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분 순환, 묘목 생존 등 생태계 도움
흰개미는 일반적으로 가장 파괴적인 해충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다. 죽은 나무를 갉아먹고 살기 때문에 특히 목조건축물이나 문화재에 피해를 입힌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전 세계에서 확인된 3000종의 흰개미 중에서 다만 4%만이 해충에 속한다고 보고 있다.
흰개미의 안 알려진 ‘유익한’ 측면이 과학저널 ‘사이언스’(Science) 11일자에 보고됐다.
영국 리버풀대와 런던 자연사박물관 및 홍콩대 공동연구팀은 흰개미가 실제로 열대우림에서 가뭄의 영향을 완화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흰개미는 우리나라에도 살고 있으나 열대생태계에서 매우 풍부하게 서식하고 있다. 이 흰개미들은 식물 재료에서 발견되는 셀룰로오스를 분해할 수 있는 소수의 생물체 중 하나다.
또한 가뭄 상태에서도 숲에서 움직일 수 있는 ‘훍막이 널(sheeting)’이라 불리는 임시 지상 보호 구조물을 만드는 특성이 있다.
해충으로만 여겨졌던 흰개미가 열대우림에서 생태계 과정을 유지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 University of Liverpool / Natural History Museum
흰개미 활동 억제 못해 연구 어려워
흰개미들은 목질 분해와 토양 수분 유지를 비롯해 토양의 생태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열대우림의 이런 과정에서 흰개미들의 역할은 실제 실험을 통해 완전하게 정량화되지는 못 했다. 그 이유는 흰개미의 활동을 억제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에서 과학자들은 화장실용 두루말이 휴지를 사용해 새로운 억제 기술을 개발했다. 그리고 이를 이용해 흰개미들이 열대우림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를 알기 위해 흰개미 사회를 정기적으로 모니터링했다.
이 대규모 실험은 2015년 엘니뇨 가뭄 초기에 실시됐다. 연구팀은 이어 2016년의 가뭄이 없던 시기에도 같은 실험을 수행했다.
연구팀은 이 실험을 통해 열대우림에서 흰개미의 역할뿐만 아니라 가뭄이 흰개미의 활동에 미치는 영향과 그에 따른 생태계에서의 연쇄 효과를 조사할 수 있었다.
흰개미 억제 구역에 갖다 놓기 전에 건조 처리되는 화장실용 두루말이 휴지. 이번 연구에는 4000개의 두루말이 휴지가 사용됐다. ⓒ The University of Hong Kong
가뭄 때 흰개미 수 더 늘어나며 묘목 생존율 증가
연구가 실시된 지역은 말레이시아 보르네오의 열대우림. 연구팀은 말리아우 유역 보존지역(Maliau Basin Conversation Area)에 80x80m 넓이의 흰개미 억제구역 네 개와 별도의 대조군 구역을 설치했다.
홍콩대의 루이스 애쉬턴(Louise Ashton) 박사와 리버풀대의 해나 그리피스(Hannah Griffiths) 박사 및 케이트 파(Kate Parr) 교수 그리고 런던 자연사박물관의 폴 이글턴(Paul Eggleton ) 박사와 서호주대학의 테오 에반스(Theo Evans) 박사가 핵심 연구팀으로 참여했다.
연구팀은 말레이시아 연구지원팀과 함께 3개월 정도가 걸리는 정기 현장 탐사를 수행하는 등 전체 프로젝트 기간 중 대략 9개월을 현장에서 보냈다.
이들은 흰개미가 있는 지역들에서 가뭄 기간 동안 흰개미 수가 더 늘어났고, 가뭄이 들지 않았을 때는 수가 줄어든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한 가뭄 기간 동안 흰개미 수가 늘어나자, 가물지 않은 기간에 비해 바닥에 깔린 잎들의 분해와 영양분의 이질성이 더 높아지는 한편 토양 수분과 묘목 생존율이 증가한 사실도 알아냈다.
흰개미의 행동을 모니터링하기 위한 연구 현장. ⓒ University of Liverpool / Natural History Museum
“생태적 보험 같은 역할”
논문 공동 제1저자인 루이스 애쉬턴 박사는 “흰개미는 원생 열대우림뿐만 아니라 생태계가 일부 교란되거니 심지어 농경이 행해지는 곳에도 중요한 생태계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말하고, “흰개미가 교란이나 방해를 받아 수가 줄어든다면 이들이 서식하는 곳은 특히 가뭄에 민감한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논문 공저자로 환경과학자인 해나 그리피스 박사는 “이번 연구 결과는 온전한 생물학적 공동체가 환경적 스트레스를 받는 시기에 생태계 기능을 유지함으로써 일종의 생태적 보험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연구 의의를 밝혔다.
같은 리버풀대 환경과학자인 케이트 파 교수는 “이번 연구는 처음으로 흰개미가 가뭄의 영향으로부터 숲을 보호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연구팀이 현지지원팀과 함께 열대우림 바닥에서 깔린 잎들을 모으고 있다. 이 표본들은 깔린 잎들에서 살고 있는 무척추동물을 관찰하는데 사용된다. ⓒ The University of Hong Kong
“기후변화로 잦아지는 가뭄에 도움”
논문 시니어 저자인 런던 자연사박물관의 폴 이글턴 박사는 “사람들은 무척추동물 특히 사회적 곤충들이 생태학적으로 얼마나 중요한지 이제 깨닫고 있다. 흰개미와 개미는 ‘세계를 지배하는 작은 것들’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라며 개미류의 역할을 부각시켰다.
많은 사람들은 흰개미가 목조건축물이나 나무에 피해를 주는 해충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이번 연구에서는 흰개미가 열대우림에서 가뭄의 부작용을 완충하는데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애쉬턴 박사는 “기후변화가 가속화될수록 가뭄이 더 빈번하고 심각해질 것으로 예측된다”며, ”이런 점을 감안할 때 흰개미는 가뭄 동안 목질 분해와 토양 수분, 영양분 순환과 묘목의 생존을 유지하는데 유익할 수 있으며, 이는 농업시스템을 포함한 다른 생태계에서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그는 “그런 미래 시스템에서 흰개미가 어떤 이점을 가져다 주는지에 대해 연구를 더 계속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김병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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