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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언스타임즈 Jan 30. 2019

일생이 전성기였던 화학자

노벨상 오디세이 (75)

누구에게나 한번쯤은 전성기가 있다. 과학자들에게 전성기는 세간의 주목을 끄는 연구 업적들을 발표하는 시기일 것이다. 미국 노스웨스턴대학 연구진이 구글 검색과 학술정보 데이터베이스 등을 이용해 과학자 2만여 명을 조사한 결과 그들의 전성기는 평균 3.7년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생애 전체가 전성기였던 과학자가 있었다. 바로 최초의 생화학자이자 탄수화물의 아버지로 불리는 에밀 피셔가 그 주인공이다. 1902년에 노벨 화학상을 받은 그는 대학 강사로 임명된 20대 초반부터 60대 후반에 생을 마감할 때까지 끊임없이 새로운 연구를 발표하며 많은 업적을 남겼다.
     
에밀 피셔는 1852년 10월 9일 쾰른 근교에서 성공한 사업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위로 딸만 다섯을 두었던 그의 부모는 첫 아들인 피셔에게 엄청난 애정을 쏟았다. 부친은 피셔를 자신의 후계자로 키우려 했으나, 공부하는 것을 좋아했던 피셔는 본대학의 화학과에 입학했다.

최초의 생화학자이자 탄수화물의 아버지로 불리는 에밀 피셔의 전성기를 끝낸 것은 바로 제1차 세계대전이었다. ⓒ Public domain 


그러나 화학보다 물리학에 관심이 더 많았던 그는 본대학에 입학한 지 1년 만에 사촌인 오토 피셔의 권유로 새로 설립된 스트라스부르대학으로 옮겼다. 거기서 피셔는 아돌프 폰 바이어 교수를 만났는데, 그의 영향으로 피셔는 자신의 삶을 화학에 바치기로 결심했다.

     
박사 학위를 받은 후 곧바로 바이어 교수의 조교가 된 그는 바이어 문하에서 연구를 계속해 페닐하이드라진을 발견하는 성과를 올렸다. 방향족 탄화수소의 일종인 페닐하이드라진은 다양한 염료와 의약품의 합성과정에서 중간물질로 얻어지는 인돌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 페닐하이드라진의 발견은 이후 그의 많은 연구업적과 관련이 있다.
     
29세 때 에를랑겐대학의 화학과 교수로 정식 임용된 피셔는 푸린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다. 탄소 원자와 질소 원자로 이루어진 헤테로고리 계열의 유기화합물인 푸린은 DNA 성분을 만드는 중요한 물질이다.

푸린은 DNA 성분을 만드는 중요한 물질이다. ⓒ Pixabay


노벨상 받고도 활발한 연구 활동 이어가

   
그는 소변에 많이 함유된 요산, 크산틴 등과 커피나 차 속의 자극제 성분인 카페인 등의 물질이 푸린유도체임을 입증했다. 이처럼 푸린은 다양한 성질을 가진 화합물로 변하는 것이 특징인데, 그가 연구한 푸린유도체만 해도 150개에 달한다.
     
특히 요산과 크산틴이 같은 전구체에서 기인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그의 연구는 현대 생리학 이론을 강하게 뒷받침한다는 의미에서 매우 중요하다.
     
포도당과 과당 같은 당을 연구해 모든 당류의 분자구조를 결정하고 다양한 당류를 합성한 업적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자연 포도당을 포함한 약 30개의 당과 그에 관계된 많은 화합물을 합성했으며, 글루코시드를 만드는 정확한 방법을 발견했다. 식물에 가장 많이 들어 있는 글루코시드는 탄수화물 중 글루코오스 화합물을 일컫는 총칭이다.
     
또한 그는 당류 분자를 구성하는 원자들의 3차원 공간 배치를 규명함으로써 분자의 입체적 구조를 완전히 결정했다. 이처럼 3차원의 복잡한 분자구조를 원소 기호 등을 이용해 2차원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피셔투영법이라 한다.

3차원의 복잡한 분자구조를 원소 기호 등을 이용해 2차원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피셔투영법이라 한다. ⓒ 위키피디아


발효될 때 일어나는 효소 반응이 특정한 기질에서만 촉매작용을 일으킨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즉, 자신의 모양에 맞는 열쇠가 있어야만 자물쇠를 열 수 있는 것처럼 발효를 일으키는 효소와 기질은 서로 특별한 모양을 갖는다는 내용이다.

     
그는 베를린대학에 재직하고 있던 1902년에 당류 및 푸린 합성에 대한 업적을 인정받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그 후에도 그의 새로운 연구는 끝없이 이어졌다. 아미노산의 특성을 확인해 여러 물질을 합성했으며, 여러 개의 아미노산을 결합시킴으로써 천연 단백질과 유사한 폴리펩티드를 만들어냈다.
     
1914년에는 세계 최초의 뉴클레오티드를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 염기, 당, 인산으로 구성된 뉴클레오티드는 DNA나 RNA 같은 핵산을 이루는 단위체이다.
     
두 아들의 죽음 이후 극단적 선택
   
당연히 화학회사들의 스카우트 제의도 빗발쳤다. 하지만 그는 모든 유혹을 뿌리치고 대학에 남았다. 실용 위주의 연구보다 학문적인 연구를 마음대로 있는 대학이 더 좋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의 전성기는 거기까지였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후 그는 더 이상 자신만의 연구를 고집할 수 없게 됐다. 조국을 위해 군사용 화학약품 및 식품 개발을 맡아야 했던 것이다.

에밀 피셔는 1차 세계대전으로 두 아들을 잃고 비관하여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 위키피디아


그보다 그를 더 견딜 수 없게 만든 것은 아들들의 죽음이었다.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둘째 아들이 전사한 데 이어 셋째 아들마저 군사훈련을 받던 중 25세의 나이로 자살하고 말았다. 게다가 건강마저 악화됐다. 오래 전부터 앓아온 위염과 기관지염에다 신경 및 피부 등에도 질환이 생겼다.

     
결국 그는 셋째 아들과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1919년 7월 15일 자살한 그의 시신이 발견된 것이다. 독일 화학회에서는 기념 메달을 만들어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로부터 26년 후인 1945년 3월, 또 한 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자살한 채 발견됐다. 혈색소 연구 및 헤민의 합성, 포르피린류, 클로로필 등의 구조를 결정한 업적으로 1930년에 노벨 화학상을 받은 독일의 유기화학자 한스 피셔였다.
     
그는 뮌헨대학에서 의사 면허를 취득한 후 뮌헨의 병원을 거쳐 베를린대학 화학연구소에서 3년간 에밀 피셔의 조수로 일한 적이 있다. 공교롭게도 뮌헨대학의 유기화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노벨상까지 받은 그를 자살로 몰아넣은 범인 역시 전쟁이었다. 그는 2차 세계대전 중에 폭격으로 연구실이 파괴되어 더 이상 연구를 할 수 없게 되자 우울증을 앓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성규 객원기자


기사원문:

https://www.sciencetimes.co.kr/?news=%ec%9d%bc%ec%83%9d%ec%9d%b4-%ec%a0%84%ec%84%b1%ea%b8%b0%ec%98%80%eb%8d%98-%ed%99%94%ed%95%99%ec%9e%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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