 전에 보호자에게 추후 연락 드릴 거라고 말씀은 드렸습니다.) 몇 번의 연락이 오고 갔습니다. 어머님께서는 결국 따님이 뇌사 판정과 함께 4명의 환자에게 장기기증 후 하늘나라로 갔다고 연락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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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더 잘했으면 환자가 뇌사까진 안 갈 수 있지 않았을까?' 복기를 해 보았으나, 이것은 이미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것으로 판단하니 더욱더 허탈해졌습니다. 따님의 장례를 치르고 난 뒤 어머니는 다시 한번 연락을 주시고 딸의 인생여행 마지막을 가족들과 함께 치를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해주셨습니다. 뭐라 드릴 말씀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 뉴스에서 고인의 장기기증 사례를 기사로 다시 한번 접하게 되었습니다. 상견례까지 치르고 결혼식장을 알아보던 중에 사고를 당하셨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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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면 이 한 몸 썩어지는 거니, 그나마 남아 있는 신체 장기를 진짜 필요한 사람에게 주고 가야겠다고 생각해서 의과대학 입학할 때 저는 사후 장기기증에 서약하였습니다. 시스템이 잘 만들어져 있어서 그런지(?) 저에게 새로 발급받은 운전면허증에 '장기기증' 표식이 붙어져 있습니다.
딸의 죽음을 마주하면서 의연하게 장기기증을 허락한 고인 부모님의 마음을 도저히 제가 헤아릴 수 없으나 한없는 존경과 감사, 그리고 미안함을 글을 통해 전하고 싶었습니다. 비록 따님은 이른 나이에 하늘나라로 떠났지만 4명의 환자에게는 꼭 필요한 새 생명으로 살아갈 것이라 말씀드렸습니다. 고인분의 어머니 때문에 너무 많은 것을 저는 배웠습니다.
어제는 응급실 난동 보호자 때문에 조서 작성을 위해 밤샘 근무를 마치고 경찰서에 다녀왔습니다. 응급실에서 누군가는 저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주고, 또 누군가는 평생 잊지 못할 가슴 벅찬, 그리고 감사함과 겸손한 마음을 주십니다. 장기이식이 잘 될 수 있도록 수술 집도해 주신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각박한 세상 속에서 용기와 희망을 잃지 말고 살아갑시다. 의료환경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 일하겠습니다. 너무 암울한 형국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선에서 일하시는 수많은 선생님들도 힘내셨으면 합니다.
그녀의 가족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감사히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께서도 이 가족을 위해 잠시라도 꼭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밤하늘 별이 되어 어두운 세상을 밝게 비춰 줄 고인을 위해서도 기도합니다.
어머니가 마지막 딸에게 남긴 말씀을 끝으로 글을 맺습니다.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너를 축복해주고 싶었는데, 이제는 네가 하늘나라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겠구나. 천국에서는 즐겁고, 행복한 일만 가득하길 바라. 사랑해. 우리 딸”
해당 기사 링크 :
https://www.chosun.com/national/national_general/2023/10/18/ZAPWDQAGOZEHTKEETJYL7IV2Q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