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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즈 Nov 02. 2021

라디오를 켜면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Sleepless In Seattle)]

  스마트폰이 전하는 문명의 강력한 힘을 인정하면서 살아가는 시대에, 한 세기의 경계를 너머 스마트폰 없이 살던 시간을 열어보면서 가을에 잘 어울리는 영화의 첫 장을 넘기고 있다. 다채로운 빛깔이 만든 단풍의 채색화로 물들어 가는 일상에 지친 마음과 생각에 위로를 건네고 싶다면 잠시 어렴풋이 떠오르는 쉼표를 찍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애니[Annie, 맥 라이언(Meg Ryan)]의 삶에는 빈 공간이 없는 것 같다. 따스한 응원과 격려를 주는 가족, 미래를 함께할 약혼자가 있는 애니는 신문기자로서 어떤 가치 있는 기사를 써야 하는 가를 항상 판단하면서 분석적인 성향을 가지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결정에만 익숙해져있을 것 같다. 그런 애니가 운전하며 귀가하던 중 라디오의 한 프로그램에서 들려오는 조나[Jonah, 로스 맬린저(Ross Malinger)]의 사연에 마음이 동요된다. 애니는 운명적인 사랑을 믿고 있으며, 이는 대사를 거의 외울 정도로 영화 [러브 어페어]를 즐겨본다는 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샘의 추억 속 이야기를 청취하면서 “Magic”이라고 혼잣말을 하는 애니는 향후 그녀가 믿고 있는 주문이 실제 현실에서 어떻게 구현되어질지 궁금하게 만든다. 샘과 조나가 자신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애나의 생각도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 건네주는 솔깃한 제안일 것이다.


  샘[Sam, 톰 행크스(Tom Hanks)]은 아들 조나와 함께 과거의 슬픔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면서 시애틀에서 새로운 생활을 영위하기 시작한다. 때때로 균형감을 잃는 듯 하지만, 현재에 집중하면서 중심을 찾으려한다. 조나의 사연을 청취하고 많은 사람들이 편지를 샘의 집으로 보내지만, 조나는 발렌타이 데이에 뉴욕에 있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만나자는 내용이 담긴 애니의 편지가 가장 마음에 끌린다. 애니를 만나보라는 조나의 제안을 외면하지만, 조나의 진심어린 마음을 이해하려고 한다.


  애니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편지지 위에 필기도구로 직접 글을 써서 표현한다. 그녀의 편지를 보낸 것은 친구이지만, 손편지로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 어떤 의미일지 기대하게 한다. 왜 자신이 샘과 조나의 이야기에 마음을 사로잡히게 된 것인지,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힘에 이끌리듯이 애니는 샘과 조나를 만나기 위해 동부 볼티모어에서 서부 시애틀로 짧지 않은 여정을 선택한다. 운명의 힘을 믿고, 굳건한 의지로 생각을 행동으로 선택한 애니의 용기가 환하게 빛을 발하는 장면이다.


  뉴욕에 있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전망대에서 조나가 놓고 간 배낭을 들고 있는 애나와 배낭을 찾으러 온 샘과 조나는 마침내 만나게 된다. 그러나, 애니가 샘과 여기서 처음 마주한 것은 아니다. 애니의 계획된 여정으로 애니가 공항에 도착했을 때 샘과 우연히 마주친다. 애니도 샘을 인식하지 못하고, 샘도 애니가 애니인지를 모르지만, 샘은 처음 본 순간 애니에게 매혹된다. 샘은 애니가 자신을 만나기 위해 시애틀에 도착했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한다. 이후, 샘의 집 옆 도로에서 애니와 샘은 다시 서로 마주한 채 눈이 마주치지만, 애니는 샘의 집에 와 있던 여동생을 다른 상황으로 오해하고, 볼티모어로 돌아오게 된다. 


  라디오는 신비한 마력을 가진 마법의 램프이다. 조나는 샘과 애니의 운명적 연결이 작동하도록 만든 램프의 요정이다. 조나가 애니를 만나기 위해 선택한 시애틀에서 뉴욕까지의 여정은 샘과 애니에게 주는 삶의 귀중한 선물이다. 조나가 선택한 여정을 통해 샘과 애니의 운명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램프는 영화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일까? 우리곁에서 마법의 램프는 항상 있어왔고, 여전히 있고,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것이다. 만약 거대한 운명의 등장을 미리 알게 된다면, 표면적으로 완벽하게 꽉 채워져 있는 것 같은 일상의 공간에 만족해하면서 자신이라는 거울을 들여다볼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모든 시간을 단조롭게 여기게 될지 모를 일이다.  


  램프를 켤 시간을 기다려왔다면, 램프를 켤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설레이는 마음을 들여다 보고 있다면, 이제 망설이지 말고 한 발자욱 내디딜 때이다.

     

  “What if someone you never met, someone you never saw, someone you never knew was the only someone for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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