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콧 니어링 자서전』
스콧 니어링은 1883년부터 1983년까지 꼬박 백년의 삶을 살았습니다. 산업자본주의가 발달하고 대공황과 세계대전, 사회주의 국가의 탄생과 냉전이 그의 삶의 배경이었죠. 100년이라는 시간을 충실히 살았던 사람이어서일까요, 그의 삶은 마치 위대한 두 사람의 인생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먼저 그의 첫 번째 모습은 현실참여적인 대학 교수로서의 모습입니다. 그는 대학에서 사이먼 넬슨 패튼 교수의 조언에 따라 ‘소득 분배 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합니다. 이는 이후 그가 계급 갈등, 자본주의의 모순에 눈을 뜨는 계기가 됩니다. 이후 경제학 교수가 되어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사회 문제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밝힙니다. 그렇게 현실비판적 강연을 이어나가던 중 그는 교단에서 퇴출당하고 말았습니다.
스콧 니어링이 교수가 되기로 결정하고 좋은 강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읽다보면, 작은 일 하나도 계획성 있게 그리고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태도에 감탄하게 됩니다. 좋은 강연을 위해 그는 강연 내용은 물론이고 무대공포증을 극복하고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자질을 갖추기 위해 야간에 수사학 강의까지 듣습니다. 그렇게 노력한 결과 그는 대중강연으로도 이름을 날리게 됩니다. 역시 일타 강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 봅니다.
대학에서 퇴출당한 후 그는 평화주의자, 채식주의자, 사회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생명을 존중하기에 평화주의자와 채식주의자가 되기로 했으며, 인간에게 최대한 창조적이고 건설적이며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는 협동적 사회를 만들기 위해 사회주의자가 되기로 한 것이죠. 그는 당시 미국의 대기업들이 정치권과 결탁하여 엄청난 재산을 축적하고 노동자들의 생산물을 부당하게 착취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세력이 다른 세력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사회가 아니라 협동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사회주의가 가장 효과적인 대안이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그는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윤리적인 삶이라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생각으로 그는 사회주의자가 되어 사회당에 가입하지만, 미국 사회당의 분열과 실망스러운 모습에 탈당하여 공산당에 입당합니다. 1927년 입당한 후 연설과 교육에 정력을 쏟았지만 1930년 <제국의 황혼>이라는 책으로 인해 소련과 갈등하게 됩니다. 거칠게 요약하면 그가 책에서 언급한 제국주의의 모습이 레닌이 다루지 않았던 부분까지 다루고 있다는 점이 문제였다고 합니다. 이런 모습에 실망하여 그는 탈당하려 했지만, 공산당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축출했다고 발표해 버립니다. 예나 지금이나 보수나 진보나 집단주의와 권위주의에 빠지면 약도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그는 근대 이후의 매스커뮤니케이션의 문제점도 날카롭게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과학 기술의 발달이 대중에게 지식을 널리 전파하고 그들을 계몽하여 소수가 독점하던 권력이 대중에게 이양될 것이라는 생각은 한낱 꿈에 불과했던 것이죠. 매스컴은 소수 자본가와 권력자들의 프로파간다, 즉 정치적 선전 수단이 되어 대중을 더욱 무력하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문제 의식은 매스미디어에서 소셜미디어로 커뮤니케이션의 축이 이동하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주류 사회에서 추방당한 스콧 니어링은 그러한 상황에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자급농이 되기로 합니다. 이 대목은 그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던 H.D.소로와 톨스토이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는 소로처럼 자신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생계비를 계산하고 그 금액을 충당하기 위한 계획을 치밀하게 세웁니다. 스스로 의식주를 해결하고 자신을 둘러싼 자연과 상호작용하며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삶이야말로 인간다운 삶이라 생각했던 것이죠. 니어링 부부는 자급자족하는 생활을 통해 의식주를 충당하고 노동의 기쁨을 맛보았으며 충분하게 주어진 여유 시간에는 교육 활동을 하며 사람들과 교류했습니다.
그의 삶을 읽어내려가다 보면 그는 진보주의자나 사회주의자라는 단어로는 규정하기 어려운 인물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오히려 넓고 깊은 인생 역경 대학에서 경험하고 공부한 내용을 바탕으로 자신의 인생관을 정립하고 그에 충실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며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근본주의자였습니다. 그의 근본주의는 오직 인간다운 삶을 향해 있었습니다. 앎과 삶은 하나여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그것을 온전히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는 드문 세상에서 앎과 삶이 일치하는 삶을 살았던 위대하지만 소박한 이가 바로 스콧 니어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