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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 과학쌤 Jul 11. 2020

책임이 따르는 실패에 대한 변명

 처음부터 완벽한 사람은 없다.


 모두가 알고 있는 당연한 사실이지만, 시행착오를 겪는 사람들을 다 이해해줄 만큼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소득을 얻는 직장인에게 세상은 특히 그렇다. 학생 신분의 '나'와 직장인 신분의 ''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데, 세상이 나에게 기대하는 태도는 갑자기 몇 단계를 건너뛰어 버린다.


 그런 면에서 내 직장은 불친절한 편이다. 선임들이 일하는 것을 보고 배울 기회나 사수의 도움을 받아 함께 일을 처리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고용 즉시 실무에 투입되는데, 1년짜리 프로젝트의 모든 단계를 총괄해 책임져야만 한다. 더 무시무시한 것은 그 프로젝트의 실패나 성공 여부가 어떤 사람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직업이 그렇게 어렵단 말인가.


 거창하게 말했지만 나는 교사다. 교사가 된 첫 해에 책임져야 했던 1년은 실패의 기억으로 남아있다. 가르침을 받고 챙김 받는 입장으로 수십 년을 살아왔는데 갑자기 가르치고 베푸는 사람이 되는 것이 버거웠다. 특히나 사람을 상대하는 일에는 변수가 많았다. 실제로 마주한 상황 앞에서 이론적인 준비들은 물에 넣은 솜사탕처럼 흩어져 버렸다.


 그간 인연을 맺었던 천여 명의 아이들 중에 유독 또렷이 생각 나는 몇 명은 바로 그 첫 해에 담임을 맡았던 아이들이다.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정말로 궁금한 아이가 있다. 이름과 얼굴이 정확하게 기억나는 그 아이가 떠오를 때면 미안한 마음에 속이 갑갑해진다. 어쩌면 이 글은 오랫동안 가슴 한편을 차지하고 있던 불편한 마음을 털어버리기 위한 구차한 변명의 글일 것이다.


 그 아이는 자주 지각을 했다. 1교시가 지나서 올 때도 있었고 아예 점심시간쯤 등교할 때도 있었다. 아침에 등교하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전화를 걸면, "이제 일어났어요. 갈게요."라고 하는 날도 있었지만, "어차피 늦었는데 그냥 안 가면 안 돼요?"라고 말하는 날도 있었다. 대화를 시도하는 나에게 "지각해도 제 손데 신경 쓸 필요 없잖아요."라며 적대감을 드러내나, 대청소 날 각자 의자 밑에 붙어 있는 먼지를 청소하자는 말에 "선생님도 교탁 뒤집어서 청소하세요. 그럼 저도 할게요."라고 날 선 태도를 보이는 아이였다. 아이의 어머니는 아이가 예의 바르고 착했는데 몇 년 전 아빠가 돌아가신 후에 달라졌다고, 당신도 아이도 많이 힘들다고 말씀하셨다.


 정말이지 가난한 영혼을 가지고 있었던 그때의 나는 아이의 아픔에 충분히 공감하지 못했다. 힘든 상황이 무례한 행동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내 개인의 삶도 버겁던 어리고 미성숙한 시기였다. 대학을 졸업한 지 몇 주 밖에 되지 않았고, 경험해 본 세상이 좁으니 이해할 수 있는 폭도 좁았다. 더 미성숙한 다른 누군가의 삶에 진심으로 애틋한 마음을 가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어느 날 아이 어머니와 통화를 마치고 한숨을 쉬는 나에게 옆자리에 계시던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머의 마음을 알아주는 말을 건네보라고.

 '어머님도 많이 힘드시죠? 그래도 이렇게 예쁘게 키우시느라 얼마나 애를 쓰셨어요.'

 "네.. 좋은 말이네요." 웅얼거리며 대꾸하면서도 예시로 들어주신 문장에 도무지 와 닿는 부분이라곤 없었기에, 끝끝내 아이나 어머님에게 위로의 말 한마디를 건네지 못했다. 그때의 내 시각에서 아이는 예쁘지 않았고 아이의 어머니보다 내가 애를 쓰고 있는 것이 더 크게 느껴졌다.


 모든 상담의 기본이 되는 시작은 '공감'이라는 것을 이론적으로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내가 아닌 누군가의 상황 감정을 구체적으로 느끼고 반응해주는 것은 단순히 두 음절의 단어로 뱉을 수 있는 그런 간단한 종류의 일이 아니었다. 나름대로 할 수 있는 만큼 아이들을 챙이해해보려고 노력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노력하는 척일 뿐이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긴 단위라고 생각했는데 서툰 마음이 이어지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미숙한 내가 마음을 주지 못했기에 아이도 나에게 마음을 열지 못했으리라. 엇나간 관계들을 분명하게 매듭짓지 못하고 적당히 얼버무리면서 첫 해가 끝나버렸다. 심지어 아이는 학년말에 전학 수속을 밟았다. 남아있는 다른 아이들을 잘 챙긴 것도 아니었다. 스스로 선생님이라 칭하기에 부끄러울 정도로 망해버린 한 해였다.


 낡아빠진 지푸라기 같은 것으로 찝찝한 감정들을 대충 덮어 치워 두고 새로운 1년을 시작했다. 때때로 숭숭 구멍이 뚫린 짚더미를 비집고 불편한 기억들이 떠올랐는데, 옆자리 선생님께서 해주셨던 말만큼은 무시할 수 없었다. 마음을 알아주는 말을 건네는 것. 간단해 보이지만 어려운 일이었다.


 내키지 않는 상황이 훨씬 많았다. 그래도 무조건 '이해한다', '애썼다', '힘들겠다', '속상했겠다' 따위의 말들을 뱉어 보았다. 말에는 힘이 있다고 했던가. 정말 놀랍게도 몇 년이 지나자 앵무새처럼 뱉던 말에 감정이 실렸다. 이전 같았으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을 엇나간 행동들도 이해되기 시작했고, 힘들고 속상했을 감정이 구체적으로 느껴지면서 같이 눈물을 글썽거릴 때도 있었다.


 새롭게 만나는 아이들과 교감하면 할수록 첫 해에 만났던 아이들이 더 자주 떠올랐다. '그때 내가 이렇게 말했더라면 조금 우호적으로 마음을 열지는 않았을까. 그때의 행동에 이렇게 대해줬더라면 학교에 오는 것을 조금 덜 싫어하지 않았을까.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아이였는데 하필 나를 만나서 불행해진 건 아닐까.' 그 아이들의 새로운 어떤 해에 부디 능숙하고 공감이 넘치는 선생님을 만나서 상처를 치유했길 간절히 바랬다.


 그러니까 이 글은, 책임져야 하는 일을 앞두고 두려워하는 사람들, 혹은 그러한 일에서 이미 실패한 사람들, 또는 그로 인해 상처를 입은 사람들에게 건네는 이야기이다. 세상에 처음부터 완벽한 사람은 없다고. 실패하더라도 고민하고 아파한 만큼 다음번에는 분명 조금 더 나아질 거라고. 그리고 실패한 그도 나름대로 잘해보고 싶었다고. 다음번에는 누군가에게 상처 입히는 일이 없도록 실패를 통해 배우고 성장하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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