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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성대 May 11. 2016

청년 문제의 책임론

우리 사회, 청년 세대의 문제는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3포, 5포, 7포, 9포.


 저 숫자를 늘려가는 것에 재미가 들린 사람들은 청년들이 또 무엇을 포기하고 있는지를 찾는 눈치다. 의외로 포기한 것이 쉽게 찾아 또 한번 놀란다. 이런 뉴스가 뜨면 인터넷 포털 게시판엔 전쟁이 벌어진다. 한편에서는 어른들이, 또 한편에서는 청년들이 이 세상 청년세대가 가진 고통의 원흉이 되어 갈가리 찢긴다. 그러다 세대의 갈등은 빈부의 갈등, 남녀의 갈등으로 번져간다. 그렇게 하루 종일 인터넷 세상은 채 썰리듯 절단되어져 나간다. 그리고 그 싸움 안에서 그 모두를 온전히 품어낼 대안을 제시하는 이는 없다.


 물론 이런 현상은 누구 하나만의 탓일 수 없다. 세상 일은 단 하나의 인과로 일어나지 않는다. 복잡한 인과의 연속적 반응이다. 이런 인과의 책임소재를 묻는 것은 닭이 먼저인지 계란이 먼저인지에 대해 묻는 것과 같다. 어떤 세대든 앞선 세대의 영향을 받고 살아간다. 어느 세대든 앞선 세대가 저지른 실수에 삿대질을 하며 커가는데 정작 그 세대는 후 세대에게 그만큼, 아니 그보다 더한 실수를 저지르며 살아간다는 것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모두가 피해자였지만 그 모두는 다시 누군가에게 가해자가 된다.


 나에게 이런 식으로 규정되는 피해자와 가해자는 큰 의미가 없다. 대안이 없는 피해자-가해자 지목은 지루한 소모전의 연속이다. 그리고 그 끝은 그 누구도,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공멸'이다. 그래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형식적으로라도 책임을 지우지 않으면 이 싸움을 멈출 생각이 없는 듯했다. 그래서 근 1~2년간 책임만 묻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청년 문제를 지혜롭게 풀어갈 '책임론'이 무엇인지를 고민했었다. 다음은 내가 내린 결론이다.



 지금까지의 청년문제는 전적으로 어른들의 책임이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전적으로 청년들의 문제와 개선의 가능성들을 듣고 안 청년 자신들의 책임이다

 

 사람들은 주로 배우고 학습한 대로 움직인다. 백지의 상태로 태어난 아이들은 어른들이 가르치고 보여주는 것으로 세상을 배우고 인식해 나간다. 그들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들은 대개 어른들과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 안에서 머문다. 그렇기에 지금의 청년들이 자신들의 당면한 문제, 관련된 우리 사회의 문제를 풀지 못하고 나약한 소리를 해 대는 것은 전적으로 어른들의 책임이 크다.


 그러나 세상에는 늘 변수가 존재한다. 많은 이들이 A만 생각하고 있다 하더라도 꼭 B, C, 나아가 Z까지 생각하는 이가 나오기 마련이다. 그런 사람들은 미쳐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지 못한 사실들을 알려가며, 자신들이 생각하고 도출한 결론, 보기를 원하는 세상의 모습들을 외치며 다닌다. 그리고 진짜 멋진 몇몇은 스스로 증명한, 불합리한 세상의 모습을 바꾸어나가는 사례를 들고 다니며 사람들을 설득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문제는 그런 사례를 눈 앞에 보여준다 해도 우리나라 청년들이 쉽게 그것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상이 보수적이 될수록 사람들은 직접 보고 듣고 느끼지 않으면 믿지 않는 경향이 강해진다. 이전 세대가 지키려는 것들을 편견 없이 바라보면서 그것을 극복하고 뛰어넘어 더 나은 성취, 또는 새로운 세대에게 알맞은 삶을 찾아나가는 것이 새로운 세대의 몫인데 지금 우리나라의 젊은 세대는 그런 힘 마저 빠르게 잃어가고 있다. 지금의 부모세대보다 더 보수화 되고 있는 듯하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다. 이런 문제 또한 어른들이 청년들에게 생각하고 고민하고, 현실에 안주하지 않으며 끊임없이 불만과 욕구를 발견하고 그것을 풀어가는 힘을 쥐어주지 않은 탓으로 시작했겠지만, 아픔의 이유를 알고도 스스로 치유할 수 없는 상태까지 이른 청년들의 모습은 아픔을 넘어 청년세대에게 치명적인 위기로 다가온다. 더 이상 이 상태를 지속시키면 안 된다. 역사의 반복, 그 흐름 속에서 보았을 때 지금의 상황은 충분히 더 악화될 수 있고, 또 언젠가는 많은 사람들이 흘린 피눈물의 값을 딛고 다시 잃어버렸던 성장과 성숙의 동력을 회복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청년세대가 감당해야 될 것이 피눈물 만이라면, 당신은 그 안에서 당당히 행복하겠는가? 시간이 지날수록 살기 힘들어지는 세상에서 내 친구가, 내 자식이, 내 손자가 아픔에 뒹굴기만 하고 있다면 당신은 계속 행복할 수 있을까?



다른 세대, 그 누구도 우리 삶을 자기 일처럼 챙겨주지 않는다.
우리 스스로가 우리를 보듬어야 한다.


 어른들에게 세상을 바꿔주십사 기대하기 힘들다면 청년 세대는 스스로 그 힘을 길러 스스로의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 정말 어렵고 눈물겨운 싸움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해야 한다. 그래도 긍정적인 점은 이 상황을 문제로 인지하고 해결하려 나서는 사람들이 주위에 분명 있다는 것이다. 생각보다 많다. 나와 스쿨B 또한 그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세상으로 뛰어들었다. 그들은 단순히 '용기를 내어라'에서 말을 그치지 않는다. 실제 해내고 증명하고 그 과정에서 배운 경험과 노하우를 나눈다. 그리고 실제로 꿈꾸고 상상한 것들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우리나라보다 사정이 좋은 유럽에서는 미래세대를 위한, 더 많은 의미를 지닌 변화와 성장의 사례들이 생겨나고 있고 그것들은 자연스레 인터넷과 지면을 타고 우리 곁으로 흘러들어온다. 세상엔 참고해볼 만한 것들, 시도해볼 만한 것들이 너무 많다.


 이러는 와중에 많은 사람들이 걱정한다. 그런 것들은 이상적인 소리라고. 실패하면 어쩔 거냐, 내 삶을 책임져 줄 거냐 라고 이야기한다. 나는 묻고 싶다. 당신의 삶은, 당신의 행복은 집, 땅, 차로 규정되어 있는가? 그것이 온전해야만 삶에 행복이 올 것이라고 믿는가? 장담하지만 집, 땅, 차로 대표되는 물질적인 부가 풍족한 삶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이야기를 신봉한다면 당신은 몸은 편안하지만 마음은 고통스러운 상태에 놓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자기 자신보다 부유한, 노력해도 뛰어넘을 수 없는 수많은 이들을 보며, 또 그들이 계속 그어가는 선을 보며 고통스러워할 것이다. 적당히 만족하는 삶은 찾는 사람들이 이러한 삶의 기준을 추구한다면 당신들은 번지수를 잘 못 찾았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잘 만족되는 삶은 이 좁디좁은 땅에서 도대체 몇 명이 누릴 수 있다고 보는가? 물질적이지 않은 것에서 행복한 삶을 찾은 이들 또한 생각보다 많다. 눈을 충분히 돌릴 여지가 있다. 성장의 시대에서 쇠퇴의 시대로, 3차 산업혁명에서 4차 산업혁명으로 빠르게 바뀌어가는 삶의 흐름을 읽고 대응하지 못하면서 과거의 삶의 방식을 그대로 쥐고 있는 것이 더 이상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것들을 모두 듣고 있음에도 스스로 배우고 검증하고 실험하지 않고 주저하고 바라만 본다면 이후 만들어지는 세상의 모습은 온전히 당신, 청년들의 책임이다. 여기엔 실제로 그렇다고 믿지만 그렇다고 믿고 싶은 나의 의지도 들어가 있다. 우리의 잘못이 하나도 없더라도 우리의 잘못이라고 외칮고 싶다. 우리의 삶은 그 누구도 책임져주지 않는다. 부모세대도 노후 준비하기 바쁜 마당에 누가 우리를 책임져 주겠는가. 우리 청년 세대 이외에는 누구도 청년 문제에 자기일 처럼 움직여주지 않는다. 우리만이 우리 삶을 책임질 수 있다. 그렇기에 일어나 행동해야 한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해서 행동해야 한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라. 지금의 청년들이 보고 배울 것들과, 도움을 청할 곳들과, 힘을 함께 나눌 곳들과, 멋진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그들을 능동적으로 찾고, 그들과 함께하며 숨겨져 있던 나의, 우리의 가능성을 띄우고 우리도 할 수 있음을 세상에 과정과 결과로 입증하자. 그리고 그 전에 그 과정, 도전과 성장 속에서 만족과 행복을 찾자. 그것이 지금의 젊은 세대들이 스스로를 위해 해 나가야 할 가치 있는 일이다.


나는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지금까지의 청년문제는 전적으로 어른들의 책임이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전적으로 청년들의 문제와 개선의 가능성들을 듣고 안 청년 자신들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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