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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성대 Jun 06. 2016

일베의 소통방식, 우리의 소통방식

난 옳고 넌 틀려. 그래서 넌 사라져야해. 그게 모두를 위한 길이야.

고등학교 강의를 갔을때 난데없이 학생 한명으로부터 질문이 들어왔었다.

'선생님은 일베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여기 일베하는 애가 있데요!', '일베충 일베충'

흡사 마녀사냥을 보는 것 같았다. 한두명이 지목되어 어딘가로 몰려간다. 그들은 말이 없다. 지목된 것 같은 아이들의 눈을 보면 '아 뭐 이런걸로 자꾸 그래 왜, 좀 조용히 해' 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죄책감보다 약간의 민밍하고 불편함, 선생님의 반응이 어떨지에 대한 궁금함, 그 상황을 즐기는 듯한 분위기가 복합적으로 느껴졌다.


 어떻게 말해야할까... 복잡한 감정에 잠깐 휩싸였다.

왜 몇몇 학생들이 일베 같은 것을 시작하고, 그 문화를 즐기게 되었는지를 생각해볼때 학생들의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나름 불편한 구석이 많았기 때문이다. 일베에 대한 나의 판단은 확실히 서 있지만 저 아이들을 그 판단 위에 날카롭게 세워버리기엔 다른이들의 탓 또한 너무 크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상황을 만들었나...



학생들은 어떻게 일베를 시작하게 되었을까?

 학생들은 어떻게 일베를 시작하게 되었을까? 대부분의 중고등학교 아이들은 처음엔 뭔지도 모르고 일간베스트같은 사이트에 한 두번 들어갔다가 그들의 어투로 좀 놀다보니 생각보다 격하게 인정받고, 이에 특별해진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아니면 친구들 따라 사이트에 들어가 놀면서 점점 더 동질감과 소속감을 느끼며 마음으로 이 무리에 정착했을 것이다. 학생들은 어른들이 제대로 된 토론과 회의, 이념 정치를 가르치지 않아 이것이 이념적으로, 정치적으로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타인의 감정이나 고통에 공감할 만한 기회를 자주 만들어주지 못해 남을 생각하기보다 스스로 즐겁고 싶은 것이 판단의 기준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들이 일베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이념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그리 무겁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진짜 일베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누군가에게 인정받거나 소속받고 싶은 욕구, 반대로 이야기하면 어딘가로부터 소외되거나 어린 나이에 약육강식의 힘의 경쟁에 놓여 어떠한 방식으로든 살아남아야 하는 필요가 계기였지 않았을까. 무언가로부터의 억압을 뿌리치고 나름의 탈출구와 즐길거리를 찾기위한 선택지 중 하나였던 '일베'일 가능성이 높다면, 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왜 일베를 하냐며 무작정 다그치기엔 오히려 그 학생들이 큰 상처를 받고나서 더욱 강경하게 그들의 세계를 지키려 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티비에 나오는 몇몇 연예인들이 일베의 언어를 쓰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는 과정을 보면 그런 생각이 더 확실하게 든다. 연예인들은 인기를 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데뷔를 했고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면 그들은 대중의 심리를 읽어내는데 상당한 감각이 있을 것이고 그것을 유지하는 노하우가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정말 예상치 못했던 순간에, 누구나 당연히 안그럴 것 같은 순간에 몇몇의 입에서 일베의 언어가 본능처럼 나오고 이후 상황은 우리가 아는데로 흘러간다. 그 몇몇에겐 낙인과 비난이 줄줄이 따라 붙고, 그들의 입에서 사과와 사죄의 말이 나오지만 사람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다. 그들이 생각보다 멍청하지 않다면, 일베의 가치를 지키려는 절대적 신념이 없었다면 절대 그런 말들을 밖으로 꺼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본능처럼 꺼내놓고 사죄하기를 반복한다. 마치 무엇이 잘못인지 인지하고 있지 못하다가 심하게 얻어맞고 넋이 나가거나, 사건 후에도 도대체 왜 내가 이런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그들이 쓰는 말은 표적이 된 상대방이 들으면 들을 수록 고통스럽고 아프다. 그만큼 그들의 말 속에는 창작자의 악의적 비난 의도가 설계되어 들어가있다. 그런데 그 말을 받아 거리낌없이 쓰는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일베의 말들은 그냥 재밌는 말, 한번 쓰면 주목받고 상대방의 재밌는 반응을 관찰할 수 있는 말, 뭔가 특별한 말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그 말이 어떤 칼날을 가지고 있는지는 학생들이 판단하기엔 아직 어려운 영역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럼에도 문제는 이 칼날이 다른 이의 심장을 잔인하게 후벼판다는데 있다. 매번 학생들의 지나친 말들을 타일러넘기기에는 매번 생기는 상대방의 상처가 너무 깊다. 그래서 강경한 반응이 오가고 서로의 마음 속엔 깊은 앙금이 남는다. 분노에 대한 대응으로 분노가 나타고 비극이 반복된다. 이런 상황에서 문제의 화살을 일베를 하는 학생들에게만 돌릴 수 있을까? 이런 소통과 주장의 방식은 어디로부터 왔는가?



'내가 옳아. 넌 틀려. 그래서 넌 사라져야해. 그게 모두를 위한 거야.'

 일베의 문제를 꼽자면 많은 사람들이 극단적이며 인륜을 무시한 상대방에 대한 비난과 실력행사, 몰상식을 이야기할 것이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이 뒤에 있다. 바로 소통방식이다. 이것은 일베 뿐만이 아니라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갈등상황에서 보편적으로 보여지는 사회문제이다.


 내가 파악한 일베의 소통방식은 다음과 같다.

'내가 옳아. 넌 틀려. 그래서 넌 사라져야해. 그게 모두를 위한 거야.'


 일단 그들은 마음에 들지 않는 목표를 특정하고 이마에 낙인을 찍는다. 낙인이 찍히면 얄짤없다. 사라져야 하는 존재가 된다. 그것을 뒷받침하는 논리에는 팩트와 억지가 뒤섞여 도무지 무엇부터 점검하고 조정해야 하는지 감이 오질 않는다. 그 작업을 하려고 해도 물밀듯이 들어오는 다음 이슈와 혼란스러운 주장들에 감정과 이성 모두 휩쓸려 정신을 차릴 수 가 없다. 설득하는 말도 통하지 않는다. 사라져야 하는 존재가 하는 말은 들을 가치가 없다. 모든게 억지가 된다.


 소통은 각기 다른 생각과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다. 함께 살 이유가 없다면 소통도 필요가 없다. 각 개인이 하고 싶은대로 제한 없이 살아갈 수 있고 또 그렇게 사는게 당연할 때, 누군가 그것을 방해한다면 적으로 간주하고 제거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자의든 타의든 우리는 함께 모여 살아간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일개 개인이 그것을 벗어나려면 초국가적 힘이 있어야만 한다. 그럴 힘이 없는 일반인들은 함께 모여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소통과 설득은 우리 삶의 필수다. 그런데 일베의 소통방식은 그렇지 않다. '마음에 들지 않는 넌 사라져야 하는 존재다. 일단 우리에게 낙인부터 찍히자.' 그들에게 소통의 여지는 없다. 나아가 함께 공존할 수 있는 해결책은 더더욱 내어놓지 않는다. 꾸준히 비난한다.


 그런데 어딘가 익숙하지 않은가? 우리 사회의 보편적 소통방식과 일베의 소통방식이 어딘가 묘하게 닮아있지 않은가?

 '넌 끼지 마라, 모르면 조용히 하고 있어라, 자격도 안되면 짜져있어라, 이것도 고마운 줄 알아라, 넌 잠재적 죄인이다, 다 네 탓이다. 네가 필요없다.', '도대체 얼마나 희생해야 하나, 이제는 참을 수 없다. 뒤집자.'

 이런 목소리들은 모두 함께 누군가의 마음에 들지 않은 것에 대한 '배제'를 외치고 있다. 강자는 강자대로 보잘것 없는 약자들이 마음에 안들어서 없애고 싶고, 약자들은 분노에 찬 상태로 강자를 변화시킬 방법을 찾지 못하여 그들을 없애야만 한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그리고 나름대로 실력행사를 해 나간다. 실력행사를 할 힘이 없거나 두려운 사람들은 가장 편하면서도 잘 할 수 있는 '낙인찍기'를 분노에 찬 상태로 '나쁜 사람들'에게 해 나간다. 


 그들의 입에서 함께 할 수 있는 방안을 말하는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 방안을 이야기한다 해도 상대방을 파트너로 염두해둔, 공존해야 하는 상대방으로 인정하는 방안은 없다. 대부분 말하는 사람 중심이다. 세상을 바꾸는데는 엄청난 힘이 꾸준히 요구된다. 강자(대세)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약자(소수)가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강자(대세)까지도 인정하고 함께 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도 시원치 않는데, 그 접점을 발견해 낼 수 있는 현명한 사람들은 극단적 대립 가운데서 입을 닫아버린 듯 하다. 그리고 세상의 권력을 손에 쥔 강자들은 약자들의 낙인찍기엔 관심이 없다. 그깟 낙인, 찍혀도 별거 없기 떄문이다. 접점이 보이지 않는다.


상대에 대한 배려와 공감이 없는 일방적인 주장은 어떤 결과를 낳을까? 서로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끼리의 대결은 어떤 결과를 낳을까? 그것은 뻔하다. 전쟁이다.


 우리 사회는 이런 소통방식에 계속적으로 당연한 듯이 익숙해지고 있다. 설득이 안되는 설득을 하고 있으니 그 다음 스텝은 돈과 권력과 힘으로 누르는 것이다. 바꾸어야 산다. 누구 하나가 사는게 아니라 모두가 산다. 이 문제는 단순히 일베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다. 이것이 유지된다면 지금 자라나는 청소년 모두가 다시 보고 배우고 체화할 것이다. 지금도 늦었지만, 앞으로 개선되지 않는다면... 문제는 정말 심각해질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인식들을 바꾸어나가야만 한다.



일베가 소통방식을 바꾼다면 나는 일베를 인정하고 환영할 용의가 있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질문을 한 학생들에게 이야기했다. 

 '일베가 소통방식을 바꾼다면 나는 일베를 인정하고 환영할 용의가 있다.'

 정말이었다. 그들이 함께하고자 손을 내민다면 얼마든지 이야기하고 토론하면서 함께 할 접점을 찾아내고 싶다. 우리 사회 전체에 함께하려는 소통의 힘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면 일베 문제가 갑자기 튀어나왔다 하더라도 생각보다 쉽게 풀렸을 것이라 예측해본다. 물론 예측이지만.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바로 이 소통의 힘을 자라나는 학생들이 중요하다고 인식하고 또 협업관계 속에서 몸으로 경험하며 체화할 수 있도록 협업과 소통의 기회와 장을 자주 마련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누구 하나만 책임을 지고 행동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각 세대별로, 교육적관점에서 각 역할을 나누어 맡고 있는 여러 이해관계자들 모두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함께 살아야한다, 그래야만 한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았으면 좋겠다. 그 개념이 확실히 사람들 마음속에 인지된다면 누구도 이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은 '배제'해야 한다는 선택을 가장 먼저 내어놓지 않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고, 그 사람들이 자기 말을 할 수 있는 장이 우리 사회 안에서 보장되고 보호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모아내는데 많은 힘을 보탤 것이다. 이 글을 보는 여러 사람들도 이런 생각에 힘을 보태어 주었으면 한다.



참고자료 : http://www.ksa21.or.kr/disser/3th_winner/2%EC%9D%80%EC%83%81_14-075_%EB%B0%B1%EC%9D%B8%EB%B2%94.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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