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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의 과학 Mar 04. 2019

레닌에게 으름장 놓던 소련의 국보 과학자 ‘파블로프’

파블로프의 개 실험 장면 by wellcomecollection.org CC-BY-4.0(Wikimedia commons)

‘파블로프의 개’는 조건반사 개념을 상징하는 심리학 용어입니다. 개에게 먹이를 줄 때마다 종을 치는 실험을 반복하자 종소리만 들어도 개가 침을 흘리게 됐다는 실험입니다. 하지만 실험을 진행한 이반 페트로비치 파블로프(1849~1936년)는 원래 심리학자가 아닌 생리학자입니다. 


당시 서유럽의 생리학자들은 생명체의 ‘정신’은 심리학의 영역이라고 여겼습니다. 이 때문에 파블로프가 ‘고등신경활동’이라고 불렀던 정신은 생리학이 다룰 수 없는 영역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생리학자인 파블로프는 생명체의 정신을 연구하게 된 것일까요?




파블로프, “실험에 희생된 700마리의 강아지 이름을 모두 기억한다”


개에게 수술하는 파블로프와 동료들 by wellcomecollection.org CC-BY-4.0(Wikimedia commons)


파블로프는 1849년 러시아 랴잔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고향에서 신학교에 입학했지만 다윈의 <종의 기원>이나 세체노프의 <뇌의 반사>처럼 금지된 책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그는 멘델레예프 등 유명한 과학자가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교에 진학하면서 아버지와의 인연을 끊습니다. 


이어 파블로프는 동물해부 실험의 달인인 치온 교수 밑에서 탁월한 외과수술 기술을 터득하고 임피리얼 의학아카데미에서 의사 자격을 취득합니다. 그는 1890년대 실험의학연구소에서 소화액 분비 연구의 꽃을 피웁니다. 


사람의 소화기관을 닮은 포유동물 중에서 파블로프는 개를 주로 실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그의 실험은 개의 턱에 구멍을 내서 타액이 밖으로 나오도록 한 뒤 그 타액의 양을 측정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동물을 정교하게 수술하고 나서 회복 기간을 주며 긴 시간 동안 관찰해야 하는데, 토끼는 금방 죽었고 돼지는 예민했으며 고양이는 심술궂었습니다. 이 때문에 개의 위를 둘로 나눠 음식이 위에 들어갔을 때 소화액 분비와 소화과정을 동시에 관찰하는 정교한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실험이 끝난 개는 정상적으로 살 수가 없었습니다. 파블로프는 소화액뿐 아니라 신경계, 인슐린, 내분비계 등을 발견하기 위해 수많은 개를 해부하고 죽였습니다. 그는 노년에 “내 실험에 희생된 700마리의 강아지 이름을 모두 기억한다”라며 죄책감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인공적 조건반사의 발견으로 뇌연구의 새 지평을 열다.

 

실험에 동원된 5마리의 개 by wellcomecollection.org CC-BY-4.0(Wikimedia commons)


파블로프가 침샘연구 과정에서 만들어낸 ‘고전적 조건화’ 개념은 그의 연구를 뇌신경학과 행동과학의 영역으로 넓히는 계기가 됩니다. 그가 새로 발견한 반사는 외부환경의 조건에 의존하는 반사이므로 ‘조건반사’(conditioned reflex)라고 불렀습니다. 반면 태어날 때부터 생존을 위해 신체가 따르는 반사를 ‘무조건반사’(autonomic reflex)라고 합니다.


그에 따르면 조건반사가 형성되려면 음식처럼 ‘생명체의 생존에 필요한 자극’과 ‘꼭 필요하지 않는 자극’을 동시에 주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조건반사가 생기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즉, 파블로프는 생명체가 조건반사를 통해 환경에 적응을 더 잘 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1904년에 발표된 실험결과에 따르면, 반복에 의해 조건반사가 사라지는 속도는 조건자극을 주는 간격에 관련돼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음식을 주지 않고 조건자극을 2분마다 주면 15분 뒤에는 반응이 없어졌습니다. 또 4분 간격이면 20분 후, 8분 간격이면 54분 후에 반응이 사라졌고, 16분 간격은 2시간 뒤에도 조건반사가 남았습니다. 


이때까지의 조건반사는 음식과 관련된 자극, 이를테면 음식의 모습, 음식의 냄새 등과 연결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음식과 무관한 자극인 전기자극, 호루라기, 메트로놈 등을 사용하면서 동물이 감지할 수 있는 모든 외부자극과 연결된 조건반사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 밝혀집니다. 파블로프는 전자를 ‘자연적 조건반사’, 후자를 ‘인공적 조건반사’라고 칭합니다.


이러한 인공적 조건반사는 실험동물의 경험에 의한 차이를 극복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가령 기존의 실험은 음식과 관련된 자연적 조건반사였기 때문에 음식에 따른 동물의 선호나 경험 같은 개성이 반영될 수 있습니다. 반면 인공적 조건반사의 확립은 감각을 담당하는 뇌의 모든 부분이 객관적으로 연구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연구원에게 나와 같은 수준의 식량과 물자를 배급하라!


파블로프의 초상 by wellcomecollection.org CC-BY-4.0(Wikimedia commons)


사실 파블로프는 유명 인사가 되기 전까지 방 한 칸도 못 구할 만큼 가난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모든 것을 실험에 쏟아부었습니다. 양육비가 없어 첫째 아이를 잃은 뒤 출산한 둘째 아이를 위해 제자들이 걷어준 돈마저도 실험용 동물을 구입하는 데 썼을 정도입니다. 조건반사 실험을 통해 1904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그는 소련의 기초과학 발달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파블로프는 일생 동안 연구활동에만 전념했기 때문에 정치적인 활동에는 전혀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파블로프는 1917년 볼셰비키혁명을 주도한 혁명세력에 적대적이었을 뿐 아니라 그의 아들은 혁명 이후 벌어진 내전(1918~1921년)에서 반혁명세력인 백군에 가담해 한동안 시베리아로 유배를 가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그는 생리학 연구는 물론 정상적인 생활이 어렵다며 소련 정부에 해외 이민을 신청하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러자 통치자 레닌은 파블로프의 연구를 특별히 지원하라는 명령을 통해 노벨상 수상자인 파블로프를 ‘신생 소비에트의 국보’로 대접하여 그의 생활비와 연구비를 지원했습니다.


또 연구원들에게 자신과 같은 수준의 식량과 물자가 배급되지 않는다면 공산당이 베푸는 모든 특혜를 거부할 것이라는 파블로프의 으름장은 과학자를 우대하는 풍토를 낳아 소련의 과학기술이 발전하는데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참고문헌


김옥주, 1992, 〈파블로프(I. P. Pavlov)의 조건반사 이론의 형성과정〉, 의사학회지, 1(1), 19~30pp.

김옥주, 2000, 〈20세기 중엽 소련의 의학사상 – 파블로프이론과 스탈린주의의 결합〉, 한국과학사학회지, 22(2), 238~261pp.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02261758325&code=100100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7110310045277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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