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난성 과일박쥐에서 확인, 다른 종 감염 가능
동물과 사람을 동시에 감염시킬 수 있는 에볼라와 유사한 바이러스가 중국 윈난성의 과일 박쥐에게서 발견됐다.
싱가포르 듀크-NUS의대와 중국 연구팀은 공동 연구를 통해 중국 과일 박쥐(Rousettus)에게서 유래된 필로바이러스(filovirus)의 새로운 속(genus)을 발견, ‘네이처 미생물학’(Nature Microbiology) 7일자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이 새로운 바이러스에게 발견 지역인 윈난성(雲南省) 멩글라 지역의 명칭을 딴 ‘멩글라 바이러스(Mengla Virus)’란 이름을 붙였다.
현재 전 세계 도처에서는 박쥐-유래 바이러스들이 인간과 동물들의 건강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필로 바이러스, 그 중에서도 특히 에볼라(Ebola) 바이러스와 마르부르크(Marburg) 바이러스는 악명 높은 병원성 바이러스로 꼽힌다. 이 바이러스들은 혈관 손상과 함께 인체의 많은 기관에 영향을 미쳐 심각한 열병을 일으킨다.
이번에 새로운 바이러스가 발견된 윈난성은 한국 관광객이 즐겨 찾는 지역 중 하나다. 이 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박쥐 등 야생동물과 접촉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인도 타밀나두 마두라이 소재 사원에 서식하는 과일 박쥐의 한 종류(Rousettus leschenaultii). 전 세계 도처에서는 박쥐에게서 유래한 바이러스들이 인간과 동물의 건강에 위협이 되고 있다. ⓒ Rajesh Puttaswamaiah, Bat Conservation India Trust
치사율 높은 에볼라와 마르부르크 바이러스병
이번에 발견된 멩글라 바이러스는 진화상 에볼라 바이러스와 마르부르크 바이러스의 중간에 위치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에볼라 바이러스에 의한 에볼라 출혈열은 1976년 아프리카 중부의 자이르에서 처음 발생했다. 당시 318명의 환자 가운데 280명이 사망함으로써 88%의 치사율을 기록했다. 이후 2013~16년 사이에는 25000명 이상의 환자가 생겨 1만명 이상이 사망했다.
2014년에는 특히 심각했다. 기니 등 서아프리카에서 다수의 환자가 발생하고, 서아프리카 지역을 벗어나 미국과 스페인, 영국 등에서 환자가 나타나자 세계보건기구는 국제공중보건 비상사태를 발령하기도 했다.
에볼라 바이러스로 인해 최근까지도 간헐적으로 출혈열 환자가 발생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허가된 백신은 나오지 않았다.
마르부르크 바이러스에 의한 급성 열병은 치사율이 23~100%로, 에볼라보다 더 치명적이다. 1967년 독일 마르부르크에서 환자가 집단 발생해 확인한 결과 우간다에서 수입한 긴꼬리 원숭이가 1차 감염원으로 판명됐다.
1998~2000년 콩고민주공화국에서 154명의 환자가 발생해 128명이 사망했으며(치사율 83%), 2004~2005년에는 앙골라에서 환자 252명 중 227명이 사망해 90%의 치사율을 기록했다.
2008년에는 네덜란드와 미국에서도 환자가 발생해 세계보건당국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2014년과 2017년에는 우간다에서 각각 1명과 3명의 환자가 발생해 모두 숨졌다.
두 가지 전염병 모두 환자의 체액 즉 침이나 피, 림프액, 정액 등을 통해 전파된다.
에볼라 바이러스 입자(녹색)의 컬러 스캔 전자현미경 2만배 확대 사진. 이 바이러스에 만성 감염된 아프리카 녹색 원숭이 신장세포(파란색) 주위에 세포외 입자와 새로 생겨나는 입자들이 보인다. ⓒ Wikimedia Commons / BernbaumJG
진화상 에볼라와 마르부르크 바이러스 사이에 위치
논문 시니어 저자이자 듀크-NUS의대 ‘신종 전염병 특징 연구 프로그램(Emerging Infectious Diseases Signature Research Programme)’ 책임자인 왕 린-파(Wang Lin-Fa) 교수는 “이런 유형의 전염병은 일반인들에게 아무런 경고 없이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때문에 박쥐 유래 필로 바이러스의 유전적 다양성과 지리적 분포를 연구하는 것은 위험 평가와 대규모 발병 예방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과일 박쥐를 통해 필로 바이러스의 다양성 분석 연구를 하다 이 새로운 바이러스를 발견했다. 이들은 이후 박쥐 샘플에서 해당 바이러스를 검출한 뒤 유전자를 분석하고 특성 연구를 수행했다.
연구 결과 멩글라 바이러스는 필로 바이러스 그룹 안에서 디안로바이러스(Dianlovirus)라는 새로운 속을 나타내는 것으로 확인됐다. 멩글라 바이러스는 유전적으로 다른 바이러스들과 구별되고, 유전자 서열의 32~54%만을 다른 알려진 필로 바이러스와 공유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주요 필로 바이러스가 아프리카를 근원지로 하는데 비해, 이 바이러스는 지리적 위치가 다른 중국에서 발견된 점도 눈길을 끈다. 하나 이상의 종을 포함할 수 있는 이 새로운 속은 진화 나무에서 에볼라 바이러스와 마르부르크 바이러스 사이에 위치한다.
에볼라 바이러스와 마르부르크 바이러스의 전장유전체를 베이즈(Bayes) 분석으로 비교한 계통발생 나무. 이번에 새로 발견된 멩글라 바이러스는 진화 계통상 두 바이러스 사이에 위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 Wikimedia Commons / ChyranandChloe & Rewrite: Fred the Oyster
에볼라 바이러스 등과 주요 기능 유사
연구팀은 여러 동물 종의 세포주에서 멩글라 바이러스를 시험해 보았다. 그 결과 다른 필로 바이러스와 마찬가지로 종 사이에 전염이 가능한 잠재적 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말하자면 박쥐에서 사람에게 바이러스가 옮겨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에볼라 바이러스는 야생동물을 사냥하는 현지 주민들이 야생동물을 먹는 과정 혹은 야생동물에게 물리는 과정을 통해 사람에게 옮겨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박쥐를 포획하다 손을 물린다면 감염 위험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발병 여부는 물린 사람의 면역력 등 방어체계에 따라 달라진다.
만약 바이러스에 감염돼 증상이 나타났다면 환자의 침이나 피, 정액 등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전파될 수 있다. 그러나 환자로부터 바이러스가 옮겨 오더라도, 마찬가지로 당사자의 면역력에 따라 실제 발병 여부가 갈리게 된다.
연구팀의 분석 결과는 멩글라 바이러스가 진화상 에볼라 바이러스 및 마르부르크 바이러스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으며, 여러 가지 중요한 기능적 유사성을 공유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예를 들면 멩글라 바이러스의 게놈 조직은 7개의 유전자를 코딩하는 다른 필로 바이러스와 일치했다.
에볼라 바이러스 등이 숙주세포에 침입할 때 활용하는 NPC1 단백질의 구조. ⓒ Wikimedia Commons / Pleiotrope
멩글라 바이러스는 또한 세포 안으로 침입해 감염을 일으킬 때도 에볼라 바이러스, 마르부르크 바이러스와 똑같은 분자수용체를 사용한다. NPC1이라는 단백질이다.
듀크-NUS의대의 수석 연구 부학장인 패트릭 케이시(Patrick Casey) 교수는 “왕 교수와 중국 연구팀이 과일 박쥐로부터 필로 바이러스를 조기에 발견한 것은 듀크-NUS의 신종 전염병 프로그램(EID)이 수행하는 강력한 연구 협력 결과 중 하나”라고 말하고, “세계화의 진행에 따라 잠재적인 전염병 뱔병 위험을 확인하고 평가해, 효과적인 통제 전략과 치료법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이 바이러스는 중국의 과일 박쥐에서만 확인됐다. 연구팀은 이 바이러스가 다른 종에게 전염될 위험성을 평가하기 위해 후속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다.
김병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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