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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언스타임즈 Dec 27. 2018

인류는 어떻게 닭을 길들였을까

최초 가축은 적색야계, 8천년 전 인류와 동거 시작

약 8000년 전 인류 조상은 주거지 인근에 살고 있는 동물들과 거래를 했다. ‘우리가 너희들을 지켜주고 먹여줄 테니까, 너희들도 우리에게 먹을 것을 달라’는 식의 협력 사업이었다.


이 거래에 참여한 동물 중에 적색야계(red jungle fowl)가 있었다. 다우림 지역의 건조한 덤불이나 작은 나무숲 등에 서식하는 이 동물은 동작이 매우 빠르고 민첩하며 성질이 사나운 동물이었다.

이들은 식물의 씨앗이나 뿌리, 곤충, 개구리, 도마뱀 등을 잡아먹으며 살아가고 있었지만, 사람에게 길들여진 후에는 닭(chiken)으로 변했다.

수풀에서 야생으로 살고 있는 적색야계. 이들이 약 8000년 전 인류 조상에 의해 소, 돼지, 양 등 다른 동물보다 먼저 가축화돼 지금의 닭으로 진화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 Wikipedia 

                                                                                                           

동남아시아에서 키운 닭 세계로 퍼져나가 

27일 ‘미국 과학 및 건강 위원회(American Council on Science and Health)’에 따르면 ‘인류세(Anthropocene era)에 접어들면서 호모 사피엔스가 야생동물을 가축화하는 과정에서, 적색야계가 그 첫 번째 대상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적색야계와의 공동 진화 과정에서 인류는 야생동물을 가축화하는데 대한 통찰력을 얻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지금처럼 소나 말, 돼지 등 다양한 동물들을 가축으로 확보할 수 있었다는 것이 연구진의 결론이다.

영국 레스터대학 연구진이 작성한 이 연구 논문은 ‘영국 왕립 오픈 사이언스 학회지’ 최근 호에 게재됐다. 논문 제목은 ‘The broiler chicken as a signal of a human reconfigured biosphere’이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적색야계가 처음 가축이 된 곳은 약 8000년 전의 동남아시아 지역이다. 지금의 베트남, 미얀마, 태국, 필립핀, 인도네시아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닭의 세계화에는 스페인 사람들의 공이 컸다. 이들은 세계 전역을 대상으로 탐험을 이어가면서 아메리카와 같은 신세계에 많은 수의 닭을 남겨 놓았다. ⓒ Pixabay

                                                                                                      

새로운 동물로 변신한 닭은 4000~5000년 전 중동 지역으로 전해지고, 2700년 전부터 2100년 전까지 600년에 걸쳐 페니키아인들에 의해 향료길(Spice Route)을 타고 지금의 스페인 사람들이 살고 있는 유럽 이베리아 반도까지 전해진다.

이후 스페인 사람들은 세계 전역을 대상으로 탐험을 이어가면서 아메리카와 같은 신세계에 많은 수의 닭을 남겨 놓는다. 그리고 지금 닭은 세계 전역에서 거래가 되고 있는 중요한 무역 상품이 됐다.

현재 세계 전역에서 닭이 없는 곳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닭은 실내든 실외든 가리지 않고 살아나갈 수 있는 적응력 때문에 곳곳에서 사육돼 인류의 식생활에 큰 도움을 주고 있는 중이다.

이처럼 닭으로 진화한 적생야계의 역사 추적이 가능한 것은 세계 곳곳에 닭 뼈가 널려 있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대퇴골과 부척골 사이에 있는 경족근골(脛足根骨) 화석을 분석해 시기별로 닭의 몸집이 변화해왔음을 밝혀내고 있다.

세계 전역에서 227억 마리 식용으로 사육 

지금 야생으로 살고 있는 적색야계의 몸길이는 수컷이 39cm, 암컷이 28cm 정도이고, 몸무게는 수컷이 0.8∼1.3kg, 암컷이 0.5∼0.74g 정도다. 큰 닭의 몸무게가 6.5kg에 달하는 지금의 닭에 비해 훨씬 작은 크기다.

이렇게 작은 적석야계가 사람에 의해 길들여져 몸집이 커지기 시작한 것은 13세기 중반 이후다. 이는 영토를 확장하는데 집중해왔던 인류가 가축사육에 관심을 갖게 되고, 정복보다는 식량을 자급하는데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후 닭의 몸집은 더 커지기 시작했고, 사람에게 이전보다 더 많은 육류와 달걀을 공급하게 된다. 그러다 1900년대 들어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을 끝낸 후 닭의 모습은 또 다시 놀라운 변신을 하게 된다.

닭의 변신을 주도한 곳은 미국이다. 미 농무성은 농업인을 대상으로 한 ‘치킨 오브 투모로 프로그램(Chicken of Tomorrow Program)’을 통해 닭의 품종 개량과 함께 몸집 불리기를 시도한다.

그 결과 닭다리가 짧아지는 대신 몸집이 더 커지면서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닭의 사육 속도도 3배에서 5배 더 빨라졌다.

현재 세계 전역에서 사육되고 있는 닭의 수는 227억 마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구상에 두 번째로 많이 살고 있는 조류인 ‘빨강부리 쿠엘레아(red-billed quelea)’가 15억 마리인 점을 감안하면, 무려 15배가 넘는 수치다.

최근 들어 닭고기 소비가 급속하게 늘고 있다. 지난 2016년 전 세계에서 소비된 닭의 수는 650억 마리에 달하는데, 이는 소고기, 돼지고기, 양고기 등을 훨씬 능가하는 것이다. ⓒ Pixabay

                                                                                                         

조류학자들은 지구상에 살고 있는 닭의 수가 모든 야생종 조류의 수의 3배가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최근 들어 닭고기 소비도 급속하게 늘고 있다. 지난 2016년 전 세계에서 소비된 닭의 수는 650억 마리에 달하는데, 이는 소고기, 돼지고기, 양고기 등을 훨씬 능가하는 것이다.

현재 알을 낳는 용도로 사육한 산란닭의 경우 평균 수명이 1년이다. 반면 식용닭의 경우 수명이 5~7주 정도다. 도살되지 않은 닭의 수명이 7~13년에 달하는 것을 감안하면 너무 빠른 죽음이다.

지금까지의 닭의 역사에 비추어 봤을 때, 사람이 닭에게 너무 가혹하지 않나 의심해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문제는 육계용 닭의 경우 종의 다양성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로마시대서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 닭의 종의 수는 지금보다 3배나 더 많았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품질 좋은 식용 닭을 생산하면서 종의 수가 계속 줄어들고 있는 중이다.

가축이 되기 전 닭의 조상은 수풀 속에서 자유롭게 살고 있었던 적색야계다. 이들은 사람과의 동거를 시작하면서 그 수가 급격히 늘어났으나, 자신의 수명의 50분의 1도 살지 못하는 비운을 맞이하게 됐다.

많은 사람들이 닭고기를 즐기고 수많은 달걀 요리를 만들어먹지만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이강봉 객원기자



기사원문:

https://www.sciencetimes.co.kr/?news=%ec%9d%b8%eb%a5%98%eb%8a%94-%ec%96%b4%eb%96%bb%ea%b2%8c-%eb%8b%ad%ec%9d%84-%ea%b8%b8%eb%93%a4%ec%98%80%ec%9d%84%ea%b9%8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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