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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언스타임즈 Dec 24. 2018

부계 미토콘드리아도 자식에게 전달

미토콘드리아 질환 치료 신기원 열릴까

1953년 제임스 왓슨과 함께 DNA이중나선 구조를 밝힌 프랜시스 크릭은 수년 뒤 ‘유전정보는 DNA에서 RNA를 거쳐 단백질로 흐르지만, 그 반대 방향으로는 흐르지 못한다’는 가설을 내놓았다. ‘중심원리(central dogma)’라고 불리는 이 가설은 뒤에 전사와 번역 메커니즘이 밝혀지면서 사실로 입증됐다.


그러나 중심원리가 모든 상황에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1970년대 RNA를 게놈으로 지닌 바이러스에서 RNA에서 DNA로 정보가 흐르는 현상이 처음 관찰됐고, 여기에 관여하는 역전사효소가 발견되면서 중심원리에 흠집이 생겼다.

그 뒤 RNA에서 RNA로 정보가 흐르는 현상이 밝혀졌고, 심지어 단백질에서 단백질로 정보가 흐르는 예(변형 프리온 단백질은 접촉한 정상 프리온 단백질을 변형 프리온 단백질로 바꾼다)도 보고됐다.

Y염색체 게놈은 부계를 통해 전달되고 미토콘드리아 게놈은 모계를 통해 전달된다는 것도 생명과학의 중요한 원리다. 이를 기반으로 인류의 진화를 게놈 차원에서 규명하는 연구가 활발하다.

그런데 둘은 좀 차이가 있다. Y염색체의 경우 남성의 세포에만 존재하므로 모계를 통해 전달될 가능성이 원천적으로 없지만, 미토콘드리아 게놈은 모계뿐 아니라 부계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모계로만 전달될까. 난자에는 미토콘드리아가 있고 정자에는 미토콘드리아가 없어 수정란에 모계 미토콘드리아만 있다는 게 일반적인 설명이다.

난자에는 미토콘드리아가 있고 정자에는 미토콘드리아가 없어 수정란에 모계 미토콘드리아만 있다는 게 지금까지의 일반적인 상식이었다. 하지만 중심원리에도 예외사항이 존재하듯이, 정자에도 미토콘드리아가 약간 존재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 ⓒ Pixabay


세 가계 아홉 명에서 관찰


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 12월 18일자에는 세포 안에 모계 미토콘드리아와 함께 부계 미토콘드리아도 들어있는 사례를 보고한 논문이 실렸다. 이런 상태인 사람이 세 가계에서 총 아홉 명이나 되기 때문에 실험 과정의 착오이거나 정말 드문 예외적인 현상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이야기는 미국 신시내티아동병원에서 시작한다. 피로와 근(筋)긴장저하증(무기력), 근육통, 하수증(신체장기가 아래로 처지는 증상)을 보이는 네 살 남자 아이를 진찰한 의료진은 환자의 미토콘드리아 게놈을 분석했다. 세포의 에너지 발전소인 미토콘드리아의 게놈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각종 질환이 나타날 수 있다.

분석 결과 모두 31곳에서 헤테로플라스미가 발견돼 미토콘드리아 질환일 가능성이 높았다.

헤테로플라스미(heteroplasmy)란 한 세포 안에 정상 미토콘드리아 염기서열과 돌연변이 미토콘드리아 염기서열이 섞여 있는 상태다. 세포 하나에 미토콘드리아가 수백~수천 개 존재하기 때문에 미토콘드리아 게놈도 수백~수천 개에 이른다. 때문에 간혹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

한 세포 안에 들어있는 변이 미토콘드리아 염기서열의 비율을 ‘헤테로플라스미 수준’이라고 부른다. 헤테로플라스미 수준이 높을수록 미토콘드리아 질병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이 아이의 경우 변이가 관찰된 염기서열 31곳 가운데 10곳은 헤테로플라스미 수준이 29%인 반면 21곳은 71%로 나타났다. 연구자들은 이를 이상하게 여겨 아이의 형제자매와 부모의 미토콘드리아 게놈도 조사해봤다.

그 결과 엄마와 자매 두 명도 비슷한 패턴을 보였다. 즉 엄마의 특이한 미토콘드리아 구성이 자녀들에게 전달된 결과이므로 이제 초점은 엄마와 엄마의 부모로 옮겨졌다.

이들의 미토콘드리아 게놈을 분석한 결과, 놀랍게도 아이 엄마가 아이 외할머니뿐 아니라 외할아버지에게서도 미토콘드리아 게놈을 물려받았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A: 부계 미토콘드리아 전달이 발견된 집안의 가계도다. 속이 검은 네모(남성)와 동그라미(여성)이 부계 미토콘드리아가 발견된 사람들이다. 빗금이 있는 도형은 헤테로플라스미 수준이 높은 존재하는 사람들이다. B: 참조 게놈과 비교해 구성원들의 헤테로플라스미 수준을 보여주는 그래프로 맨 위는 외증조부, 그 아래는 외증조모다(Ⅳ-2 기준). 세 번째가 이들의 자녀인 외할아버지와 그의 여성 형제 두 사람으로 부계 미토콘드리아를 물려받았음을 알 수 있다(파란색 부분). 그 아래는 외증조부모의 나머지 딸과 그녀의 딸로 모계 미토콘드리아만 물려받았다. 맨 아래는 외조부의 미토콘드리아를 물려받은 딸(Ⅲ-6)과 그녀의 미토콘드리아를 물려받은 세 자녀들이다. ⓒ 미국립과학원회보 

                                                                                                          

연구자들은 다음으로 아이 외할아버지의 형제자매들의 미토콘드리아 게놈을 분석했다.

그러자 외할아버지와 그의 여자 형제 두 명 역시 부모로부터 각각 미토콘드리아를 물려받았고 여자 형제 한 명은 모계 미토콘드리아만을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즉 이 가계에서 전부 네 명(아이의 엄마, 외할아버지 및 그의 여자 형제 두 명)이 부계 미토콘드리아를 지니고 있었다.

뜻밖의 결과에 깜짝 놀란 연구자들은 미토콘드리아 질환이 의심돼 게놈 분석을 받은 다른 환자들의 사례를 조사했고 부모 양쪽에서 미토콘드리아를 받은 두 가계의 사례를 추가로 발견했다(각각 두 명, 세 명).

즉 이런 현상이 아주 드문 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 어떻게 아버지의 미토콘드리아가 자녀에게 전달될 수 있을까.

부계 미토콘드리아 파괴 메커니즘에 문제 생긴 듯

앞에서 언급했듯이 난자에는 미토콘드리아가 있고 정자에는 미토콘드리아가 없으므로 이런 일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정자에도 미토콘드리아가 약간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수정란에 부계 미토콘드리아가 없는 건 수정 직후 부계 미토콘드리아에서만 자기소화(autophagy) 작용이 일어나 선별적으로 파괴되기 때문이다.

지난 2016년 학술지 ‘사이언스’에는 환형동물인 예쁜꼬마선충의 수정란에서 부계 미토콘드리아만 선별적으로 파괴되는 메커니즘을 밝힌 연구결과가 실렸다. 즉 부계 미토콘드리아에서만 내막이 사라지면서 막에 붙어있던 단백질이 활성화돼 미토콘드리아 게놈을 파괴하고, 그 결과 미토콘드리아가 해체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연구자들은 이번에 자녀의 세포에서 부계 미토콘드리아가 발견된 현상을 위 사례와 같은 메커니즘에 결함이 생긴 결과로 추측하고 있다.

즉 정자가 난자로 침투할 때 같이 딸려 들어간 미토콘드리아에서 파괴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아 살아남았고, 그 결과 자녀의 세포에 모계 뿐 아니라 부계의 미토콘드리아도 존재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의문은 남는다. 즉 정자와 함께 들어간 부계 미토콘드리아의 개수는 기껏해야 난자의 세포질에 있는 미토콘드리아의 0.1% 수준인데, 이번 사례의 경우 전체 미토콘드리아의 수십%에 이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구자들은 부계 미토콘드리아의 선별 파괴 메커니즘이 고장 난 것과 함께, 이들의 증식을 선별적으로 촉진하는 변이도 생긴 것으로 추정했다.

흥미롭게도 사람에서 부계 미토콘드리아 발견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2002년 한 남성의 사례가 논문을 통해 발표됐고 그 뒤로도 20건의 사례가 보고됐다. 그럼에도 학계는 이 모두를 시료의 오염이나 실험자의 실수로 여겨 무시해왔다.

이번에 연구자들은 이런 반응을 예상해 새 혈액 시료를 다른 실험실에 보내 분석하게 해 결과를 대조하는 등 이중삼중의 검증을 거쳤다. 그리고 두 가계의 사례를 추가로 발굴하기도 했다.

그런데 왜 다음 세대에 모계의 미토콘드리아만 전달되게 진화했을까. 세포에서 에너지를 만드는 게 미토콘드리아의 역할이므로 모계와 부계가 섞여 있어도 상관이 없지 않을까.


지난 2016년 예쁜꼬마선충의 수정란의 세포질에서 부계 미토콘드리아만 선별적으로 파괴되는 현상을 설명하는 메커니즘이 규명됐다. 예쁜꼬마선충의 정자는 아메바처럼 생겨 세포질에 미토콘드리아가 꽤 있다(왼쪽 위). 그러나 수정이 일어난 뒤 부계 미토콘드리아의 내막이 사라지면서 묶여있던 단백질(CPS-6/ENDOG)이 게놈을 파괴해 결국 미토콘드리아가 제거된다(오른쪽). ⓒ 사이언스 

                                                                                                            

이에 대한 명쾌한 설명은 아직 나와 있지 않지만, 미토콘드리아 게놈의 유전자와 핵 게놈에서 미토콘드리아의 기능에 관여하는 유전자 사이에 궁합이 맞으려면 모계 미토콘드리아만 있어야 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미토콘드리아 질환 가운데 일부는 부계 미토콘드리아가 제거되지 않고 오히려 증폭해 존재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모계 미토콘드리아의 전달’이라는 도그마에 묶여 논문의 실험데이터를 의심하고 외면하지만 않았다면, 16년 전부터 부계 미토콘드리아 전달 현상을 연구해 지금쯤 일부 미토콘드리아 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기사원문:

https://www.sciencetimes.co.kr/?news=%eb%b6%80%ea%b3%84-%eb%af%b8%ed%86%a0%ec%bd%98%eb%93%9c%eb%a6%ac%ec%95%84%eb%8f%84-%ec%9e%90%ec%8b%9d%ec%97%90%ea%b2%8c-%ec%a0%84%eb%8b%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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