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온난화로 건조, 대기 순환 느려져
새해 첫날 강원도 양양에서 발생한 산불은 축구장 면적의 28배에 달하는 20ha의 산림을 잿더미로 만들고 다음날 정오에서야 겨우 진화됐다. 지난 6일 새벽에는 김해 분성산에서 산불이 발생해 임야 1.5ha를 태우고 11시간 만에 꺼졌다.
지난 여름 스웨덴에서는 전투기 2대가 동원돼 500파운드급 유도폭탄을 3000m 상공에서 터트렸다. 2주 넘게 이어진 사상 최악의 산불을 진압하기 위해서였다. 폭탄이 터지면 화재 지역 주위의 산소를 흡수해 불을 꺼트리기에 인명피해 우려가 없는 지역의 대형 화재를 진화할 때 종종 이런 방법이 사용된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사상 최악의 산불이 지난해 7월과 11월에 연이어 발생해 전 세계의 주목을 끌었다. 7월에 일어난 산불은 총 2787㎢과 건물 1600여 채를 태웠으며, 11월에 시작된 산불은 주택 1만4000채를 포함한 건물 1만8800여 채를 전소시키고 사망자 88명, 실종자 250여 명에 달하는 최악의 인명 피해를 냈다.
산불은 번개 등으로 인한 자연 발화로도 일어나지만 대부분은 사람의 부주의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인재다. 그런데 요즘 들어 전 세계적으로 산불이 부쩍 잦아진 가장 큰 이유로 과학자들은 ‘기후변화’를 꼽고 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산불이 부쩍 잦아지고 있다. ⓒ Pixabay
기온이 상승하게 되면 겨울철 산이 건조해져 땅의 습기가 적어지게 된다. 또한 봄과 여름은 더욱 따뜻해져 그나마 남아 있던 습기가 공기 중으로 더 빨리 증발하고 만다. 그로 인해 조그마한 산불이 나도 순식간에 퍼지는 대형 산불이 되는 경우가 잦다.
기후변화로 인한 가뭄과 병충해 등으로 고사목이 증가하는 것도 산불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죽은 나무는 바짝 말라서 산불을 키우는 불쏘시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대형 산불이 자주 발생하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는 고사목이 무려 1억2900만 그루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겨울 짧아지면서 토양이 일찍 말라
겨울철에 쌓인 눈이 지구온난화로 인해 금방 녹아버리는 것도 문제다. 겨울이 짧아지면서 눈이 빠르게 녹아버리면 토양이 일찍 말라 산불에 그만큼 취약해지게 된다. 미국 스크립스해양연구소는 북미 서부 산맥에 설치된 400여 개의 강설량 측정 센서 등을 분석한 결과, 최근 들어 봄이 일찍 시작되면서 겨울에 쌓인 눈이 금방 녹아버리고 있다고 밝혔다.
가장 큰 문제는 지구의 대기 순환이 점차 느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기후변화로 인해 따뜻한 적도 지방과 추운 극지방 사이의 온도 차이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대기 순환이 정체되면 진화하기 어려울 만큼 산불이 맹렬한 기세로 계속 타오르게 된다.
포츠담기후변화연구소에 따르면,‘지구 대기가 순환하지 못하고 한 곳에 갇혀버린 현상이 2016년 캐나다 앨버타주에서 일어난 산불의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내용의 논문이 지난 8월 ‘사이언티픽 리포트’지에 게재됐다.
사상 최악의 산불로 불리는 앨버타 산불은 진화하는 데만 무려 2개월이 걸렸으며 총 4조원에 가까운 재산 피해를 냈다.
실제로 지난 11월에 산불로 잿더미가 된 캘리포니아의 한 산기슭 마을의 당시 강우량은 예년 평균의 3%에 불과할 만큼 바싹 말라 있었다.
컬럼비아대학 연구진은 최근 몇 년간 그곳의 기온이 지구온난화로 1~2℃ 상승해 대형 산불의 원인이 되었다고 밝혔다. 1932년부터 현재까지 캘리포니아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 10개 중 9개는 기후변화가 더욱 심해진 2000년 이후에 발생했다.
겨울철에 쌓인 눈이 지구온난화로 인해 금방 녹아버리는 것도 문제다. 겨울이 짧아지면서 눈이 빠르게 녹아버리면 토양이 일찍 말라 산불에 그만큼 취약해지게 된다. ⓒ Pixabay
산불 진화에 전투기까지 동원한 스웨덴의 경우 지난해 여름에 30℃ 이상까지 오르는 이상 고온이 이어졌다. 북유럽에 위치한 스웨덴의 평년 여름 최고 기온은 23℃ 정도다. 이처럼 이상 고온이 계속된 스웨덴에서는 지난해 7월에만 50회 이상의 산불이 발생했다.
새해 벽두부터 대형 산불이 잇달아 발생한 우리나라의 경우 영동권에 건조한 날씨가 이어지면서 지난달 18일부터 건조경보가 발령된 상황이다. 또한 예전에는 겨울에 눈이 많이 내려 봄까지 녹지 않고 쌓여 있곤 했지만, 요즘은 엘니뇨 현상으로 동해안 지역은 겨울철의 건조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산불이 급증하면서 과거엔 한철에만 발생하던 산불이 이제는 사시사철 일어나는 재해가 되고 있다. 이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산불주의기간이 크게 길어지고 있는 추세다.
한철 재난이던 산불이 이젠 연중 재난으로 변화
미국 서부 대형 산림지역의 경우 산불주의기간이 예전엔 30일이었으나 요즘엔 45일로 증가했다. 또한 지난 25년간 평균보다 2배 이상의 산불이 발생한 캐나다 앨버타 지역의 경우 예전보다 1개월 이른 3월 1일부터 산불주의기간이 시작된다.
우리나라도 예전엔 대형 산불의 90%가 3~4월에 집중됐으나, 최근 들어선 그 시기가 2~5월로 확대되고 있다. 특히 올해는 전국적으로 건조하고 강풍이 많은 까닭에 산림청에서는 지난 2일 산불재난 위기경보를 관심에서 주의로 한 단계 상향 발령했다. 1월 초에 산불위기경보가 주의 단계로 발령된 것은 지난 2007년 이후 올해가 처음이다.
기후변화와 대형 산불은 악순환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더욱 우려를 낳고 있다. ⓒ Pixabay
기후변화와 대형 산불은 악순환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더욱 우려를 낳고 있다. 산불이 발생하면 주요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를 제거해주는 풀과 나무들은 없어지는 대신 매연이나 연무처럼 기후변화를 악화시키는 물질들이 많이 배출되기 때문이다.
영국의 비정부기구(NGO) 크리스천 에이드는 지난 12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2018년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 비용이 최소 1000억 달러에 달했다고 밝혔다. 또 지난해에 발생한 기후 관련 자연재해 중 가장 큰 피해를 입힌 것들의 순위를 매겼는데, 그중 2위가 바로 88명의 사망자를 낳은 캘리포니아 산불이 차지했다.
이 보고서는 온실가스를 감축하지 않을 경우 앞으로 캘리포니아에서 일어난 것과 같은 대형 산불이 훨씬 더 자주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성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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