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받지 않는 검사의 역설


우리는 늘 무언가를 판단하고 검사하며 살아갑니다.

출근길 거울 앞에서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회사에선 업무의 완성도를 점검하며,

하루를 마치고는 스스로의 모습을 되돌아봅니다.


마치 농부가 수확한 사과를 하나하나 살피듯이,

우리의 삶은 끊임없는 평가의 연속입니다.

그러나 그 평가의 순간을 다시 한번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농부의 손길이 언제나 완벽할까요?

오늘은 기분이 좋아 관대한 기준을 적용하고,

내일은 피곤해서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지는 않았을까요?

우리는 ‘검사'라는 행위 자체를 의심하기 보다는

주어진 기준에 따라 판단하는 데 익숙합니다.

이는 비단 사과 검사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의 모든 평가 시스템이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학생들의 성적을 매기는 교사들, 직원들의 실적을 평가하는 관리자들,

예술 작품을 심사하는 심사위원들. 이들은 모두 '검사자'이지만,

그들의 평가 기준과 과정은 과연 얼마나 객관적이고 공정할까요?


우리는 타인을 판단하는 일에도 익숙합니다.

첫 만남에서 상대방의 외모와 말투로 그 사람의 가치를 재단하고,

SNS의 게시물 하나로 타인의 삶을 평가합니다.

하지만 그 순간에 자신의 편견과 선입견을 얼마나 자각하고 있을까요?

우린 언제나 무언가를 평가하지만,

정작 평가자 자신은 평가받지 않는다는 역설에는 무관심한 것 같아요.

시험 성적을 매기는 교사는 자신의 평가 방식이 적절한지 점검받지 않고,

기업에서 직원의 업무 능력을 평가하는 상사는 자신의 평가가 공정한지 검증받지 않습니다.

윤리를 심사하는 위원회조차 그들의 윤리성이 얼마나 타당한지 평가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이 바로 ‘검사받지 않는 검사의 역설’입니다.

우리는 타인을 평가하면서도 정작 스스로의 기준과 잣대가 올바른지 깊이 고민하지 않습니다.

만약 그 기준 자체가 편향되거나 부적절하다면,

우리는 공정한 평가를 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에 불과할지도 모르는데 말이죠.


우리 삶 곳곳에서 이 모순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회를 감시하는 언론은 누가 감시하나요? 정의를 수호하는 법의 정당성은 누가 보장할까요?

윤리적 판단을 내리는 기관들은 어떻게 자신들의 윤리성을 증명할 수 있을까요?

이러한 물음들은 우리를 겸손하게 합니다.

완벽한 평가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판단에 불완전성이 내재되어 있음을 깨닫게 해 줍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엄격한 평가 기준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판단이 가진 한계를 인정하고,

그 불완전성 속에서도 최선을 다하려는 진정성일지 몰라요.

사과 농부가 매일 아침 새로운 마음으로 사과를 살피듯이,

우리 역시 매 순간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합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평가는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자신의 판단이 공정했는지, 자신이 기준이 타당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놓쳤는지 돌아보는 일입니다.


타인을 평가하기 전에 자기 자신을 먼저 바라볼 때,

우리는 비로소 ’검사받지 않는 검사‘의 역설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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