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일본 추리작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소설가로는 드물게 전기공학을 전공했습니다. 과학 이론을 소재로 데뷔한 이후 80편 이상의 완성도 높은 작품을 내놓고 있습니다. 나오키상 수상작 <용의자 X의 헌신>, 지난 6년 연속 우리나라에서 베스트셀러였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그의 작품입니다. <라플라스의 마녀>는 데뷔 30주년 기념작으로 2018년 일본에서 영화화되었고 2019년 한국에서도 개봉됩니다.
라플라스의 마녀는 18세기 프랑스의 천문학자이자 수학자이던 피에르 시몽 라플라스(1749~1827)가 이야기한 ‘라플라스의 악마’를 말합니다. 1814년 발행된 에세이 <확률에 대한 철학적 시론>에서 악마와 같은 초지식자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자연을 움직이는 모든 힘과 자연을 이루는 존재들의 각 상황을 한순간에 파악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게다가 그의 지적 능력은 이 정도 데이터를 충분히 분석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하자. 그렇다면 그는 우주에서 가장 큰 것의 운동과 가장 가벼운 원자의 운동을 하나의 공식 속에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 불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며, 과거와 마찬가지로 미래가 그의 눈앞에 나타날 것이다."
위 내용은 뉴턴의 기계론적 결정론을 반영하는 이야기로 이후에 철학적 논란의 중심이 됩니다.
라플라스가 태어난 노르망디 칼바도스는 파리에서 서쪽으로 200km쯤 떨어진 해안지역입니다. 지명을 딴 칼바도스라는 사과 증류주가 유명한 곳입니다. 라플라스는 이곳에서 1749년 3월 23일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 역시 사과주 사업을 하였고 지역 행정장관을 역임했습니다. 어머니도 부유한 농부 집안 출신이었다고 하니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17세이던 1766년 라플라스는 지역 명문인 노르망디 캉 대학교에 입학하여 3년간 공부했습니다. 졸업 즈음에 지도교수인 피에르 르 카뉘가 써준 소개장을 들고 파리로 가서 당시 유명 수학자인 장 달랑베르를 만납니다. 달랑베르는 빛나는 라플라스의 능력을 알아보고 적극 지원하여 1771년부터 파리군관학교에서 교편을 잡도록 도와줍니다. 라플라스는 이 학교에서 1776년까지 머물면서 꾸준히 논문을 발표하여 명성을 쌓았고 1773년에는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되었습니다.
항간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와는 라플라스는 학생과 시험감독관으로 만났다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연도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나폴레옹은 1779년 유년학교에 입학하고 5년간 기숙사 생활을 했습니다. 파리군관학교에 입학한 것은 1784년입니다. 이때는 라플라스가 이미 학교를 떠난 뒤였습니다. 오히려 라플라스는 1785년 왕립포병부대에서 감독관을 했는데 당시 16세이던 나폴레옹을 합격시켰다는 일화가 신빙성 있어 보입니다. 어쨌든 당대 최고의 권력자와 수학자로서 두 사람은 이후에도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에피소드를 만들게 됩니다.
1773년 라플라스는 수리론을 태양계 운동에 적용하여 그동안 논란이던 태양계 안정성에 대한 이론을 발표하기 시작합니다. 이후 연구결과를 집대성해 1799년~1825년 <천체역학>(전 5권)을 출간했는데, 이것은 뉴턴의 <프린키피아(Principia)>에 견줄 만한 명저로 간주됩니다. 특히 제3권은 나폴레옹에게 헌정됐습니다. 이 책으로 라플라스는 ‘프랑스의 뉴턴’이라는 명성을 얻게 됩니다.
1796년 간행된 일반인을 위한 저서 <우주 체계 해설>은 내용의 명확성과 쉬운 문체로 대중을 매혹시켰습니다. 태양계의 기원에 관한 성운설의 구상을 내용으로 담고 있었는데, 그가 칸트의 성운설을 이미 알았는지는 불명확합니다. 당시 알려져 있던 7개의 행성과 14개의 위성이 모두 같은 방향으로 태양 둘레를 돌고 있고, 8개가 같은 방향으로 자전을 한다고 밝혀져 있었습니다. 시계 방향 아니면 반시계 방향으로 돌기 때문에, 전체 확률 값에서 29개의 경우가 우연히 일어날 확률인 (1/2)29를 빼면 거의 1과 같기 때문에 동시 형성 가능성은 100%에 가깝다고 명쾌히 설명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책에 실린 ‘라플라스 판 블랙홀’입니다. 그는 ”밀도가 지구와 같고 지름이 태양의 250배인 별에서 나온 광선은 그 중력이 끌어당기는 힘 때문에 우리에게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이 이유 때문에 우주에서 가장 크고 밝게 빛나는 천체가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을 수 있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다만 이 내용은 제3판부터는 삭제됐습니다. 그 자신도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 뒤 블랙홀은 거의 150년이 지나 물리학계에서 화두로 떠오르게 됩니다
라플라스는 고전 확률론을 확립하여 완성단계로 끌어올린 수학자라고 평가됩니다. 아직도 대학교 수학책에서 라플라스 방정식, 라플라스 연산자, 라플라스 변환 등의 이름이 붙어있는 내용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특히 수려한 문장으로 공식 없이 확률론을 설명한 <확률론>의 서문과 일반인을 위해 <천체역학>의 결론을 정리하여 출판한 <우주 체계 해설>은 걸출한 과학저술로 일컬어집니다.
당시 프랑스 과학계는 유럽의 최첨단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라플라스는 당시 유명한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인 조제프루이 라그랑주와 교류하였고, 위대한 화학자이던 앙투안 라부아지에와도 공동연구를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단두대의 제물이 된 라부아지에와는 달리 라플라스는 세상의 흐름을 잘 읽었습니다.
프랑스 혁명 후 불안한 자코뱅 공포정치 시절에는 지방에서 숨어 살았습니다. 이후 쿠데타로 황제가 된 나폴레옹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여 내무부 장관을 지내며 백작 작위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왕당파가 유리해지자 부르봉 왕조를 지지하여 이후 복위한 군주 루이 18세 때 후작 작위를 받았습니다.
올해 3월 23일은 라플라스가 탄생한 지 27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무신론자인 라플라스에게 절대자로서 신이 등장할 여지는 없었습니다. 라플라스가 자기의 운명을 결정론적으로 해석했는지 자기주도적으로 해석했는지 확인할 방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자유의지가 있는 존재인지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간 것은 분명합니다. 인류의 과학능력이 발전하여 인류가 라플라스의 악마가 될 수도 있을지 상상해 보고 싶은 날입니다.
참고문헌
라쁠라스의 악마는 무엇을 몰랐을까, 양운덕, 창작과비평사, 2001
사람이 알아야할 모든 것 과학, 존 그리빈 저, 강윤재 외 역, 들녘, 2004
세상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야자와 사이언스 오피스 저, 장석봉 역, 바다출판사, 2016
우주를 계산하다, 이언 스튜어트 저, 이충호 역, 흐름출판, 2019
위키 백과
확률에 대한 철학적 시론, 페에르 라플라스 저, 조재근 역, 지식을 만드는 지식,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