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유망기술 ③ 유전자편집
[편집자 註]
새해를 맞아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놀라운 기술들이 대거 출현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우리 삶의 속도와 질을 한 단계 높여줄 5세대 이동통신이 실현되고, 인공지능을 통해 공상을 현실로 만드는 기술혁신 시대, 사이언스타임즈는 2019년 새해를 맞아 미래를 이끌어갈 유망기술을 진단한다.
미래 유망기술 ③ 유전자편집
프랑스 보르도 대학의 뇌과학자인 에르완 베자르(Erwan Bezard) 교수는 두 달 중 일주일 꼴로 중국을 방문하고 있다.
그가 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 중국을 빈번하게 방문하고 있는 이유는 중국 과학자들이 실험실에서 키우고 있는 영장류를 만나기 위해서다.
그는 중국에서 사육되고 있는 유전자편집 영장류를 통해 퇴행성 질환 관련 자료를 얻고 있다.
3일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에 따르면 실제로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의 실험용 영장류를 보유하고 있는 나라다. 또한 영장류를 소재로 한 유전자편집 관련 논문 중 95%를 발표하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유전자가위를 활용한 영장류 실험이 중국에서 대량 시도되고 있는 가운데, 중국에서 시작된 생명윤리 논쟁이 세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 biosciences.lbl.gov
실험실 원숭이 가장 많은 나라는 중국
중국 의과학원(CAS)에서는 동물실험과학연구소 소장직을 맡고 있는 베자르 교수와 협력해 여러 가지 중요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들은 치료법 개발을 위해 자폐증에 걸린 게먹이원숭이를 대상으로 유전자가위 시술을 시도하고, 복제 양 ‘돌리’처럼 원숭이를 복제하고 있다.
또한 척수가 손상된 붉은털원숭이를 대상으로 뇌파 검사도 진행하고 있는 중이다.
중국에서 이처럼 영장류 실험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생명공학에 대한 강력한 정부 방침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현재 관련 R&D에 대해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생물의학(biomedicine), 합성생물학, 재생의료기술을 13차 5개년계획의 핵심 과제로 선정하고 적극적으로 연구성과를 독려하고 있다.
UNNC(University of Nottingham Ningbo China)의 혁신연구원인 카오 콩(Cao Cong) 박사는 “중국 정부는 생명과학 분야의 혁신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하에 중국의 생명과학기술은 놀라운 발전을 거듭해왔다. 앞으로 미국과의 치열한 패권 경쟁이 예상되고 있다. ⓒ Pixabay
적극적인 지원 하에 중국의 생명과학 역시 놀라운 발전을 거듭해왔다. 그리고 지금 미국에 이어 세계 생명과학을 주도하는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네이처’ 지에 따르면 2015~2017년 82개의 하이 퀄리티 연구저널에 투고한 생명과학 논문 중 중국에서 발표한 관련 논문의 수가 미국에 이어 두 번째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동안 2~5위를 차지했던 일본 등 주요 국가들을 모두 따돌린 것이다.
생명윤리 논쟁, 원숭이에서 사람으로
그러나 이는 수많은 윤리 논란을 부르기도 한다.
중국 과학자들은 그동안 유전자가위(CRISPR–Cas9) 기술을 이용해 놀라운 성공사례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연구 결과 대다수는 원숭이와 같은 영장류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27일 남방과학기술대학교 허 젠쿠이(He Jiankui) 교수가 유전자편집 아기를 출산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세계를 충격 속에 몰아넣었다.
이에 미국 등 서구권을 중심으로 유전자편집 기술의 연구 윤리를 놓고 뜨거운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다.
아리조나 주립대 생물학‧사회학자인 벤자민 헐버트(J. Benjamin Hurlbut) 교수는 3일 ‘네이처’ 지에 투고한 기고문을 통해 아직까지 가이드라인조차 내놓지 못하고 있는 학계 리더들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에 따르면 윤리 차원에서 유전자가위 기술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있었던 것은 2015년 12월이다.
당시 워싱턴DC에서 열린 국제회의 ‘International Summit on Human Gene Editing : A Global Discussion’에서 10여 명의 생명윤리학자들과 과학자들은 이전까지 논란을 벌여온 유전자편집과 관련된 개념과 가이드라인 정립에 합의했다.
학자들은 자리에서 “두 가지 조건이 합치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람을 대상으로 유전자편집 시술을 하는 것은 극히 무책임한 행위”라고 결론지었다.
그중 첫 번째는 유전자편집 시술에 대한 안전성 및 효능 입증이다. 두 번째는 시술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 학자들은 “두 가지 중 하나라도 빠지면 생명윤리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헐버트 교수는 “그러나 3년이 지나 소동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 어느 누구도 당시 합의 사항에 대해 거론하지 않고 있다”고 강하게 불만을 표명했다.
인류 전체가 짊어져야 할 윤리적 과제를 놓고 전 지구적 합의가 그 어느때보다 중요해지는 시점이다. ⓒ Pixabay
유전자편집은 단순히 과학만의 문제가 아니다. 힐버트 교수는 이에 대해 “부모와 자녀, 의사와 환자, 국가와 시민, 그리고 사회와 사회 구성원 간의 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인류 전체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유전자편집 문제를 과학적 사안으로 축소하면서 과학자들에게만 답을 요구하고 있다”며, 인류 모두가 관련된 이 문제를 실험실 문제로 축소하려는 흐름에 대해 ‘무책임한 행위’를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지금이라도 서둘러 ‘편집된 유전자를 후손에게 계승하는 것이 향후 인간 삶에 있어 무엇을 의미하는지’ 또한 ‘인류가 이 문제를 놓고 합의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인지’ 등에 대해 포괄적인 협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전자편집은 지금껏 SF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환상적인 이야기였다. 그러나 지금 영화 속 현실이 실제가 되고 있다. 인류 전체가 짊어져야 할 윤리적 과제를 놓고 전 지구적 합의가 그 어느때보다 중요해지는 시점이다.
이강봉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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