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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언스타임즈 Jan 30. 2019

녹조의 ‘독’도 ‘약’으로 만드는 물벼룩

박테랑 독을 체내 곰팡이 제거용으로 활용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인 2004년에 경남지역 주민들은 수질 문제로 큰 낭패를 본 적이 있다. 상수원으로 사용하는 낙동강 하류가 여름이 되면서 온통 녹색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마치 푸른 물감을 풀어 놓은듯 한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그때의 낙동강 하류는 녹조류의 급속한 번성으로 인하여 썩어가고 있었다.

낙동강 하류를 오염시켰던 녹조 사태 ⓒ 연합뉴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녹조류의 천적이라 할 수 있는 물벼룩들이 어디선가 나타나 그 많은 녹조들을 먹어치우기 시작한 것.

     
물벼룩들이 나타나기 전만 하더라도 65.8ppb까지 치솟았던 녹조류 농도는 불과 10일 만에 30% 수준인 19ppb로 떨어지면서 평상시 수준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당시 녹조로 인해 비상체제에 돌입했던 경남 지역 공무원들은 ‘물벼룩이 효자’라고 치켜세우면서, 향후에도 녹조가 발생했을 때 물벼룩을 적극적으로 이용할 것을 다짐한 바 있다.
     
녹조는 독성 물질 생성과 감염성 곰팡이 증식 시켜
   
녹조 발생이 문제가 되는 것은 색깔도 색깔이지만, 그 안에 포함되어 있는 독성 물질과 감염성 곰팡이들 때문이다.

녹조에 포함되어 있는 독성 물질은 어패류는 물론, 사람을 포함한 동물이나 곤충들에게도 치명적이다. ⓒ Pixabay


녹조를 일으키는 미생물은 크게 녹조류와 남조류로 구분되는데, 독성을 분비하는 미생물은 대부분 남조류에 속한다. 이들 남조류가 내뿜는 독성 물질은 수중에 사는 어패류는 물론, 사람을 포함한 동물이나 곤충들에게도 치명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미 캘리포니아주의 수자원관리국(DWR)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남조류의 일종인 ‘시아노박테리아(cyanobacteria)’가 증가했을 때 발생하는 독성 물질은, 특히 어린이와 애완동물에게 치명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DWR의 관계자는 “시아노박테리아와 접촉만 해도 눈은 충혈되고, 피부에서는 두드러기가 일어날 수 있다”라고 경고하며 “심한 경우 구토와 설사 등의 증상까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녹조가 발생한 지역에서 잡은 어패류는 섭취하면 안된다”라고 덧붙였다.

시아노박테리아의 현미경 사진 ⓒ thepetridish.my 


감염성 곰팡이에 의해 일어나는 폐해 또한 만만치 않다. 녹조류나 남조류에 붙어 포자 상태로 기생하다가 어패류나 곤충, 또는 동물의 체내로 들어가게 되면 이를 숙주로 삼아서 해로운 질병을 전달한다.

     
따라서 어패류나 동물의 입장에서 보면 남조류가 분비하는 독성 물질과 곰팡이가 전달하는 각종 전염병들이 모두 위협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물벼룩은 어떻게 녹조를 먹이로 삼는 것일까. 이 같은 의문에 대해 최근 미국의 과학자들이 흥미로운 실험결과를 제시하여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관련 기사 아래)



물벼룩 증식시켜 녹조 제거 용도로 활용

   
녹조와 물벼룩의 상관 관계를 연구하고 있는 과학자들은 미시간대의 연구진이다. 이들은 물벼룩이 녹조를 섭취할 때 독성 물질과 곰팡이들을 모두 섭취하게 되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개체들과 달리 건강을 유지하며 오히려 증식하는 현상에 대해 주목했다.
     
미시간대의 ‘크리스텔 산체스(Kristel Sanchez)’ 박사가 이끄는 연구진은 호수에서 녹조를 일으키는 녹조류 및 남조류, 그리고 곰팡이와 이들을 먹으며 생존하는 물벼룩의 상관 관계를 조사했다.
     
산체스 박사는 “물벼룩은 녹조를 섭취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남조류가 분비하는 독성 물질과 기생성 곰팡이를 함께 흡입했을 것”이라고 예측하며 “상식적으로는 이런 영향 때문에 물벼룩은 성장에 장애를 받거나 사멸해야 하지만, 오히려 증식이 되는 현상이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했다”라고 말했다.
     
실험에 착수하기 전 연구진은 남조류 중에서도 시아노박테리아가 만드는 독성 물질이 기생성 곰팡이에 영향을 끼쳐서 감염률을 낮추는 것이 아닌가하는 가설을 세웠다. 그리고 해당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녹조로 가득한 수조에서 물벼룩을 키웠다.
     
그 결과 연구진이 세운 가설대로 시아노박테리아가 만드는 독성 물질이 물벼룩의 생육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벼룩은 독성 물질에 대한 내성을 갖고 있어서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지만, 곰팡이는 내성이 없기 때문에 독성 물질로 인해 억제되거나 사멸된다는 것이 연구진의 조사 결과였다.

녹조의 독성 물질을 약으로 활용할 수 있는 물벼룩 ⓒ ASLO.net 


마치 ‘독극물도 때로는 약이 될 수 있다’라는 속담을 연상시키는 것 같은 물벼룩의 이 같은 생체 특성은 증식률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독성 물질과 곰팡이를 함께 섭취한 물벼룩이 곰팡이만 삼킨 물벼룩보다 증식률이 더 높은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산체스 박사는 “사실 남조류는 영양소라는 측면에서만 보면 녹조류에 비해 열등한 구조를 갖고 있다”라고 밝히며 “만약 곰팡이 감염이 없는 상황이라면 녹조류만 먹는 물벼룩의 증식률이 2~3배 정도 높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이 같은 원리를 이용한다면 남조류가 분비하는 독성물질 만을 추출하여 물벼룩에 급이하면서 체내에 있는 곰팡이를 사멸시키고, 결국에는 물벼룩을 증식시켜 녹조 제거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자연계에는 물벼룩처럼 독성 물질을 섭취해서 질병을 치료하는 경우가 종종 관찰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독이 있는 식물을 섭취하여 전염병을 치료하는 제왕나비(monarch butterflies) 같은 경우가 대표적인데, 물벼룩 역시 유사한 특징을 보여주고 있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김준래 객원기자


기사원문:

https://www.sciencetimes.co.kr/?news=%eb%85%b9%ec%a1%b0%ec%9d%98-%eb%8f%85%eb%8f%84-%ec%95%bd%ec%9c%bc%eb%a1%9c-%eb%a7%8c%eb%93%9c%eb%8a%94-%eb%ac%bc%eb%b2%bc%eb%a3%a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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