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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 과학쌤 Jul 27. 2023

지금, 우리 교실은

 지난 주말, 5000여 명의 교사들이 추모 집회에 참석했다. 교사들이 이렇게까지 한 목소리를 낸 적이 있었던가. 단연코 없다. 한평생 범생이로 살아온 교사들은 집단 행동을 금지한다는 공무원법을 지키면서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이번처럼 거국적인 움직임은, 정말로 처음이다.


 임용된 지 2년 어린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것도 자신의 직장인 초등학교 교실에서. 마지막 장소로 교실을 선택한 것은 이 죽음의 원인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대부분의 교사들은 어린 교사의 마음에 절절히 공감하며 애도를 표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지난 수 년 동안 모두가 비슷한 경험을 해 왔기 때문에.




 내가 3년 차 교사였을 때, 담임을 맡았던 네모에게 주먹으로 맞았다. 네모는 절도를 수시로 하는 학생이었다. 어느 날은 절도가 아니라 대놓고 이익을 취하고 싶었는지, 생일을 핑계로 같은 반 아이들에게 현금을 뜯어냈다. 네모가 무서워서 돈을 준 다음에, 나에게 달려와 돌려 받고 싶다고 털어 놓은 학생들이 여럿 있었다.


 네모는 생일 선물을 받은 것 뿐이라며 시종일관 억울하다는 태도였다. 절도가 잘못것은 알지만, 이번 일은 정말로 잘못인 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래, 모르는 건 배우면 되지. 나는 차분히 가르쳤다. 주는 사람이 자발적으로 나서지 않았는데, 받는 사람이 ‘현금’이라는 품목을 정해놓고 요구하는 것은 ‘선물’이 될 수 없음을 한참을 교육했다. 오랜 대화 끝에 네모도 옳고 그름을 이해한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돈을 돌려주자는 결론에 네모는 분개했다. 손쉽게 수중에 들어온 돈을 빼앗기는 기분이 들었나 보다. 나에게 욕을 하면서 현금 몇 장을 던지고 뒤돌아 나갔다. 여태 인내하며 가르쳤는데 그런 식으로 상황을 마무리 지을 수는 없었다. 나는 “네모야!” 이름을 부르며 네모를 잡았다. 그때 내 팔뚝과 손을 향해 수차례 주먹이 날아왔다. 나는 더 맞지 않으려고 네모의 팔을 붙잡고 사투를 벌여야 했다.


 네모는 중학교 2학년이었고, 내가 올려다 봐야 하는 덩치를 가진 아이였다. 맞은 곳에 멍이 들고 손이 떨렸다. 그렇지만 교장 선생님도 교감 선생님도 네모를 품어주라는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다. 네모 부모님의 대응은 더 심했다. 생일 선물을 받은 네모의 마음을 왜 몰라주냐는 원망을 한참 들었다. 그리고 내가 붙잡은 네모의 팔에 손톱 자국이 났으니 신고를 하겠다고 했다. 네모와 나에게는 아무런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 담임 교사라는 이유로 폭력의 피해자인 내가 네모를 마저 교육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때도 지금도 네모에 대한 원망은 없다. 아이는 어른의 도움을 받아서 옳고 그름을 배워나가고 잘못된 행동을 고쳐나가야 한다. 그것이 어른의 몫이다. 하지만 네모의 부모님과 학교는 어른의 역할을 했는가? 부모님은 맹목적으로 자녀의 편에 서기 보다는 옳고 그름을 판단해서 양육할 책임이 있다. 학교는 물리적인 폭력을 당한 교사의 심신을 보호하고, 필요하다면 다른 기관과 연계해서 학생에게 더 나은 교육을 제공할 책임이 있다. 이 당연한 것이 지켜지 않은 채 게만 이상적인 교육을 기대는 것은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학교와 학부모의 대응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던 일은 또 있다. 우리 반 세모가 딥페이크 기술을 이용해 여학생의 얼굴을 야한 신체 사진과 합성했고, 우연히 이 사진을 본 여학생이 사색이 되어 나를 찾아 왔다. 성과 관련한 문제였기 때문에 시급한 상담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합성된 사진이 퍼질 경우 겉잡을 수 없이 문제가 커지기 때문에 즉시 세모를 상담실로 불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세모는 딥페이크 기술에 혹했지만 합성 사진을 유포하지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친구의 얼굴을 음란물과 합성하는 것은 분명한 잘못이라는 것을 가르쳐야 했다. 몇 번의 상담과 몇 번의 위원회를 거쳐 세모에게 처분이 내려졌다. 세모는 자신의 잘못 인정했고 처분 결과도 받아 들였다.


 문제는 세모 부모님의 반응이었다. 변호사를 대동해 찾아 와서는 학교와 담임 교사를 상대로 소송하고 싶다고 하셨다. 세모가 사진을 유포하지 않았으므로 잘못이 아니라는 것이 주요 골자였으며, 첫 상담시 세모가 수업을 놓쳐 학습권이 침해당했다고도 하셨다. 학교는 갑자기 을이 되어서 세모의 처분을 취소했다. 나는 세모에게 무엇을 어떻게 교육해야 할지 혼란에 빠졌다. 세모가 옳고 그름을 제대로 배웠을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어린 교사의 죽음 이후 여기저기에서 수많은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 학교, 교사, 부모 모두 학생에게 옳고 그름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 당연한 본질다. 교사의 정당한 교육 행위에 대해 학습권 침해나 아동 학대를 들이미는 부모, 그런 부모의 민원을 수용해주는 학교 아래에서 아이들은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


 일각에서는 오은영 박사의 코칭이 잘못되었다는 말이 나오기도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오은영 박사는 물리적 폭력 없는 단호한 훈육과 일관된 지도를 강조해 왔다. 훈육이 필요한 상황과 공감이 필요한 상황이 다르다는 것도 분명히 코칭해 왔다. 문제는 훈육이 필요한 상황에서 훈육을 할 수 없게 되어버린 교실이다. 흥분한 아이를 붙잡거나 타임아웃 시키는 정당한 훈육에 대해 민원을 넣는 부모. 그리고 이러한 민원을 방관하거나 부추기는 학교 관리자와 교육청.


 이번 사건으로 각계 각층에서 변화의 씨앗이 보이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본질에서 벗어난 이야기가 너무 많이 오고 가는 것은 우려된다. 단호한 훈육이 학생 위협는 게 아니라는 것, 지도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학습권이나 휴식권 우선시하면 안 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상식이다. 연한 상식을 지켜주지 못해서 무수히 많은 법 조항이 추가되는  정상적인 교육에 얼마나 가까워지는 것일까. 교권 침해 생기부 기록이나 민원 응대 매뉴얼 같은 것들이 마련되어도, 본질을 놓친다면 이것들을 처리할 교사의 추가 업무만 가중되는 것은 아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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