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행하는 과학쌤 Apr 22. 2023

글을 읽는 사람, 말을 듣는 사람

 '글을 읽는 사람'과 '말을 듣는 사람'. 나는 명확히 전자다. 틈 날 때마다 휴대폰을 붙잡고 있긴 하지만 TV 프로그램이나 유튜브는 어지간해서는 보지 않는다. 기사나 브런치 창작물, 그도 아니면 웹소설이나 카페의 게시글을 읽는다. 요리법이나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얻을 때도 나는 너무나 당연히 글을 검색하고 서점에서 책을 산다. 불과 한 달 전 남편과 괌에 가기로 했을 때 유튜브에서 괌 여행을 검색하는 것을 보고서야 영상을 통해 정보를 얻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새삼 았을 정도다.


 사실 나만 빼고 세상은 진작 변화했다. 최근에 연애 예능 프로그램인 '나는 솔로'를 보고 사람들의 감상이 궁금해 글을 검색했는데, 조회수를 높이기 위한 복사 붙여넣기 글들만 가득했다. 출연자의 행동이나 심리에 대한 생각들은 죄다 유튜브에 업로드되고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유의미한 영상 이미지가 있는 것 아니었다. 그림 몇 컷이나 사진 두어 장과 함께 유튜버의 말을 녹음하고 자막화한 것이 전부였다. 그러니까 영상을 보는 사람들은 '글'이 아닌 '말'을 찾는 것이었다.


 글로 쓰였다면 1분 내외로 읽을 수 있는 내용들을 수십 분짜리 영상으로 듣는 것이 나에게는 고역이었지만, 답답한 것은 나 뿐일 것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글을 읽지 않는다. 읽는 사람이 없으니 글은 쓰이지 않는다. 심각한 것은 학교 교육에서조차 글이 사라지고 있다.  교육부의 역점 사업 중 하나가 디지털 기반 교육으로, 디지털 교과서와 에듀테크 확대를 강제하고 있다. 교육에 디지털이 유용하게 접목될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아이들이 교과서를 스스로 읽는 대신 학습 내용을 소리로 듣고 AI와 문답하게끔 하는 방식은 옳지 않다.


 소리와 영상이 가진 장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을 듣는 것에만 익숙해진 사람은 글을 쉽게 읽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 알고 싶은 주제에 대해 원문을 찾아 읽으면서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고, 누군가에 의해 발췌된 일부분만 듣게 되기 때문이다.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 판단하거나 학문에 대해 깊이 있게 탐구할 때도 그렇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업무적인 문제가 발생했을 때나 보험에 가입할 때도 법률 상담가나 보험 설계사 같은 타인의 말에 의존하게 된다.


 학교 현장에 있다보면 교과서에 적혀 있는 문장이 이해가 안 된다고 질문하러 왔다가 문장을 차분히 읽어주면 아~ 하고 돌아가는 아이들을 너무 많이 보게 된다. 타인의 말을 듣기 위해 돈을 지불하는 사람과 스스로 글을 읽고 자신만의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 어느 쪽으로 아이들을 교육하고 싶은가. 아이들은 더 이상 책을 읽지 않고 누군가가 요약해 주는 독서 특강을 들으러 간다. 지금의 디지털 교육은 정말 필요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걸까.


 출간된 지 30년 가까이 된 '새의 선물(은희경)'을 읽었다. 오래된 소설이지만 근래에 읽은 어떤 책보다 흥미진진했다. 주인공 진희의 시선을 따라 종이를 넘기는 동안 가본 적도 없는 먼 옛날의 어느 동네가 생생하게 그려져 울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단 한 장의 그림도 없는 책이지만, 1960년대를 살고 있는 애늙은이 진희와 철없는 이모의 모습이 책을 덮어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나 역시 2020년대의 교육에는 어울리지 않는 옛날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이전글 마음의 녹는점은 몇 도일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