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두의 과학 Jan 24. 2019

단위가 바뀐다고?



용준이는 엄마의 심부름으로 정육점을 갔습니다. “삼겹살 1근만 주세요.” 정육점 주인은 삼겹살을 잘라 저울에 올렸습니다. 저울에 나온 숫자는 본 용준이는 삼겹살 1근이 600그램이라는 알았습니다. 용준이는 상추를 사러 채소 가게로 갔습니다. “상추 1근만 주세요.” 채소 가게 주인은 상추 1근을 저울에 올렸습니다. 저울에 나온 숫자가 375그램을 가리킬 때 주인은 봉지에 담았습니다. “어? 1근은 600그램인데 왜 375그램만 주세요?” 채소 가게 주인은 웃으면서 “채소는 375그램이 1근이란다.” 용준이는 어리둥절했습니다. 왜 고기 1근과 채소 1근이 무게가 다를까?
1999년 9월 23일, 미국 NASA의 제트추진연구소는 9개월 전에 발사한 ‘화성 기후 관측 위성’이 화성의 궤도에 진입하면서 통신이 두절되고 결국 실종되는 사고를 겪어야만 했습니다. 3년에 걸쳐 6억 달러의 막대한 개발비를 한 순간에 날려버린 것이지요. 사고의 원인은 ‘단위’였다고 합니다. 단위가 어쨌기에 이런 대형 사고가 났던 걸까요?


고기 1근은 600그램, 상추 1근은 375그램이에요.



미터와 야드의 차이

단위란 미터, 킬로그램, 초와 같이 어떤 물리량을 측정하거나 그 양이 얼마나 되는지 알고자 할 때 기준이 되는 양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나무의 높이가 10미터라면 기준이 되는 1미터의 10배라는 것을 알 수 있지요. 또 나의 몸무게가 60킬로그램이라면 기준이 되는 1킬로그램의 60배라는 것입니다. 시간을 나타내는 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루는 24시간이고, 1시간은 60분이고, 1분은 60초이므로 하루는 86400초입니다. 즉, 하루는 기준이 되는 1초의 86400배가 되는 것이지요.

이런 단위는 원시인들도 사용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사냥한 동물들을 ‘한 마리, 두 마리 …’로 셀 때 ‘마리’나 나무에서 딴 열매를 ‘한 개, 두 개 …’로 셀 때 ‘개’도 수를 나타내는 다단위입니다. 또한 인류가 농경 생활을 하며 물물교환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면서 단위의 필요성이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면 ‘소 한 마리와 교환할 수 있는 돼지는 몇 마리일까, 과일 한 상자면 옷감 몇 뼘이랑 바꿀 수 있을까?’ 정해야 했습니다. 또한 물물교환이 나라와 나라 사이로 확대되었고, 언어가 다른 나라끼리의 물물교환은 더더욱 단위의 통일이 필요하겠습니다. 같은 길이를 나타내는 단위지만, 고대 이집트에서는 ‘큐빗’, 영국에서는 ‘인치’, 프랑스에서는 ‘피에’, 중국에서는 ‘자’를 썼습니다. 중국의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도 길이의 단위로 ‘자’를 썼지요. 단위를 나타내는 한자어로는 ‘도량형’이 있습니다. 도(度)는 길이, 량(量)은 부피 또는 들이, 형(衡)은 무게를 의미합니다.


큐빗은 팔꿈치에서 손끝까지의 길이를 말해요.


‘인치’나 ‘자’는 물론 지금도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나라마다 다른 단위는 나라 사이의 무역을 하는 데 혼란을 가져왔기 때문에 단위를 통일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미터법입니다. 1미터라는 길이는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쓰자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1미터는 어떻게 정해진 걸까요? 1790년 탈레랑(1754~1838, 프랑스의 정치가이자 외교관)의 제의로 1미터를 정하게 되었습니다. 적도-프랑스 파리-북극을 잇는 자오선의 길이를 1000만으로 나눈 길이를 1미터로 정한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영국과 미국은 미터 대신 야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1야드는 3피트, 1피트는 12인치인데, 인치는 엄지손가락의 너비에서 기원되었다고 합니다. 즉, 1인치는 2.5399센티미터로 우리가 흔히 2.54센티미터로 알고 있는 길이입니다. 따라서 1피트는 12인치이므로 30.4788센티미터, 1야드는 3피트이므로 91.4364센티미터입니다. 하지만 영국과 미국은 1야드를 0.9144미터로 정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골프에서는 지금도 미터 대신 야드 단위를 써요.


앞서 이야기한 화성 기후 관측 위성의 사고는 바로 미터와 야드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궤도 진입을 바로 앞두고 위성 제작팀과 조종팀 사이에서 정보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서로 다른 단위를 사용했던 것이 것입니다. 제작팀은 야드 단위를 사용했고 조종팀은 그것을 미터 단위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단위를 사용하다 보니 정확한 위치에서 궤도 진입에 실패했던 것이지요. 미국은 지금도 야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위를 야드에서 미터로 바꾸는 데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들기 때문이지요.



국제단위계의 7가지 기본 단위와 유도 단위

(k), 세컨드(s)로 나타냅니다. 세컨드는 초를 나타내는 second의 s입니다. 그래서 이런 단위 체계를 MKS 단위계라고 합니다. 같은 단위 체계이지만 센티미터(c), 그램(g), 세컨드(s)를 쓰는 것은 cgs 단위계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많은 나라들이 이 MKS 단위계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미터법에 따라 정해진 단위들은 국제적으로 통일된 단위 체계는 국제단위계라고 해서 현재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국제단위계는 기본 단위 7가지와 그로부터 유도되는 유도단위가 있습니다. 이 국제단위계는 1960년 제11회 국제도량형총회에서 결정한 것입니다.

7가지 기본 단위예요. 킬로그램(kg), 미터(m), 초(s), 켈빈(K), 암페어(A), 몰(mol), 칸델라(cd)를 나타냅니다.


기본 단위 7가지는 길이에 미터(m), 무게에 킬로그램(kg), 시간에 초(s), 전류에 암페어(A), 온도에 켈빈(K), 물질량에 몰(mol), 광도에 칸델라(cd)입니다. 이 기본 단위 7가지는 물질의 크기나 양을 나타낼 때 국제적으로 적용해야 하는 기준입니다. 우리나라도 물론 이 국제단위계를 공식적으로 채택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 7가지 기본 단위 중 가장 기본이 되는 3가지 단위가 어떻게 정의되는지 살펴볼까요?
먼저 길이의 단위 미터는 앞서 프랑스에서 자오선의 길이를 1000만으로 나누었다고 말했는데요, 그것은 언제나 정확한 것은 아닙니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단위는 시간이나 공간 그리고 물질의 성질에 관계없이 정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1983년 제17차 국제도량형총회에서 빛이 진공에서 299,792,458분의 1초 동안 진행한 경로의 길이를 1미터로 정했습니다.


질량의 단위인 킬로그램은 1889년 제1차 국제도량형총회에서 지정한 질량원기를 1kg으로 정했습니다. 이 질량원기는 백금-이리듐 합금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프랑스 파리에 있는 국제도량형국에 보관되어 있고 똑같이 만들어 각 나라에서도 가지고 있습니다.
시간의 단위인 초는 예전에는 평균 태양일(죽, 하루)의 86400분의 1로 정의하여 사용해 왔습니다. 그러나 지구 자전주기의 불규칙성 때문에 정확한 단위로 쓸 수 없게 되자, 1968년 제13차 국제도량형총회에서 0°K의 온도에서 세슘-133 원자(133Cs)의 바닥상태에 있는 두 준위 사이의 전이에 대응하는 복사선의 9,192,631,770주기의 지속시간을 1초로 정한 것이다. 다시 말해, 바닥상태에 있는 세슘-133 원자의 복사선이 두 준위 사이에 9,192,631,770번 왕복하는 시간을 1초로 정한 것이지요. 


그 밖에 전류의 암페어, 온도의 켈빈, 물질량의 몰, 광도의 칸델라는 복잡한 물리학적 과정을 통해 정의되어 사용되고 있습니다. 유도 단위는 이 7가지 기본 단위를 조합해 여러 가지 물리량을 측정하는 단위가 만들어집니다. 힘을 나타내는 뉴턴(N), 진동수를 나타내는 헤르츠(Hz), 압력 또는 기압을 나타내는 파스칼(Pa), 에너지를 나타내는 줄(J), 전력을 나타내는 와트(W) 전압을 나타내는 볼트(V) 등입니다.



우리나라의 단위 체계 변화

우리나라는 오래 전부터 길이 또는 거리의 단위로 ‘자’, 넓이의 단위로 ‘평’, 무게의 단위로 ‘근’을 써왔습니다. 어느 나라나 만찬가지지만 처음의 이런 단위들은 신체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것이 많습니다. 길이를 나타내는 단위도 손가락의 길이나 손바닥의 길이로 나타냈지요. ‘자’는 팔꿈치에서 손끝까지의 길이로 대략 30센티미터입니다. 넓이를 나타내는 ‘평’은 어른이 양팔을 최대한 벌리고 누울 수 있는 넓이입니다. 양팔을 벌리고 누우면 가로와 세로의 길이가 거의 정사각형이 나오는데 한 변이 6자 정도 됩니다. 따라서 1평은 미터 단위로 환산하면 3.3제곱미터가 됩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인체 비례도인데요, 어른이 이렇게 팔 벌려 누울 수 있는 넓이를 1평으로 정했답니다. 위키백과

무게를 나타내는 ‘근’은 16냥 또는 100돈 두 가지로 사용합니다. 즉, 1근을 16냥, 1냥이 37.5그램이므로 1근은 600그램입니다. 100돈으로 계산하는 경우는 1돈이 3.75그램이므로 1근은 375그램이 됩니다. 따라서 우리 조상들은 고기나 한약재의 무게를 잴 때 1근은 600그램으로, 과일이나 채소의 무게를 잴 때 1근은 1관의 10분의 1인 375그램으로 사용했습니다. 무게의 단위로 ‘관’도 함께 썼는데요, 1관은 100냥입니다. 따라서 1관은 6.25근이고 3,750그램입니다. 이렇게 우리 조상들은 자, 관을 단위로 썼다고 해서 ‘척관법’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도량형 제도는 1961년 미터법으로 통일되었고, 1964년 1월 1일부터 토지 건물이나 수출입, 몇몇 특수 분야를 제외하고는 척관법과 야드-파운드법을 폐지했습니다. 또한 1983년 1월 1일부터는 토지 건물에 사용하던 ‘평’도 사용이 금지되었습니다. 그래도 사실 완전히 금지되지는 않아서, 국제적인 단위 통일을 위해 2007년 7월 1일부터 전면 금지했으며, 이를 위반했을 때 과태료를 부과하기로 했습니다.


기본 단위가 새롭게 정의된다!

그런데 지난해 11월 16일, 제26차 국제도량형총회에서 질량의 단위인 킬로그램을 비롯한 4개의 기본 단위를 새롭게 정의했고 2019년 5월 20일부터 적용하기로 했습니다. 즉, 질량의 킬로그램, 전류의 암페어, 온도의 켈빈, 물질량의 몰을 재정의한 것입니다. 5월 20일은 ‘세계 측정인의 날’입니다.
킬로그램(kg)은 1889년 백금 90%와 이리듐 10% 합금으로 만든 ‘질량원기’를 사용하여 질량을 정의했는데, 100년 이상 지났기 때문에 미세한 마모나 이물질 흡착 등으로 10만 분의 5그램 정도 변한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유리 상자 안에 보이는 것이 백금-이리듐 합금으로 만든 질량원기예요. 이것을 기준으로 1kg을 정했지만 이제는 질량원기를 기준으로 하지 않는답니다. 위키백과

물질량을 나타내는 몰(mol)은 탄소의 질량을 바탕으로 정의됐기 때문에 질량의 재정의에 따라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온도를 나타내는 켈빈은 물의 삼중점의 열역학적 온도 273.16분의 1을 1켈빈(K)으로 정의했으나, 동위원소의 비율이 달라져 불안정성이 대두되었습니다. 전류를 나타내는 암페어도 ‘무한히 길고 무시할 수 있을 만큼의 작은 원형 단면적을 가진 두 개의 평행한 직선 도체가 진공 중 1미터 간격으로 유지될 때, 두 도체 사이에 매 미터 당 2×10-7뉴턴(N)의 힘을 생기게 하는 전류’로 정의했으나, 애매한 표현들이 있어 실제로 구현하기 어려운 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국제도량형총회에서 7개의 기본 단위에 기본 상수를 써서 안정성과 보편성을 가진 불변인 단위가 되도록 새롭게 정의하게 된 것입니다. 기본 상수란 빛의 속도, 플랑크 상수, 기본 전하량, 볼츠만 상수, 아보가드로 상수 등 현재까지 불변이라고 여기고 있는 물리량을 말합니다. 따라서 질량은 플랑크 상수를, 전류는 기본 전하량을, 온도는 볼츠만 상수를, 물질량은 아보가드로 상수가 되도록 하는 단위로 정의되었습니다.
몰론 4개의 기본 단위가 새롭게 정의된다 하더라도 우리가 사는 일상생활에서의 변화는 없습니다. 단위 자체가 변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그 단위의 정의가 새롭게 바뀌는 것입니다. 즉, 질량의 단위의 정의가 바뀐다고 내 몸무게가 늘거나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단위는 과학, 기술, 공학, 의학, 약학 등 연구개발에 매우 민감한 표준이고 국제적으로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규약입니다.



참고 자료
한국표준과학연구원,
https://www.kriss.re.kr/information/report_data_view.do?seq=2832동아사이언스http://dongascience.donga.com/news.php?idx=25107


매거진의 이전글 노벨상에 가까웠던 이론물리학자, 이휘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