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학자들, 종교집회 참석 '규범 위반 가능성' 우려
작고한 영국의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은 신을 믿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명한 생물학자이자 작가인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도 마찬가지다.
스티븐 호킹은 1988년에 출간한 역저 ‘시간의 역사(A Brief History of Time)에서 ‘신의 마음’이라는 단어를 썼다. 그러나 그 뒤 2010년에 공저로 내놓은 ‘위대한 설계(The Grand Design)에서는 ‘신이 우주를 창조하지 않았다’는 말을 했다.
이로 인해 호킹이 신의 역할을 인정하는 입장에서 무신론으로 선회한 게 아니냐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호킹의 ‘위대한 설계’가 출간되자 ‘만들어진 신’으로 유명한 리처드 도킨스는 ‘생물학계가 다윈의 진화론 이후 신을 생물학의 영역에서 몰아냈고, 호킹이 그동안 모호한 입장을 고수했던 물리학계에서 신의 존재 논란을 종결시킬 결정적 한 방을 시도했다’고 추켜 세웠다.
알려진 천체들이 포함된 관측 가능한 우주의 모습. 광대한 우주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고 창조의 손길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물리법칙에 따른 자연 발생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 Wikimedia Commons / Pablo Carlos Budassi
영국 과학자들의 비종교성
그러면 영국 과학자들의 이와 같은 비종교성은 일반적인 현상일까?
미국 라이스대와 바루크대, 웨스트 버지니아대 연구팀은 새로운 연구에서 과학자들이 실제로 일반인들보다 훨씬 덜 종교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와 함께 엘리트 대학에 재직하는 영국 과학자들은 권위가 떨어지는 학교의 교수들보다 예배 등 종교 집회에 거의 참석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생물학자들이 물리학자들보다 종교집회 참석률이 훨씬 많이 떨어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연구는 ‘종교의 과학적 연구’(Journal for the Scientific Study of Religion)에 ‘영국 대학 소속 과학자들의 종교적 독실성: 규율과 학과 상황의 역할에 대한 평가(The Religiosity of Academic Scientists in the United Kingdom: Assessing the Role of Discipline and Department Status)’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엘리트 대학과 비엘리트 대학에 소속된 생물학자와 물리학자에 대한 설문조사 자료를 활용했다. 과거 연구에 따르면 이런 구분이 종교적 독실성의 차이를 이해하는데 의미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의 존재 및 역할과 관련해 논란을 일으킨 영국의 대표적 유명 과학자인 찰스 다윈과 스티븐 호킹, 리처드 도킨스(왼쪽부터). ⓒ Leonard Darwin, NASA StarChild image of Stephen Hawking, Mike Cornwell from USA Credit: Wikimedia Commons
영국 과학자 45%가 “신 안 믿어”
연구팀은 영국의 과학자들, 특히 엘리트 과학자들이 종교적 신념과 관련해 일반인들과 어떻게 비교되는가에 관심을 가졌다.
조사 결과 영국인들의 18%가 신을 믿지 않는다고 말한 데 비해, 영국 과학자들은 45%가 그렇다는 대답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팀은 이와 함께 엘리트 학과 과학자들이 비엘리트 학과 과학자들에 비해 예배 등 종교 행사에 참석하지 않는 비율이 거의 두 배나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여기서 엘리트 학과와 비엘리트 학과는 논문 발표 수와 발표된 학과 순위, 내부자 지식 등으로 분류했다.
논문 제1저자로 ‘라이스 종교와 공공생활 프로그램’ 원장인 일레인 하워드 에클런드(Elaine Howard Ecklund) 사회학과 석좌교수는 이에 대해 지적인 능력 차이 때문이라기보다는, 사회적 압력의 산물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부분의 엘리트 대학에 소속된 개개인은 세속화에 대한 문화적 압력에 대해 불균형하게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의 세속화는 성화(聖化), 종교화 등과 대비되는 뜻이다.
에클런드 교수에 따르면, 엘리트 과학자들은 자신들이 엘리트 과학자로서 ‘직업적 이상에 적합하도록 덜 종교적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종교성을 덜 표현할 수 있다.
에클런드 교수는 “이번 연구결과는 엘리트 과학자들이 과학의 ‘세속화 효과’를 대표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구팀은 이번 작업이 종교와 과학 사이의 사회적 역동성을 더욱 잘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 Pixabay
영국 생물학자, 물리학자보다 종교집회 비참석률 2.5배
논문 공저자인 크리스토퍼 샤이틀(Christopher P. Scheitle) 웨스트 버지니아대 사회학 및 인류학과 교수는 “이번 연구는 영국의 생물학자들이 종교 집회에 참석하지 않을 가능성이 영국 물리학자들보다 2.5배나 높은 이유를 설명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바루크대 경영대 제러드 파이퍼(Jared Peifer) 경영학과 조교수는 “영국 생물학자들은 종교행사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으로 비춰지는 경우, 직업적 규범을 위반하는 것이 아닌가 우려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에클런드 교수는 “이런 규범 대부분은 진화, 줄기세포 연구 등 민감한 연구주제를 둘러싼 대중적 갈등의 역사에서 초래됐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이번 작업이 종교와 과학 사이의 사회적 역동성을 더욱 잘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김병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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