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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언스타임즈 Feb 08. 2019

장내유익균, 정신건강과 연관 있다?

과학에세이 300

“일본인들이 긴장을 푸는 방법을 연구하는 데 몰두하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일본은 장시간 노동뿐 아니라 좋은 학교와 좋은 직장에 들어가야 한다는 압박과 경쟁이 심한 사회다. 자살률이 한국과 헝가리 다음으로 세계 3위다.”

   
최근 미국 작가 플로렌스 윌리엄스의 책 ‘자연이 마음을 살린다’를 읽다가 위의 구절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일본이 스트레스가 심한 나라라는 걸 자살률이 우리나라의 뒤를 바짝 쫓고 있다는 것으로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이제 우리나라는 세계가 공인하는 ‘자살 공화국’이 된 것 같아 씁쓸했다.
     
압박과 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우울증으로 이어지고 결국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위험성이 높아진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자살 공화국의 오명을 벗으려면 우울증을 줄이기 위한 다각적인 노력을 펼쳐야 하지 않을까. ‘무한 압박과 경쟁’이라는 병적인 사회시스템을 바꾸는 게 무엇보다 시급하지만 이와 함께 다른 방법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장과 뇌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고 둘 사이의 의사소통 경로를 가리키는 ‘장-뇌 축(gut-brain axis)’이라는 용어도 있다. 장-뇌 축에 장내미생물(아래쪽에 벌레처럼 묘사돼 있다)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연구결과 삶의 질에 대한 평가나 우울증 여부에 관련이 있는 장내미생물의 종류가 밝혀졌다. ⓒ 네이처 


우울증 환자 장에 특정 미생물 적어    

   
학술지 ‘네이처 미생물학’ 2월 4일자 온라인판에는 이와 관련해 영감을 주는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실렸다. 즉 자기 삶의 질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와 전문가의 우울증 진단 결과가 당사자의 장내미생물 조성과 관련이 있다는 발견이다. 즉 장내미생물의 조성을 바꾸면 정신건강이 나아질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벨기에 루벵대를 비롯한 유럽의 다국적 연구자들은 벨기에 장내미생물프로젝트(FGFP)에 참가한 1054명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및 정신건강 진료 데이터와 이들의 장내미생물 게놈 데이터를 분석해 둘 사이에 상당한 연관성이 있다는 결과를 얻었다.
     
즉 장내미생물 가운데 10가지 속(屬)의 박테리아가 삶의 질과 관련이 있었다. 이 가운데 페칼리박테리움속(Faecalibacterium)과 코프로코쿠스속(Coprococcus), 플라보니프랙터속(Flavonifractor) 박테리아는 다른 프로젝트(LLD)의 데이터를 분석했을 때도 같은 결과여서 신빙성이 높았다.

장내미생물의 조성을 바꾸면 정신건강이 나아질지도 모른다는 연구결과가 밝혀졌다. ⓒ Pixabay


페칼리박테리움과 코프로코쿠스는 삶의 질과 비례 관계였다. 페칼리박테리움은 삶의 질 가운데 활력 및 신체기능 항목과 특히 관련이 컸고 코프로코쿠스는 전반적인 건강 느낌, 신체기능, 몸의 통증(적을수록 점수가 높다) 항목과 밀접한 관계였다.

     
반면 플라보니프랙터는 삶의 질과 반비례 관계였다. 특히 신체기능이 떨어진다고 답한 사람들의 장내미생물에서 플라보니프랙터의 비율이 높았다.
     
한편 전문가가 우울증으로 진단한 사람과 우울증이 없다고 진단한 사람의 장내미생물 조성을 비교한 결과 코프로코쿠스속과 디알리스터속(Dialister) 박테리아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왔다. 즉 우울증을 겪는 사람의 장에는 이들 박테리아의 비율이 낮았다. 그런데 장에 사는 박테리아가 어떻게 삶의 질 평가나 우울증 같은 정신적인 측면에 영향을 미치는 걸까.

장내미생물은 정신건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 Pixabay


프로바이오틱스는 영향 미미    

   
삶의 질과 비례 관계에 있는 페칼리박테리움과 코프로코쿠스는 부티레이트(butyrate)라는 짧은 사슬 지방산 분자를 만들어낸다. 부티레이트는 장벽을 이루는 상피세포의 방어막을 튼튼하게 하고 장내 염증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염증성장질환(IBD) 환자나 우울증 환자의 장에 부티레이트 농도가 낮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한편 코프로코쿠스가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의 대사물인 DOPAC의 합성에 밀접히 관련돼 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즉 코프로코쿠스의 비율이 높을수록 DOPAC가 많이 만들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흥미롭게도 뇌척수액에 DOPAC 농도가 낮은 게 파킨슨병의 표지다.

프로바이오틱스에 들어있는 박테리아는 정신건강에 별 영향을 주지 않는다. ⓒ 위키피디아


장의 건강을 위해 복용하는 장내유익균을 프로바이오틱스(probiotics)라고 부른다. 이제는 우리 귀에도 익숙한 락토바실러스속(lactobacillus. 유산균)과 비피도박테리움속(Bifidobacterium) 박테리아 균주 대여섯 가지를 조합한 처방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번 연구결과에 따르면 이들 박테리아가 정신건강에는 별 영향을 주는 것 같지 않다.

     
대신 우리에게 아직은 낯선 이름인 페칼리박테리움과 코프로코쿠스, 디알리스터 같은 박테리아가 정신건강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자들은 이런 장내유익균을 ‘사이코바이오틱스(psychobiotics)’라고 불렀다.
     
머지않아 건강보조식품 사이트에 이들 미생물이 들어있는 사이코바이오틱스 제품이 등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기사원문:

https://www.sciencetimes.co.kr/?news=%ec%9e%a5%eb%82%b4%ec%9c%a0%ec%9d%b5%ea%b7%a0-%ec%a0%95%ec%8b%a0%ea%b1%b4%ea%b0%95%ea%b3%bc-%ec%97%b0%ea%b4%80-%ec%9e%88%eb%8b%a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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