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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 과학쌤 Apr 10. 2020

고요한 학교에서 사랑을 이야기하다

feat. 개체군의 생장곡선

선생님들의 학교는 고요하다.


매 순간 타임어택을 하듯 숨 가쁘게 들려오는 수업 종소리도 없고, 아슬아슬하게 세이프라며 달려오는 발자국 소리도 없다. 친구의 팔에 매달려 부끄러워하면서도 선생님 옆으로 와 재잘대는 목소리도 없고, 배가 고프다며 응석을 부려 사탕을 받아가는 장난스러운 목소리도 없다. 점심시간에 울려 퍼지는 인기 아이돌의 노랫소리도 없고, 운동장에서 친구를 부르며 축구공을 차는 소리도 없다.


잠시도 고요할 틈 없이 들려오던 소리가 사라진 교무실에 앉아 있을 때면, 학교가 아닌 다른 세상에 와 있는 듯하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아이들과 문자를 주고받고 전화를 하던 3월 한 달 스스로가 사이버 상담원처럼 느껴졌다. 정체성을 잃어가는 듯한 불안감에 어느 날부턴가 아이들에게 보내는 문자 앞에 '사랑하는 0학년 0반'을 덧붙이기 시작했다. 하트와 함께 몇 번 문자를 보내고 나니, 그제야 내 새끼들이구나 싶었다.


평소 담임을 맡은 학급 수업 들어가는 학급에서 '안녕하세요' 대신 '사랑합니다'로 상호 간 인사를 대신해왔다. 말에는 힘이 있으니 사랑한다고 자꾸 이야기하다 보면 정말로 선생님이 좋아지고 과학이 좋아질 것이라는 내 주장에, 처음에는 피식 웃으며 어색해하던 아이들도 어느 순간 적극적으로 사랑을 표현한다.


사랑을 나눌 아이들이 없으니 고요한 학교는 더 삭막한 공간이 되고 만다.



4월, 이제 막 중학생이 된 아이들은 교복을 입어볼 기회도 없이, 한 달여 만에 처음으로 학교에 방문했다. 부모님의 차를 타고 드라이브 쓰루로, 혹은 캐리어를 끌고 워킹 쓰루로 교과서를 받아가기 위해서이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이루어진 1분도 안 되는 짧은 만남이었지만, 조금은 어색한 표정으로 쭈뼛거리 인사하는 아이들을 보니 새삼스레 '학교에 있구나' 안도감이 들었다.


드디어 만난 아이들로부터 받은 증명사진을 붙여두고, 곧 소란스러워질 학교를 기다리면서

사진을 향해 사- 이야기해보았다.



고요한 학교 바깥에서도 모든 사람들이 조금씩 평소와는 다른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익숙하지 않은 이 상황이 생물학적으로는 당연한 이치일지 모른다.


같은 종의 개체들이 일정한 서식지 내에서 상호작용할 때, 이 집단을 개체군이라 한다. 이론적으로는 개체들이 지속적으로 번식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하급수적으로 개체군의 밀도가 증가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환경적인 제약으로 인해 사망률이 늘어나기 때문에 일정한 수준 이상으로 개체군의 밀도가 증가하지 못한다. 자원이 고갈되거나, 생활공간이 부족해지거나, 노폐물이 축적되는 등 여러 요인이 개체군의 생장을 방해한다.


질병이 전염되는 것 역시 대표적인 방해 요인이다. 개체군의 밀도가 낮을 때에는 한 개체에서 다른 개체질병의 매개체가 전달되기 어렵다. 그러나 밀도가 높아지면 개체들 사이에 질병이 퍼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질병으로 인한 사망률이 높아지면 개체군의 밀도는 더 이상 증가하지 못하고 일정 수준을 유지한다. 교통이 발달하여 세계 대부분의 지역을 하루 만에 이동할 수 있는 요즘, 인간 개체군에서 질병이 전파되는 속도는 다른 생물 종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사망률을 낮추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 왔다. 토목과 건축 기술을 발달시켜 거주할 수 있는 공간을 늘려나갔으며, 노폐물이 축적되지 않도록 정화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부족해지는 자원을 대신할 신재생에너지를 개발하고 있으며, 수많은 질병을 치료할 신약과 수술법을 찾 있다. 우리의 많은 시도들은 성공적인 편이었다.



이번에 또 한 번 사람들은 긍정적인 시도를 하고 있다. 전 세계에 유행 중인 감염 질환의 증상을 치료하기 위해 힘을 모으고, 도움이 필요한 곳에 선뜻 기부하여 사랑을 나누고, 사회적 거리두기에 동참하여 질병을 매개하는 바이러스의 전파를 최소화 중이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뛰어난 이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행동하는 작은 노력이 인류를 구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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