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서평 / 도시에 살기 위해 진화중입니다
생명의 진화에서 매우 첨예한 이슈 중 하나는 진화가 현재에도 일어나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진화는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아울러 진화란 자연생태계에서 주로 일어난다고 생각하기 쉽다.
이런 선입견을 갖게 되는 것은 진화를 일으키는 가장 핵심 개념인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이라는 단어에서 유추할 수 있다. 찰스 다윈은 ‘자연’이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인공적인 환경이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암시를 줬다.
또한 진화를 연구하는 주요 도구가 화석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진화는 화석이 생길 만큼 오랜 기간에 걸쳐 서서히 일어날 것이라는 무언의 압박이 생겼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최근 들어 DNA를 면밀하게 분석하고 들여다 볼 수 있는 수단이 생기면서 이런 선입견은 속절없이 무너지는 중이다.
그 결론은 “진화는 현재도 이뤄지고 있으며, 그 증거도 볼 수 있다”고 요약된다.
메노 스윌트하위전 지음, 제효영 옮김 ⓒ 현암사
‘도시에 살기 위해 진화중입니다’(Darwin Comes to Town)는 산업혁명 이후 바뀐 도시환경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진화를 설명한 책이다.
네덜란드의 가장 오래된 국립대학교인 레이던 대학교(Leiden University) 진화생물학자인 메노 스힐트하위전(Menno Schilthuizen) 교수가 썼다.
다윈이 무시한 130년 전 편지
현재 진행형인 진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나방이다. 찰스 다윈이 살아있던 1878년 앨버트 브리지스 판(Albert Brydges Farn)은 다윈에게 편지를 보냈다.
영국에서 서식하는 고리무늬나방 만큼 발견되는 지역에 따라 다채로운 종도 없을 것입니다. 이 나방은 토탄이 남아 있는 뉴포레스트에서는 거의 검은색을 띠고 석회석 지역에서는 회색이며 루이스 인근의 백악질 지역에서는 거의 흰색을 띱니다. 또 점토가 많은 곳이나 헤리퍼드셔의 적색토 지역에서는 갈색을 띱니다.
이러한 다양성이 적자생존의 원리에 따른 것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다윈은 이 편지를 읽지 않거나 무시했다. 130년이 지나서 2010년 ‘커런트 바이올로지’ (Current Biology) 저널에 ‘이 편지가 현재 진행중인 자연선택을 최초로 기록한 자료’임을 소개하는 논문이 실렸다.
밝은 색의 고리무늬나방은 희끄무레한 백악질 암석에서는 눈에 잘 띄지 않았지만,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발생한 그을음으로 시커멓게 변한 암석에서는 눈에 잘 띄면서 쉽게 잡아먹히는 상황이 됐다.
그 사이에 유전자 변이가 일어나 날개 색깔이 어두운 것들이 나타났으며 이런 나방이 자연선택돼서 살아남았다고 추정했다.
영국에서 나방연구는 진화생물학의 결정적인 증거를 보여준다. 회색가지나방은 산업혁명으로 대기오염이 심화된 시기에 허옇던 날개 색깔이 검게 변했고, 최악의 상황이 끝나자 다시 어두운 날개가 밝은 색으로 돌아가고 있다.
짙은 색깔의 회색가지나방 ⓒ 위키피디아
밝은 색깔의 회색가지나방 ⓒ 위키피디아
회색가지나방이 인간의 공업화로 인해 색깔이 변했다는 이 엄청난 현재 진행형 진화를 증명하는 영국 과학자들의 노력은 심장을 뛰게 한다.
캠브리지 대학교의 마이클 마제루스(Michael Majerus)는 2002년부터 2007년까지 회색가지나방 4864마리에 각각 표식을 달았다. 그리고 매일 밤 12개 우리에 나방 한 마리씩 풀어놓았다. 그 우리 안에는 울새나 바위종다리, 찌르레기 등 곤충을 잡아먹는 새들이 있다. 나방이 안 보이면 먹힌 것이다.
이 실험에 너무 많은 정열을 쏟아놓은 탓일까, 마제루스는 2009년 54살에 암으로 사망했다. 친구 4명이 남긴 자료를 바탕으로 2012년 바이올로지 레터스(Biology Letters) 저널에 마제루스의 연구 내용을 발표했다.
마제루스가 6년 동안 한 실험은 어두운 색깔의 회색가지나방 숫자가 2002년 10%에서 2007년 1%로 줄었음을 보여줬다. 새가 먹는 나방의 비율이 날개가 밝은 나방은 20%였지만, 날개가 어두운 나방은 30%로 나타났다.
산업혁명의 결과로 영국 나무들이 시커멓게 변했을 때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어두운 색깔의 회색가지나방은 급격히 늘어났다. 그러나 영국이 1950년대와 1960년대에 대기오염 방지정책을 추진하면서 나무 색깔이 밝아지자 어두운 회색가지나방은 휠씬 쉽게 새에 먹히면서 숫자가 급격히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나방을 통해 진화는 현재 진행형임을 확인할 수 있다. ⓒ Pixabay
산업혁명 결과로 바뀐 나방 생태계
2016년 리버풀 대학의 일릭 사케리(Ilik Saccheri)는 유전적으로 이 현상을 규명하는 논문을 네이처(Nature)저널에 발표했다.
사케리는 회색가지나방의 검은색 날개는 아미노산 2만2000개 길이의 점핑 DNA가 잘려 나와, 나방의 날개색을 조절하는 코텍스 유전자에 끼어 들어가 발생한 돌연변이라고 설명했다.
심지어 사케리는 코텍스 유전자의 구조와 염색체에서 이 유전자가 자리잡은 곳 부근의 유전정보까지 조사해서 이런 변이가 1819년경 영국 북부에서 일어난 것으로 추정했다. 이 일련의 연구는 인간이 유도한 변화에 따라 진행된 급속한 진화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저자는 이 한 가지 사례만 수록하지 않았다. 런던 지하철의 3개 노선에서 채취한 모기가 유전적으로 제각기 달랐다. 노선마다 지하환경이 다르다 보니 서로 다르게 변했다. 심지어 지상에 사는 같은 종의 모기와도 달랐다.
현재 진행형인 진화의 사례는 또 있다. 메리 봄버거-브라운(Mary Bomberger-Brown)과 찰스 브라운(Charles Brown)은 1982년부터 30년간 삼색제비를 연구하면서 삼색제비 둥지를 6000개 만들어줬다.
그리고 매년 서식지를 방문해서 제비 다리에 숫자를 새긴 작은 고리를 끼워 표시했다. 두 사람은 같은 도로변에 떨어져 있는 죽은 삼색제비를 수거해서 날개 길이 등을 측정했다.
이 지루하고 단조로운 작업을 30년간 한 결과는 2013년 커런트 바이올로지 저널에 실렸다. 1980년대 죽은 새와 산 새의 날개길이는 10.8cm로 비슷했다. 그런데 살아있는 새의 날개가 10년에 2㎜씩 짧아졌다.
미국 삼색제비 ⓒ 위키피디아
반대로 죽은 새의 날개 길이는 약 5㎜ 길었지만, 자동차에 부딪혀 죽는 삼색제비의 숫자는 90% 가까이 줄었다. 교통량은 큰 변화가 없었다. 이것은 날개가 짧아서 달려오는 자동차를 신속하게 피할 수 있는 삼색제비가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이 책에서는 약간만 다뤘지만, 이제 관심은 과연 이같은 현재 진행형의 진화가 인간에게도 일어날까 하는 점이다.
그리고 그 결론은 “그렇다”이다.
DNA분석기술은 수 년 안으로 사람의 유전체에 담긴 모든 정보를 분석해서 인간의 현재진행형 진화를 증명할 것이다.
이미 영국의 UK10K 프로젝트나 바이오뱅크(Biobank) 프로젝트에 의해 모은 수십 만 명의 DNA정보를 분석하면 수 세기 동안 키, 눈색깔, 피부색, 젖당 내성, 니코틴 욕구, 유아의 머리크기와 여성 엉덩이 둘레 및 사춘기 등에 대한 진화적인 변화가 일어났음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인간에게 얼마나 많은 변화가 일어났는지 짐작할 수 있다. 지금처럼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도시에 살아가는 이 새로운 환경의 변화는 동식물은 물론이고 인간에게도 불가피하게 엄청난 변화와 적응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진화생물학은 더욱 자주 듣는 단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인간이 건설한 도시문명은 동식물은 물론이고, 인간 자신을 변화시킬 것이다.
인간 역시 자연선택의 영향을 받을 것이다.
그렇지만, 인간은 자연선택을 불러올 환경을 스스로 선택해서 만들 수 있다.
아마도 이것이 가장 중요한 인간과 동물의 차이가 아닐까?
심재율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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