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런 크기보다 올바른 연결 방식이 중요
인간만이 수를 이해하고 계산하는 능력을 가진 것은 아니다. 원숭이도 훈련을 시키면 수에 대한 개념을 갖고 덧셈을 할 수 있다. 미국 하버드대학 연구진이 히말라야 원숭이에게 수를 이해할 수 있게 한 다음 숫자 두 개와 숫자 하나를 비교하는 훈련을 시켰다.
그 결과 원숭이는 숫자 두 개의 합과 다른 숫자 하나 중 어느 것이 더 큰지를 90%의 확률로 알아맞혔다. 예를 들면 3과 5를 합한 것이 7보다 더 크다는 것을 알았다. 이는 원숭이도 덧셈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심지어 원숭이는 두 가지 분수의 크기를 서로 비교할 수도 있다. 검은색 원과 하얀색 마름모 중 검은색 원을 선택했을 때만 사탕을 주는 실험을 반복하면 원숭이는 검은색 원이 곧 보상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단순하고 보잘것없는 크기의 뇌를 가진 꿀벌도 0을 이해하고 계산을 할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 Public Domain
그 후 연구진은 검은색 원과 하얀색 마름모를 서로 섞어서 제시했다. 예를 들면 원과 마름모의 비율이 7: 14로 되어 있는 것과 5:7로 되어 있는 식이다. 이 경우 검은 원의 절대적 개수는 7:14가 더 많지만 검은 원의 비율이 더 높은 쪽은 5:7이다.
그 두 개를 동시에 제시할 경우 원숭이는 약 70% 이상의 확률로 검은색 원의 비율이 더 큰 쪽을 선택해 사탕을 받아먹었다.
사람의 2~3배에 달하는 거대한 크기의 뇌를 가진 코끼리도 수학적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일본 연구진이 아시아코끼리를 대상으로 수적 개념을 교육시킨 후 사과나 수박 등이 그려진 두 가지 그림 중 더 큰 수가 있는 그림을 선택하게 했다.
그 결과 특정 코끼리의 경우 66%의 정확도로 더 큰 수가 있는 그림을 알아맞혔다. 연구진이 그림의 종류나 크기 등을 바꾸어 보았지만, 코끼리는 그와 상관없이 정확히 개수만을 세어 수의 크기를 비교할 줄 아는 것으로 밝혀졌다.
사람의 2~3배에 달하는 거대한 크기의 뇌를 가진 코끼리도 수학적 능력을 지니고 있다. ⓒ Pixabay
작은 뇌로도 0의 개념 이해해
그런데 단순하고 보잘것없는 크기의 뇌를 가진 곤충도 수학을 할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 주인공은 바로 꿀벌이다. 인간의 뇌에는 뉴런이 약 1000억 개, 쥐는 약 7500만 개를 가지고 있다. 이에 비해 꿀벌의 뇌는 약 100만개의 뉴런을 지니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1밀리그램도 채 되지 않는 작은 뇌로 꿀벌은 수를 다섯 개까지 셀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꿀벌은 숫자 ‘0’의 개념을 이해한다.
0이 없다면 컴퓨터와 같은 현대의 전자 장치가 존재하지 않았고, 음수의 개념도 존재할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은 오랜 기간 동안 0을 이해하지 못하고 살아왔으며 로마 숫자에도 0을 나타나는 기호는 없었다. 여전히 6세 미만 어린이의 경우 0이 1보다 작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을 어려워하고 있다.
호주 왕립 멜버른공대(RMIT)의 연구진은 꿀벌에게 도형이 더 적게 들어 있는 그림판을 선택하게끔 하는 훈련을 시킨 다음, 아무것도 없는 그림판과 함께 제시했다. 그러자 꿀벌들은 약 64%의 확률로 하나라도 도형이 있는 그림판보다 아무것도 없는 그림판을 선택했다.
반대로 도형이 더 많이 들어 있는 그림판을 선택하도록 훈련시킨 다음 도형이 아무것도 없는 그림판과 함께 제시한 실험에서도 꿀벌들은 역시 하나라도 도형이 있는 그림판을 선택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 작은 뇌로도 0이 하나보다 작은 값임을 인식하는 것이다.
호주 왕립 멜버른공대(RMIT)의 연구진은 꿀벌의 수학능력을 실험했다. ⓒ Pixabay
최근에 RMIT 연구진은 꿀벌이 덧셈과 뺄셈도 할 수 있다는 새로운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꿀벌에게 수학을 가르치기 위해 미로처럼 생긴 L자 모양의 방을 몇 개 설치했다.
이 간단한 미로에 연구진은 파란색 도형을 방마다 2~3개 정도씩 그려 넣었다. 그리고 꿀벌들을 날게 한 다음 앞의 방에서 본 도형 수보다 많게 그려진 방을 선택한 벌에게는 설탕을 주고 더 적은 곳으로 들어간 벌에게는 쓴맛이 나는 퀴닌을 주었다. 즉 덧셈을 가르친 것이다.
AI가 배워야 할 꿀벌의 수학 실력
뺄셈을 가르치는 미로에서는 노란색 도형을 이용해 반대 방식으로 훈련시켰다. 이렇게 약 100번씩 훈련시킨 결과, 실험에 참가한 14마리의 꿀벌들은 64~72%의 정확도로 덧셈과 뺄셈에 대해 각각 정답을 선택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실험을 진행한 연구진은 이 연구결과에 대해 인간처럼 큰 뇌나 언어 같은 것이 없어도 동물들은 숫자를 이해하고 계산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설사 계산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을지라도 연관성을 이용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꿀벌이 갖추고 있는 사실을 이 실험은 증명해 보인 셈이다.
꿀벌과 인간의 마지막 공통 조상은 약 6억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런데 어찌되었든 간에 척추동물과 곤충은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수를 세고 계산하는 기술을 개발한 것이다.
꿀벌의 이 같은 수학 실력은 인공지능(AI) 기술의 개발에도 많은 아이디어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는 덩치가 대폭 줄어들기는 했어도 아직까지 전기를 많이 소비하는 비효율적 기계다.
꿀벌의 이 같은 수학 실력은 인공지능(AI) 기술의 개발에도 많은 아이디어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 Pixabay
하지만 꿀벌은 미량의 과즙만으로도 상당히 높은 수준의 인지 작업을 할 수 있다. 이는 신경회로가 매우 작더라도 올바른 방식으로만 연결돼 있으면 인간처럼 수학적 계산 능력도 갖출 수 있다는 점을 알려준다. 단일한 신경회로에서 그처럼 복잡한 사고를 할 수 있다는 것은 AI 기술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게다가 꿀벌들은 집단지성을 통해 개인보다 훨씬 복잡하고 훌륭한 결정을 내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최근 연구 결과 꿀벌들의 집단지성이 내리는 의사결정 과정은 마치 인간의 방대한 뇌를 닮아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미래 AI 기술의 게임 체인저는 바로 여기에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이성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