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거부, 심장비대 등 부작용 극복… 사회적 합의 남아
띠는 음력으로 치는 거라지만 2019년 1월 1일부터 “기해년(己亥年) 황금돼지해가 밝았다”며 여기저기서 복(福)을 상징하는 돼지 이야기가 들린다.
올해는 결혼도 많이 하고 아이도 많이 나을 거라는 예측이 나오는 걸 보면, 지난해 결혼과 출산 건수가 뚝 떨어진 데 이런 이유도 역할을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육류소비에 있어서도 돼지고기(특히 삼겹살과 족발)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 1년에 먹는 고기 52.5kg 가운데 돼지고기가 28.4kg으로 54%를 차지한다.
반면 대부분의 나라에서 가장 많이 먹는 육류인 가금류(닭, 오리 등)는 14.2kg로 돼지고기의 절반에 불과하다(2016년 기준).
그런데 어쩌면 기해년은 돼지가 인류에게 식재료 이상의 기여를 하는 원년이 될지도 모르겠다. 바로 돼지 장기를 사람의 몸에 이식하는 임상시험을 시작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장기 가운데 가장 수급이 절실하다는 ‘심장’이다. 몸에 하나밖에 없는 데다 간처럼 일부를 잘라 줄 수도 없는 심장은 사실상 뇌사상태인 사람만이 줄 수 있는 장기다.
최근까지 실험에서 돼지 심장을 받은 원숭이가 얼마 못 가 죽는 이유가 수술 전후 심장을 보관하는 데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떼어낸 돼지 심장을 혈액을 모방한 액체에 넣고 액체를 순환시키자 이 문제가 해결됐다. ⓒ 네이처
돼지 심장 이식받은 원숭이, 6개월 생존 증명
학술지 ‘네이처’ 지난해 마지막호(12월 20/27일자)에는 돼지 심장을 이식받은 원숭이가 6개월 이상 생존함을 보인 연구결과가 실렸다. 이는 기존의 57일을 훌쩍 뛰어넘은 결과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의 전제인 3개월의 두 배가 넘는 기간이다.
분류학상으로 원숭이가 훨씬 더 가까운 종임에도 돼지가 이종간 장기 이식 동물로 일찌감치 선정된 건 장기의 크기가 사람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물론 유인원이 더 비슷할 수 있지만 워낙 고등동물이라 윤리적으로 허용될 가능성이 희박하다.
같은 종에서도 장기이식의 큰 장애는 면역거부반응이므로 이종간에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따라서 지금까지 연구의 초점은 면역거부반응을 줄이는 데 집중돼 있었다. 그 결과 과학자들은 이런 방향으로 유전자를 조작한 돼지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구체적으로는 인체 면역계의 강력한 면역거부반응을 유발하는 돼지 세포막 표면의 당구조를 못 만들게 했고, 사람의 세포막 단백질을 만들도록 조작한 것이다. 그 결과 일반적인 면역억제제를 써서 면역거부반응을 억제하는 데 성공했다.
몸에 하나밖에 없는 데다 간처럼 일부를 잘라 줄 수도 없는 심장은 사실상 뇌사상태인 사람만이 줄 수 있는 장기다. ⓒ Pixabay
그럼에도 지금까지 돼지 심장을 (사람을 대신한) 원숭에게 이식했을 때 가장 오래 산 기록은 57일에 불과했고, 그나마 단 한 번뿐이었다.
뮌헨대 등 독일의 공동연구자들은 돼지의 심장을 이식받은 원숭이가 ‘왜 얼마 살지 못하고 죽는가’를 면밀히 조사해 이를 극복하는 방법을 찾기로 했다.
이들은 먼저 원숭이 다섯 마리를 대상으로 기존 방법대로 이식했다. 그러자 세 마리는 다음날, 한 마리는 3일 뒤 죽었다. 마지막 남은 한 마리는 30일을 버텼다.
연구자들이 사인을 조사한 결과, 일찌감치 죽은 네 마리에서는 소위 ‘수술전후 이종간이식 심부전’으로 불리는 전형적인 패턴이 나타났다.
한 달을 산 경우는 좌심실의 심근이 비대해져 굳으며 심정지가 온 것으로 나타났다. 즉 ‘면역거부반응’이 아니라 ‘심장의 기능 정지’나 ‘심장비대’가 문제였다.
연구자들은 돼지에서 떼어낸 심장을 원숭이에 이식할 때까지 보관하는 과정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가정했다. 보관 과정에서 떼어낸 심장을 약 두 시간 동안 4도에서 용액에 담그는데, 이때 심장조직이 약해지는 것으로 추정한 것이다.
연구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8도에서 혈액을 모방한 용액을 순환시키는 방법을 개발했다.
그리고 원숭이 네 마리를 대상으로 새로운 방법을 적용한 결과, 다른 기술적인 문제로 죽은 한 마리를 뺀 세 마리가 각각 18일, 27일, 40일 동안 생존했다. 즉 ‘수술전후 이종간이식 심부전’은 해결된 셈이다.
심장비대 막는 데 성공
그럼에도 심장이 급격히 비대해져 기능을 잃는 현상은 계속됐다. 연구자들은 돼지와 원숭이의 최적 혈압의 차이가 그 원인 가운데 하나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돼지 심장의 적정 수축기 혈압은 80mmHg인데 비해 원숭이 심장은 120mmHg이다. 따라서 연구자들은 이식을 받은 원숭이의 혈압을 낮춰주는 약물을 투입하는 동시에 심장의 비대를 억제하는 약물을 투여하기로 했다.
원숭이 다섯 마리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한 마리는 51일 만에 죽었지만 나머지 네 마리는 임상 기준이 되는 90일까지 심장에 별 이상 없이 잘 지냈다.
연구자들은 이 가운데 두 마리는 90일째 되는 날 분석을 위해 안락사시켰다.
나머지 두 마리에게는 6개월 가까이 잘 사는 걸 확인한 뒤 심장 비대를 억제하는 약물을 끊었다. 그러자 심장이 급속히 커졌고, 결국 각각 195일, 182일째 되는 같은 날 안락사 됐다.
기술적인 문제가 해결됐다고 해서 바로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을 들어갈 수 있는 건 아니다. 이종간 장기이식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 Pixabay
이번 연구로 돼지 사람 간 심장이식 임상의 방법은 정립된 셈이다.
그러나 기술적인 문제가 해결됐다고 해서 바로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을 들어갈 수 있는 건 아니다. 이종간 장기이식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과연 2019년 기해년이 사람을 대상으로 한 이종간 장기이식의 원년이 될지 지켜볼 일이다.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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