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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 과학쌤 Jul 31. 2023

주호민씨, 장애 아이도 비장애 아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웹툰 작가 주 씨와 특수교사의 입장문을 읽고 나니, 해서 눈물이 나올 지경이다. 끝까지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는 작가 부부의 태도에 화가 나고, 그러한 부모를 둔 덕에 제대로 배우지 못한 작가의 아들이 안타깝고, 이대로 성장하면 사회의 일원으로 잘 섞이지 못할 아이의 미래가 걱정된다.


 교사가 되기 전까지는 장애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도 없었고, 솔직히 잘 몰랐다. 이론적으로 특수교육을 배우 했지만, 사가 된 후에야 가장 요한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다. 바로 장애 학생이나 비장애 학생이나 다르지 않다는 것. 그러니까 비장애 학생들도 저마다 개별적인 특성은 다양하다. 느긋한 아이, 말이 많은 아이, 집중이 어려운 아이...  장애 학생도 똑같다. 아이마다 개별적 특성이 다른 거지 '장애 학생이기 때문에 비장애 학생과 다르다'고 말할 수는 없다.




 주 씨는 발달 장애를 가진 아이의 돌발 행동이라는 두루뭉술한 표현을 썼다. 여학생 앞에서 바지를 벗는 것이 장애 아이의 특성인가? 아니다. 상대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의 돌발 행동인가? 아니다. 엄연한 성폭력이고, 장애 여부에 관계없이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잘못된 행동이다. 잘못에 대해 사과를 할 때는 '아이가 아직 어려서', '발달이 느려서', '장애가 있어서' 같은 말을 덧붙이면 안 된다. 변명 없이 죄송하다고 해야 하고, 잘못을 단호하게 가르쳐야 한다.


 당연히 한두 번의 가르침으로 아이가 달라지지 않는다. 비슷한 일이 반복되고 수없이 사과를 하면서 부모가 지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장애 아이건 비장애 아이건 마찬가지다. 장애 아이 중에도 금방 배우는 아이가 있고, 비장애 아이 중에도 수없이 가르쳐야 하는 아이가 있다. 이 당연한 사실을 잊고, '죄송해요, 아이가 자폐가 있어서 발달이 느려서요.'라고 말하면 아이는 배움이 더 느려진다. 부모의 말 속에서 아이도 '나는 장애가 있으니까 잘못된 행동을 해도 이해받을 수 있다'고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여학생 앞에서 바지를 벗는 사건이 일어나기 몇 달 전에 주 씨는 '아들이 장난이 심하다. 부모니까 받아줄 수 있는데 교실에서 배꼽을 보여주거나 바지를 내리려고 하는 등 자폐적 돌발 행동을 보인다.'고 방송에서 언급한 적이 있다. 교실에서 옷을 벗으려 하는 것은 장난도 아니고, 자폐적 특성도 아니다. 장애 여부를 떠나 분명하게 훈육해야 하는 행동인데, 부모의 애매한 태도로 인해 아이가 성장할 기회를 놓쳤음을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모순적인 것은 장애를 앞세워 잘못을 이해받길 바라면서, 한편으로는 비장애 학생과 똑같 수업을 요청한다는 것이다. 만약 비장애 학생이 여학생 앞에서 바지를 벗었다면, 강제 전학 같은 분명한 조치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주 씨 아들의 경우, 특수 학급에서 수업  시간을  온건한 조치가 취해졌다. 장애를 고려한 굉장한 배려가 틀림없다. 그럼에도 주 씨 부부는 하루 종일 특수 학급에 있고 싶지 않다며 최대한 빨리 비장애 학생들과 통합 수업 받기를 요구해 특수 교사와 갈등을 빚었다.


 교사로 근무하면서 통합 수업 시간을 더 늘려달라고 요구하는 부모들을 정말 많이 보아왔다. 녹음기를 숨겨 보낸 후 '정체불명의 소리가 녹음되었는데 아이가 맞은 것 같다'며 신고해, 특수 교사가 법원을 오가는 동안 통합 학급으로 아이를 보낸 부모도 실제로 봤다. 장애 학생 비장애 학생을 통합하여 더불어 사는 을 배우는 것은 당연히 중요하다. 하지만 사회에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규칙들 배우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아이가 규칙을 지키지 못했는데, 장애를 이유로 무한한 이해를 요구하거나 녹음기를 숨겨 보내 원하는 것을 얻어낸다면, 아이는 정말로,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




 장애 아이도 다 알고 있다. 아이의 가방이나 바지에 녹음기를 넣어 보내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이는 부모가 학교보다 강함을 느끼고, 어떤 잘못을 해도 부모가 자신의 편에 서 줄 것본능적으로 알아차린. 아이는 또한 알고 있다. 통합 학급에서 자신의 많은 행동들이 비장애 학생과 달리 쉽게 용인된다는 것을. '장애가 있어서..'라는 부모의 변명과 선처 요청이 아이의 성장엔 독이 된다.


 부모 입장에서 장애를 가진 아이가 얼마나 아픈 손가락다. 하지만 잘못된 방식의 사랑은 아이를 지켜줄 수 없다. 이것은 장애 아이도, 비장애 아이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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