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가위 기술로 칠리고추 맛 합성
얼마 안 있어 양념고추 맛이 나는 토마토 요리를 먹을 수 있게 될 전망이다.
8일 ‘인디펜던트’, ‘가디언’ 등 주요 언론에 따르면 브라질 비소사 연방대학의 연구팀이 유전자편집 기술을 적용해 칠리고추(chili pepper) 맛이 나는 토마토를 개발했다.
과학자들은 그동안 유전자편집 기술을 사용해 키위 색깔을 바꾸고 딸기 맛을 변화시키는 등 다양한 종류의 과일과 채소를 개발해왔다. 그런데 비소사 대학의 이번 연구 결과는 과거 사라졌던 채소 맛을 복원한 것으로 진화학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과학자들이 토마토의 사촌격인 칠리고추 맛을 토마토 안에서 복원해 양념 맛 토마토를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다. ⓒ Wikipedia
톡 쏘는 매운 맛 토마토 요리 가능해져
진화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칠리고추는 토마토의 사촌격인 과일이다. 약 1900만 년 전 토마토로부터 분화했지만, 토마토와 같은 DNA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도 두 채소는 맛과 경작법이 매우 다르다. 토마토의 경우 신선한 맛에 영양이 풍부하고 경작이 비교적 수월하지만, 칠리고추의 경우 경작이 매우 어려운데다 매운 맛이 매우 강해 주로 양념으로 사용한다.
맵고 톡 쏘는 맛이 유독 강한 것은 칠리고추 안에 들어 있는 캡사이신(capsaicinoids) 때문이다. 알칼로이드의 일종인 캡사이신은 매운 맛을 내는 성분인데, 오래 전부터 인류는 이를 약용과 향료로 사용해왔다.
진화학자들에 따르면, 토마토의 사촌인 칠리고추에 캡사이신이 생성된 것은 포식자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
비소사 대학의 유전공학자인 아우구스틴 체겐(Agustin Zsögön) 교수는 “칠리고추 역시 처음에는 토마토 맛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생존을 위해 토마토 고유의 맛을 버리고 매운 맛으로 변신했다”고 설명했다.
크기가 줄어든 것도 생존을 위한 조치 중 하나다. 작은 크기로 줄어들면서 많은 동물들로부터 배를 불리기에 큰 이득이 없는 보잘 것 없는 모습으로 보일 수 있었다.
이번 연구 성과가 주목을 받는 것은 유전자편집 기술로 오래 전 칠리고추에게 생성됐던 토마토 안에 캡사이신 성분을 생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토마토의 사촌인 칠리고추에 캡사이신이 생성된 것은 포식자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 ⓒ Pixabay
토마토 안에 맵고 톡 쏘는 맛을 합성해 새로운 맛의 토마토를 만들어낸 것은, 인류가 앞으로 다른 채소나 과일 진화 과정에 개입해 또 다른 성격의 채소‧과일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연구 결과는 식물과학 분야의 국제학술지 ‘트렌즈(Trends)’ 1월7일자에 게재됐다. 제목은 ‘Capsaicinoids: Pungency beyond Capsicum’이다.
새로운 양념 맛 채소‧과일 생산 가능해져
비소스 대학 연구팀은 새로운 토마토 맛을 만들어낸 이번 연구에 3세대 유전자가위 기술인 ‘Crispr-Cas9’을 사용했다.
연구팀은 논문을 통해 “과거 토마토로부터 분리된 칠리고추에 23가지의 캡사이신 유형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유전자의 차이에 따라 변화되는 이 캡사이신 유형들은 각각 미묘한 차이의 맛과 향을 유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활용할 경우 다양한 양념 맛의 토마토 생산이 가능하다.
체겐 교수는 “많은 사람들이 아보카도를 으깬 것에 양파, 토마토, 고추 등을 섞어 만든 멕시코 요리 ‘과카몰리’를 즐기고 있는데, 앞으로는 칠리 맛 토마토를 통해 ‘과카몰리’의 맛을 손쉽게 재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새로 개발한 칠리 맛 토마토 경작은 기존 칠리고추보다 쉽고 비용도 덜 들 것으로 예상된다. 토마토의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칠리고추와 같은 어려운 경작법을 생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논문을 통해 “칠리고추 맛 토마토를 만들어낸 것처럼 또 다른 양념 맛 채소나 과일도 생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럴 경우 세계 각지에서 경작되고 있는 다양한 채소‧과일 맛을 합성시켜 이전에 경험할 수 없었던 새롭고 신기한 맛을 창출할 수 있다.
이번 연구를 통해 오래지 않아 새로운 토마토 요리를 맛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Pixabay
칠리고추의 원산지는 아메리카지역이다. 크리스토퍼 콜롬버스는 15세기 말 아메리카를 여행하던 중 칠리고추가 경작되는 것을 보고 씨앗을 스페인으로 가져왔다.
그리고 16세기 스페인과 포루투갈에 의해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등으로 전파됐다. 또 17세기에는 ‘파프리카’라 불리는 변종 칠리로 진화했다.
그러나 당시 ‘파프리카’는 매운 맛을 담고 있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매운맛이 거의 나지 않는 ‘파프리카’는 19세기 말에 개량된 종이다.
가지과 영년생식물로 분류되는 칠리 나무는 1.5m까지 자란다. 다양한 기후에서도 잘 자라기 때문에 세계 각지에 번식하고 있다. 현재 약 2000여종의 ‘칠리’가 세계 각지에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중 태국 변종고추 ‘카옌’, ‘타바스코’, ‘하바네로’ 등이 대표적인 칠리 종이며, 그중에서도 ‘카옌’은 가장 매운 ‘칠리’로 유명하다.
인류는 그동안 칠리를 사용해 샴볼, 타바스코, 해리사 등의 소스를 만들어 왔다. 또한 커리파우더, 인도커리, 샐러드, 수프 등 다양한 요리와 함께 야채 보존료, 오일, 식초 등의 재료로도 사용해왔다.
유전자편집 기술의 발전으로 가까운 시일 안에 이 칠리고추 맛 토마토를 이용한 요리를 맛볼 전망이다.
이강봉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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