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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언스타임즈 Jan 04. 2019

영롱한 문화재의 가치, 과학기술로 보존

과학기술 넘나들기 (94)

오늘날 사람들은 ‘과학기술’이라고 하면, 보통 생활을 편리하고 풍족하게 하기 위한 신제품, 혹은 최첨단 문명의 이기 등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새로운 것’ 뿐만 아니라 ‘옛 것’을 되살리고 잘 보존하는 데에도 첨단과학기술은 여러모로 적용된다. 이처럼 문화재 보존 및 복원과 관련된 과학기술에 관해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하다.

20년의 수리 끝에 작년에 복원되었던 익산 미륵사지 석탑(복원 전의 모습) ⓒ Wikipedia 


박물관이나 미술관 등에 전시된 각종 문화재나 예술품들은 여러 이유로 훼손될 우려가 있게 마련이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변색 혹은 변형될 수도 있고, 옮기고 전시하는 과정 등에서의 각종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 심지어 관람객들이 고의적으로 훼손하는 경우마저 생긴다.

꽤 오래 전, 미국 피츠버그 앤디 워홀 미술관에 전시된 중요 작품이 크게 훼손되는 사고가 발생한 적이 있다. 어느 몰지각한 관람객이 빨간 립스틱 자국을 작품에 남긴 것이다.

아연실색한 미술관 관계자들은 대책을 강구했으나, 코팅도 되지 않은 작품에서 립스틱 자국만을 지워내기는 매우 어려운 난감한 상황이었다.

유기용매 등을 사용하여 립스틱 자국을 지울 경우, 그림의 해당 부분까지 함께 변색되어 더욱 흉하게 훼손될 우려가 컸다.

미국 피츠버그에 있는 앤디 워홀 미술관 ⓒ Wikimedia 


이에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연구 결과를 응용한 복원 기술이 활용됐다. 산소원자(O), 즉 분자상태의 산소(O2)로부터 분해된 원자 상태 산소의 높은 반응력으로 립스틱 자국을 떼어내는 방법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립스틱이 찍힌 캔버스에 산소원자총을 쏘아야 한다. 이후 그림 부분은 그대로 두고 립스틱자국만 산소원자와 반응시켜 지워낸 것이다.

이는 산화금속이 주성분인 그림은 산소원자와 반응하지 않고, 탄화수소물로 되어있는 립스틱 자국은 산소원자에 의해 이산화탄소, 물 등으로 분해되는 성질을 이용한 것이다.

이 방법은 화재로 그을린 미술작품을 복원하는 데에도 이미 활용된 적이 있는 기술이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이, 이는 우주탐사를 위해 개발된 연구에서 응용된 것이다. NASA는 우주 공간에서 자외선에 의해 분해된 산소원자가 우주선이나 인공위성의 표면부분을 부식시키는 문제에 직면했는데, 이에 대한 대책을 찾는 연구에서 해당 기술을 개발하게 되었다.

비단 천에 그려진 고대 중국의 미술품(호남성 박물관 소장) ⓒ Wikimedia 


문화재나 예술품의 복원에 첨단기술을 응용한 또 하나의 사례가 있다.


고대의 아시아 미술품은 상당수가 비단(silk) 천에 그려져 있는데, 천년 이상의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비단천이 노화되어 구멍이 생기거나 변형되는 일이 생긴다.

문제는 새로운 비단 천을 덧대어 이를 수선하면 티가 날 수밖에 없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비단 천에 감마선을 쬐어서 인공적으로 노화시킴으로써, 마치 동시대의 것처럼 감쪽같이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이밖에도 여러 첨단과학기술들이 문화재 복원에 동원된다.

화석이나 오래된 유물 등의 정확한 제작연도를 밝히기 위해 방사성 동위원소에 의한 탄소연대측정법을 사용하는 일은 이제는 일반적이다.

그밖에 분광학에 의한 스펙트럼 분석, 수학적 알고리즘이나 컴퓨터 시뮬레이션, 이미지 프로세싱 등도 문화재의 복원에 자주 이용되고 있다.

한편 문화재보존에도 과학기술이 활용되고 있다. 유물이 창작되고 전수된 역사를 역추적해 원형을 복원하고, 복원된 상태를 오래 유지할 수 있도록 보존 처리하는 기술이 쓰이는 것이다.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은 훼손되거나 상처가 난 유물을 수리하여 복원한다는 점에서 문화재를 치료하는 의사 혹은 옛것을 되살리는 연금술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재보존 과학기술자들이 없었다면 박물관에서 형태와 색상이 온전한 유물과 문화재들을 감상하는 일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중요한 가치가 있는 문화재의 보존이나 복원은 나라를 가리지 않고 중요한 문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관련하여 심각한 문제가 제기된 적이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경주에서 발굴된, 비단벌레 날개로 장식된 말안장 가리개이다.

신라시대 유물에서 영롱하고 신비로운 빛을 내는 데에 이용된 비단벌레 ⓒ Free photo 


1970년대 경주 황남대총의 발굴조사 과정에서 다른 유물들과 함께 나온 말안장 가리개는 신라왕의 부장품이었다.


이 유물은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영롱하고 신비로운 빛을 발하고 있었는데, 바로 비단벌레의 날개에 의한 것이었다. 이 색이 금동유물의 빛과 어울러져 최상의 공예품을 이루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유물을 앞으로도 변형되지 않게 잘 보존하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고 한다.

곤충의 일종인 비단벌레의 날개는 빛이 없고 습도가 높았던 왕릉 내부에서는 비교적 잘 보존되어 왔지만, 건조한 상태나 빛에 오래 노출되면 검게 변해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따라서 말안장 가리개는 발굴 직후부터 글리세린 용액에 담겨져 빛을 차단하는 한편 적정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는 상태로 지금까지 보관되어 오고 있다.

때문에 이 유물의 일반 공개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지난 2010년 국립경주박물관에서 황남대총 특별전시회를 열었을 때에도, 글리세린 용액에 담긴 상태로 조도를 최소로 줄여서 단 3일간만 일반에 공개됐었다.
비단벌레 날개가 그처럼 영롱한 빛을 발하는 이유는, 날개의 성분 및 구조와 관련이 있다.

비단벌레의 날개를 이루는 키틴의 분자구조 ⓒ Wikimedia 


비단벌레 날개는 곤충이나 갑각류의 껍질 등을 이루는 키틴(chitin)질과 단백질로 이루어져 있는데, 수십 개의 사슬 모양 키틴질 구조체에 단백질 분자가 결합하여 박막을 형성한다.


그런데 박막들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쌓인 적층구조를 이루면서 빛이 반사하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빛깔을 낸다. 이는 물 위의 얇은 기름막 등이 보는 각도에 따라 빛의 간섭현상에 의해 무지갯빛을 내는 것과 비슷한 원리이다.

또한 비단벌레의 껍데기 층에는 구리, 철과 같은 금속성분이 포함되어 있어서, 이들이 빛과 어울려지면서 더욱 영롱한 색을 낼 수 있다.

비단벌레는 몸길이 약 30~40mm의 딱정벌레목 비단벌레과 곤충이다. 전체적인 몸빛깔은 초록색 혹은 금록색의 화려한 광택이 나고 중간에 붉은 색의 가로줄무늬가 나 있다.

현재는 개체수가 줄어들어 우리나라에서는 전라남도 해안에서만 발견되며, 멸종위기동물 2급에 천연기념물 496호로 지정되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일본과 중국에서도 비단벌레를 장신구 등으로 쓴 유물들이 발견된 바 있다.

아쉽게도 비단벌레 날개 유물을 완벽하게 보존하는 방법은 아직도 확립되지 않아서, 미세한 변색조차도 철저히 방지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그런데 며칠 전 언론 보도에 따르면, ‘비단벌레 장식 유물 일부에서 나타나는 비단벌레 변색 현상의 원인이 철 산화물에 있다’는 국립경주박물관의 분석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이와 같이 비단벌레 장식품의 보존을 위한 여러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므로, 앞으로는 귀중한 유물의 변색을 완벽하게 막으면서 일반에 공개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최성우 과학평론가



기사원문:

https://www.sciencetimes.co.kr/?news=%ec%98%81%eb%a1%b1%ed%95%9c-%eb%ac%b8%ed%99%94%ec%9e%ac%ec%9d%98-%ea%b0%80%ec%b9%98-%ea%b3%bc%ed%95%99%ea%b8%b0%ec%88%a0%eb%a1%9c-%eb%b3%b4%ec%a1%b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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