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넘게 깨어나지 못한 식물인간 환자가 있습니다. 의사와 가족들은 환자를 둘러싸고 연명치료를 지속할지 논의하고 있는데요.
그로부터 몇 년 후 놀라운 사실이 밝혀집니다. 그는 사실 식물인간이 아니었습니다.
1983년 벨기에 20대 남성이 교통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집니다. 뇌에 심각한 손상을 입은 롬 하우벤은 결국 식물인간 판정을 받게 되는데요. 하우벤의 어머니는 식물인간이 된 자신의 아들을 정성껏 간호합니다.
그렇게 23년의 시간이 흐르고 하우벤은 여전히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종종 이상한 느낌을 받습니다. 식물인간 상태인 아들이 자신의 말을 알아듣는다고 느낀 것이죠. 가령 "하우벤의 목이 돌아갔네. 다시 돌려줘야겠어"라고 혼잣말하면, 희미하게 머리가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경험들이 반복되자 어머니는 의사에게 정밀한 뇌 검사를 요청합니다. 그리고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하우벤의 의식은 정상이었습니다. 전신이 마비되어 움직일 수 없었을 뿐 23년 동안 소리를 듣고, 냄새를 맡고, 느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식물인간이 아닌 감금증후군 환자였습니다.
식물인간과 감금증후군
감금증후군은 의식은 정상이나 전신마비로 인해 외부 자극에 반응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운동신경의 손상으로 몸을 움직일 수도, 말을 할 수도 없습니다. 허나 정신은 멀쩡하여 일반인과 똑같이 듣고, 느끼고, 생각할 수 있죠. 겉보기엔 이런 모습이 의식이 없는 혼수상태와 같아 간혹 식물인간으로 잘못 판정되기도 합니다.
뇌간은 간뇌, 중뇌, 뇌교, 연수로 구성되어 있다.
식물인간은 뇌의 대뇌피질이 손상된 상태입니다. 대뇌피질은 전체 뇌 무게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가장 큰 부위로 외부 자극(빛, 소리, 촉각) 감각, 고차원적 사고, 움직임과 관련이 깊은 곳입니다. 따라서 이 대뇌피질이 손상된 식물인간 환자는 생각할 수도, 듣고 말할 수도 없죠. 다시 말해 의식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반면 감금증후군은 뇌의 뇌간이 손상되어 나타납니다. 뇌간은 뇌와 몸을 연결해주는 전달 통로들이 있는 곳인데요. 이 중 뇌의 명령을 몸으로 전달하는 하행선 통로가 손상되어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가 바로 감금증후군입니다. 침대에 누워 움직일 수도, 말을 할 수도 없습니다. 허나 대뇌피질은 멀쩡하기에 일반인과 똑같이 듣고 느끼고 생각할 수 있죠. 정신은 멀쩡한 상태로 움직일 수 없는 몸에 감금되는 겁니다.
감금증후군 환자는 외관상 식물인간 환자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환자가 식물인간 상태인지 감금증후군인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가장 정확한 방법은 뇌영상 촬영입니다. fMRI를 통해 환자의 뇌를 촬영하여, 대뇌피질이 활성화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죠. 또한 일부 감금증후군 환자들은 눈동자를 움직이거나 미세하게 얼굴 근육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의식 여부를 테스트하여 감금증후군을 판단합니다.
감금증후군 환자들 이야기
제발 저를 죽여주세요. 지난 7년은 저에게 악몽이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감금증후군 상태라면 어떨 것 같으세요? 아마 답답함에 미쳐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실 겁니다. 실제 영국에서 한 감금증후군 환자가 자신을 안락사시켜 달라는 소송을 내기도 하였죠.
그러나 여기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출판한 감금증후군 환자가 있습니다. 프랑스 언론인이었던 보비는 뇌출혈로 인해 감금증후군 판정을 받습니다. 그가 움직일 수 있는 건 왼쪽 눈꺼풀을 깜빡이는 것뿐이었죠.
보비는 몸 속에 감금 되어있는 자신의 경험을 책으로 쓰기 시작합니다. 출판사 직원이 알파벳을 순서대로 외우면, 원하는 알파벳에 왼쪽 눈을 깜빡여 의사를 표현했죠. 장장 15개월 동안 20만 번의 눈꺼풀을 깜빡거린 보비는 1997년 130페이지에 달하는 책 <잠수복과 나비>를 출간합니다. 그리고 책이 출간되고 10일 후, 보비는 세상을 떠납니다.
보비의 책은 2007년 <잠수종과 나비>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됩니다. 그의 이야기는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는데요. 세상을 떠나기 전, 보비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