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송수단에서 콘텐츠 플랫폼으로 변모
미래 자동차 산업에서의 핵심 단어는 무엇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기차’와 ‘자율주행’을 꼽을 것이다.
에너지 자원 고갈, 지구 온난화 등의 문제로 주목받기 시작한 전기차는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17년 기준 전 세계 전기차 보유 대수를 1.25억 대로 추산했다. 이는 2016년 대비 54%나 성장한 수치이다. IEA에 따르면, 2030년에는 전기차 보유 대수가 무려 3.1억 대 수준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전기차의 등장이 자동차 산업에 가져오는 효과는 엄청나다.
단순히 연료가 변했다는 것을 넘어, 자동차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는 수준이라고 말할 수 있다. 파워트레인(Powertrain) 측면에서 기존의 내연기관차와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파워트레인은 연료 에너지를 운동 에너지로 전환하는 장치로 자동차에 동력을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내연기관차 전면에 설치된 엔진 ⓒ 위키미디어
내연기관차는 전면에 엔진을 삽입해 움직인다. 반면 전기차는 바퀴를 돌리는 모터를 포함한 파워트레인이 자동차 하부에 있다.
파워트레인이 차지하는 크기가 작아진 만큼, 실제로 들어가는 부품 수도 줄어든다.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전기차 파워트레인의 부품 수는 내연기관차 파워트레인 부품 수의 약 20%밖에 되지 않는다.
이러한 변화는 자동차 구조에서 큰 차이를 만들어 낸다. 전기차의 전면에는 어떠한 엔진도 없다. 이는 공간 활용에 있어 엄청난 장점을 가져온다.
전기차 ‘테슬라’의 경우 전면에 트렁크를 설치해 사용자의 편의성을 극대화했다. 폭스바겐의 ‘아이디크로즈’는 중형차임에도 대형차만큼의 실내 공간을 제공한다.
아울러 전기차의 구조는 자율주행시스템 등 소프트웨어(S/W)를 설치하는 최적의 공간을 제공할 수 있다. 전기차의 이러한 특징이 자율주행차 확산에 간접적인 도움을 준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 하부에 파워트레인이 위치한 ‘테슬라’ ⓒ 위키미디어
자율주행차 또한 전기차와 함께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컨설팅 전문 기업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에 따르면, 자율주행차의 비중은 2025년 7% 수준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이 수치는 2030년에는 49%까지 올라갈 전망이다.
그런데 자율주행차 확산 속도가 이 전망치보다 더 빠를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작년 11월 구글 그룹사 웨이모는 미국 애리조나주에서 자율주행 택시 시범 운행을 시작했다. 이는 전 세계의 자율주행차 경쟁을 부추기는 촉매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여기서 한 가지 고민해야 할 게 하나 있다. 자동차의 파워트레인 변화와 자율주행 시스템 도입은 자동차의 가치를 어떻게 변화시키는 것일까?
콘텐츠 플랫폼으로 변모하는 자동차
전기차는 자동차의 실내 공간을 더 넓힌다. 그리고 자율주행차는 운전자가 이동 중에도 쉴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이 두 가지 변화의 공통점은 운전자의 편의성을 향상시킨다는 점이다. 자동차가 단순 ‘운송수단’에서 ‘편의공간’으로 변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자동차는 ‘콘텐츠 플랫폼’으로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F015 내부 모습 ⓒ Flickr
2015년 개최된 미국 국제전자박람회(CES)에서 벤츠가 선보인 콘셉트 자동차 ‘F015’은 이러한 경향을 잘 보여준다. F015에는 운전자가 여러 콘텐츠를 즐길 수 있도록 내부 곳곳에 터치스크린 디스플레이를 부착해 놓았다.
이에 더해 5G 또한 자동차가 콘텐츠 플랫폼으로 변하는 것에 기여할 전망이다. 운전자에게 고퀄리티의 콘텐츠를 빠르게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17년 10월 KT는 100km 이상 고속 이동하는 자동차에서 5G 연결망을 이용해 고화질 영상을 문제없이 전송하는 시연에 성공한 바 있다.
이처럼 자동차는 향후 콘텐츠 플랫폼으로서 자리잡을 가능성이 크다. 나머지 요소는 이를 제공하기 위한 하나의 하드웨어 수단에 지나지 않을 전망이다. 2002년 이미 ICT(정보통신기술) 산업에서 소프트웨어 비중이 하드웨어 비중을 역전한 것처럼 말이다.
CES 2019에서 선보인 자동차 콘텐츠 플랫폼
지난 8일부터 11일까지 나흘간 개최된 세계 최대 정보통신 전시회 CES 2019에서도 어김없이 자동차 관련 기술이 전시됐다.
삼성전자는 하만과 함께 차량용 ‘디지털 콕핏 (Digital Cockpit)’을 공개했다. 디지털 콕핏은 자동차 탑승자에게 각종 편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스템이다.
디지털 콕핏 모습 ⓒ 삼성전자
디지털 콕핏에서 눈여겨봐야 할 점은 디스플레이 화면 수다. 디지털 콕핏에는 앞좌석에 4개, 뒷좌석에 2개 화면이 적용됐다. 이는 탑승자에게 여러 콘텐츠를 제공하고자 하는 의도로 보인다.
실제로 앞좌석과 뒷좌석 화면에서 각각 다른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이 시스템의 장점이다.
특히 탑승자 개인의 스마트폰을 화면과 연동할 수 있게 지원해 개인 콘텐츠를 차량 내에서 더 편하게 즐길 수고 있다.
아울러 모니터링 시스템은 각 좌석에 탑승한 사용자 얼굴을 인식하는데, 이는 탑승자별로 화면 및 좌석의 위치를 조정하고 온도를 맞춰주는 등의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외에도 유념해 봐야 할 사항은 삼성전자의 음성AI ‘빅스비(Bixby)’를 적용해 음성으로도 디지털 콕핏을 제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가정용 AI 스피커인 ‘갤럭시 홈’과도 연동돼 차량과 집 사이의 연결성을 극대화했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집에서 자동차 시동을 미리 걸거나, 반대로 자동차 내에서 가전 기기를 제어하는 것이 가능해 진다.
기아자동차는 ‘감성 주행’을 구현하는 ‘R.E.A.D 시스템(Real-time Emotion Adaptive Driving System)’을 선보였다.
R.E.A.D의 핵심은 사용자 편의에 맞는 콘텐츠 제공이다. 이는 맥박, 표정 등 운전자의 생체정보를 분석해 조명, 음악, 시트 온도 등 최적화된 차량 내 환경을 구현해준다.
아울러 V-Touch(Virtual Touch)라는 기술을 접목, 직접적인 터치가 없어도 차량 내 시스템을 조종할 수 있게 했다.
해당 기술은 3차원 카메라를 적용하여 손끝을 읽어서 반응케 하는 기술이다. 따라서 탑승자는 간단한 손동작만으로 차량 내 환경 및 콘텐츠 제공 설정 등을 제어할 수 있다.
벤츠는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MBUX’의 향상된 버전을 선보였다.
여기서의 핵심은 음성AI 기술이다. 벤츠는 탑승자가 자동차와 자연스러운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게 구현함으로써, 친밀하게 차량 내의 콘텐츠를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이처럼 CES 2019에서는 탑승자의 편의성에 초점을 둔 자동차 내 콘텐츠 기술이 여럿 소개됐다. 이러한 기술을 통해 ‘편의공간’으로 거듭날 자동차의 미래 모습을 기대해본다.
유성민 IT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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