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와 분자가 형체 형성 조율
배아는 어떤 발달과정을 거쳐 성체가 될까?
언뜻 쉬운 듯이 보이는 이 질문은 과학자들이 지난 수백년 동안 도전을 계속해 온 생명체의 신비롭고도 심오한 물리적 변형 과정이다.
유전자와 분자는 발달 중인 배아(embryo)에서 형태를 탄생시키기 위해 힘과 생체의 조직적 강도를 어떻게 조절할까?
우리의 DNA에 암호화돼 있는 복잡한 장기와 조직이 생겨나는 정확한 메커니즘은 무엇일까?
이런 난해한 질문에 좀더 가까운 답을 찾기 위한 연구 성과가 나왔다.
미국 컬럼비아대 공대 생의학공학팀은 과학저널 ‘네이처’(Nature) 16일자에 초기 배아 발달에서 분자신호에 의해 세포가 집단으로 이동해 장기를 형성하게 된다는 연구를 발표했다.
연구를 이끈 난단 네루카르(Nandan Nerurkar) 생의학공학과 조교수는 하버드의대 박사후 연구원으로 있을 때 배아 발달의 특정 측면에 연구의 초점을 두었다.
즉, 어떻게 줄기세포 그룹(내배엽)이 발달 중인 배아의 표면에서 중심으로 이동하고, 평평한 시트에서 가운데 구멍이 있는 튜브로 변형이 되는가 하는 점이다.
장관(gut tube)으로 알려진 이 구조는 이어서 전체 호흡기와 위장관(gastrointestinal tracts)의 내벽을 형성한다.
발달 중인 병아리 배아에서 후장을 형성하기 위해 세포들이 어떻게 내재화하는지를 연구하기 위한 시간 차 실험에서 내배엽 세포 이동의 궤적. 시간은 0시간(보라)에서 16시간(흰색)까지 트랙 색상으로 인코딩되었다. ⓒ Nandan Nerurkar/Columbia Engineering
분자신호가 장기 형성 물리신호로
네루카르 교수는 이번 연구에서 하버드대 동료연구진과 협력해 초기 배아발달에서의 이 중요한 단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
연구팀은 장관 형성이 내배엽의 집단적인 세포 이동에 의해 유도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세포들은 이 과정을 통해 각자 위치에 대한 재배열 없이 한꺼번에 원거리를 이동한다.
이들은 또한 이런 세포의 집단 이동이, 분자 증감(molecular gradient)을 힘의 구배로 변환시켜 세포들을 배아의 표면에서 안쪽으로 유도하는 세포들에 의해 촉발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발견은 분자 신호가 어떻게 우리 장기를 형성하는 물리 신호로 변환되는지에 대한, 특히 척추동물들 사이에서 보기 드문 몇 가지 사례 가운데 하나다.
이 연구 결과는 실험실에서 줄기세포를 사용해 기능성 장기를 창출하는 방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선천성 위장관 기형의 근본 원인을 새롭게 이해하는데도 도움을 준다.
네루카르 교수는 “우리 주요 목표는 겉으로 보기에 제대로 조직화되지 않은 둥근 세포 공에 지나지 않는 초기 배아로부터 어떻게 인간과 같은 복잡한 유기체가 정밀하게 형성되는가를 이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네루카르 교수는 “우리 주요 목표는 겉으로 보기에 제대로 조직화되지 않은 둥근 세포 공에 지나지 않는 초기 배아로부터 어떻게 인간과 같은 복잡한 유기체가 정밀하게 형성되는가를 이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Pixabay
발달생물학에 수학 및 공학적 방법 결합
줄기세포를 성숙한 세포 종류로 분화시키는 유전자 확인 작업은 네루카르 교수의 1차 연구 목표로서, 실험실에서 대체 장기를 길러내기 위한 중요한 단계다.
네루카르 교수는 그러나 이것은 전체 그림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이런 세포들이 기능성 3차원 기관으로 조직화되도록 지시하는 방법을 이해하는 것도 똑같이 중요하다”며, “발달 중인 배아는 그 구성방법(recipe)을 가지고 있고, 우리를 포함한 많은 연구그룹들이 물리학과 역학 언어를 활용해 이를 분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에 포함된 네루카르 교수의 박사과정 어드바이저였던 클리포드 태빈(Clifford J. Tabin) 하버드대의대 유전학 주임교수와 마하데반(L Mahadevan) 하버드대 응용수학과 유기체ᆞ진화생물학 및 물리학 교수는 발달생물학의 최첨단에 있는 혁신적인 접근방법을 사용했다.
이들은 발달 중인 병아리 배아에서의 세포 이동에 대한 유전자 발현 및 실시간 타임 랩스 현미경 분석과 조작을 포함한 전통적인 발달생물학 접근법에, 수학적 모델링 및 힘과 변형 측정 같은 공학적 방법을 결합시켰다.
병아리 배아에서 내배엽 세포의 현미경 사진. 세포는 녹색형광단백질(녹색)으로 시각화했다. 세포와 세포 사이의 접착 단백질 E-cadherin은 빨간색으로 표시. ⓒ Nandan Nerurkar/Columbia Engineering
내배엽 내재화의 뒷창자 부분에 초점
연구팀은 내배엽 내재화(internalization)의 한 부분 즉, 소장과 대장 및 결장의 절반을 생겨나게 하는 뒷창자(hindgut)에 초점을 맞췄다.
이전에 창자 관 형성에 대해 알려진 것은 운명-지도작성 실험(fate-mapping experiments)에서 나온 것이다. 이 지도에서 세포들은 발달 초기에 표지를 붙여 나중에 발달을 마감하는 곳으로 매핑됐다.
이 같은 정적 분석은 과정의 시작과 끝의 정적 이미지를 사용해 중간에 일어난 일은 교육적으로 추측하도록 하는 것으로, 대부분의 발생학 교과서에 있는 장관 형성의 시각을 나타낸다.
네루카르 교수는 “우리의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 견해는 불완전하고 최악의 경우에는 완전히 잘못되었다”고 지적했다.
초기 운명-지도 연구와 달리 네루카르 교수팀은 살아있는 배아의 이미지를 사용해 내배엽이 내재화돼 장관을 형성할 때의 세포 이동을 직접 관찰했다.
분자 증감이 힘의 구배로 전환
이들은 이어 기계공학과 발달생물학의 접근법을 조합해 그런 세포 이동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그리고 이 이동이 어떻게 조정돼 초기 배아에서 중요한 구조를 형성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연구팀은 분자의 증감이 세포로부터 나오는 힘의 구배로 전환돼 세포 이동이 조정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힘은 세포들이 감지하는 분자 신호 즉, 섬유아세포 성장인자(FGF)의 양에 비례해 끌어당겨진다.
이것은 내배엽 세포 사이에 줄다리기 경쟁을 초래한다. 이때 한 ‘팀’이 이기기 시작하면 세포들은 상대팀 선수들을 FGF가 낮은 농도에서 높은 농도로 끌어당겨 선수들을 보강한다.
FGF의 불규칙성은 여러 가지 발달 결함으로 이어질 수 있다. 네루카르 교수는 “인간 발달과정에서 장관 형성 오류는 유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고, 임신 첫 3개월 중에 상대적으로 유산 위험이 높은 것은 이런 과정이 일어나는 기간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인간 발달과정에서 장관 형성 오류는 유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고, 임신 첫 3개월 중에 상대적으로 유산 위험이 높은 것은 이런 과정이 일어나는 기간이기 때문이다. ⓒ Pixabay
재생의학과 조직공학에 활용 가능
이번 연구는 내배엽 내재화의 한 부분인 뒷창자에 초점을 맞추었으나 소화관 앞부분인 앞창자(foregut)와 중간창자(midgut)가 어떻게 기관들을 형성하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앞창자는 기도와 폐, 식도, 위와 간을 형성하며, 중간창자는 췌장과 소장을 만든다.
네루카르 교수는 그의 새로운 접근법을 사용해 배아 발달의 다른 영역들을 연구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섬유아세포 성장인자(FGF) 신호가 더욱 광범위하게 작용해 다른 조직과 기관 발달 역학을 조절하는지 여부와 그 방법도 조사할 계획이다.
그는 “기계역학과 분자들이 서로 판이한 조직들을 초기의 같은 줄기세포 풀로부터 이질적인 메커니즘으로 형성해 내기 위해 어떻게 조정하고 통합하는지에 대해 좀더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FGF 신호전달의 조직-수준 역학 흐름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우리는 이제 이 중요한 경로가 발달 과정에서 심장과 뇌, 척수를 포함한 다른 조직과 기관을 어떻게 형성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네루카르 교수는 현재 실험실에서 재생 조직을 디자인하고 구축하는데 사용할 정량적 분자-역학 관계를 개발하고 있다. 여기에는 확산 가능한 신호(세포에 의해 분비돼 이웃 세포에 흘러가는 지시 신호)의 제어된 전달을 사용해 세포가 기능성 조직과 기관을 자기 조직화해 형성토록 지시하는 신호가 사용된다.
만약 그 자신이나 다른 연구자들이 배아 조직 형성의 디자인 원리를 구축할 수 있다면, 재생의학 및 조직공학 응용에 같은 원리를 적용하는 것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김병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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