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색다른 국립공원, 지질공원 이야기 -
주왕산(720.6m)이 위치한 청송은 오지입니다. 전국이 반나절 생활권인 지금, 주왕산은 서울에서 3시간 반이 넘게 걸립니다. 옛날에도 도피처로 삼을 만큼 외딴곳이었습니다. 중국 당나라 시절 주왕이라고 불린 주도라는 사람이 수도 장안에서 반란을 꾀하다 실패하고 멀고 먼 이 산에 은거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왕산이라는 이름이 생겼습니다.
주왕산은 쉽게 오르내릴 수 있는 산입니다. 하지만 쉽게 찾아지진 않는 산입니다. 그래서 아직 우리에게도 낯선 산입니다. 평탄한 산길에 대비되는 웅장한 봉우리는 영화에 나오는 듯한 색다른 분위기를 만듭니다. 누군가는 이러한 산세를 설악산이나 월출산과 어깨를 견줄 만한 우리나라 3대 암산이라고 했습니다. 유네스코는 왜 이런 오지의 주왕산을 지질공원으로 인증했을까요?
주왕산이 위치한 경상도 일대는 지금으로부터 1억 년 전인 중생대 백악기 무렵에는 호수였습니다. 경상분지라고 이름 붙은 이 호수는 유라시아 판의 동쪽 끝에 있었습니다. 주변에 높은 지역에서 침식된 암석들은 기반암인 선캄브리아 변성암과 중생대 쥐라기에 관입*한 청송화강암 위에 600m 두께의 퇴적층을 형성시켰습니다. 이후 7000만 년 전 일본 동쪽의 이자나기판이라는 해양지각이 섭입*하면서 경상분지에는 화성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났습니다. 마치 지금의 일본과 같은 지질활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주왕산은 이때 분출한 중성 내지 산성의 회류응회암*이 두꺼운 층을 형성하였고 부분 침식되어 현재의 웅장한 모습을 갖게 되었습니다. 주왕산 주변에서는 아홉 차례 이상의 용암분출이 관찰됩니다.
*관입: 원래 존재하던 암석을 마그마가 뚫고 들어가는 현상
*섭입: 하나의 지각판이 다른 지각판의 밑으로 들어가는 현상
*회류응회암: 화산재가 흐르면서 쌓이는 응회암
이러한 메커니즘으로 만들어진 주왕산 주변은 갖가지 지질명소로 가득합니다. 대전사 뒤에 솟은 기암단애(주왕산 기암 절벽 지명)에는 주상절리가 볼만합니다. 청송 구과상 유문암은 청송꽃돌로 불리며 마그마의 냉각과정을 잘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청송 제1경인 백석탄 포트홀은 응회암에 대한 물의 침식작용을 잘 보여 줍니다.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만큼 크지는 않지만 다양한 지질명소가 가득합니다.
24군데의 지질명소로 구성된 주왕산 일대는 지질학적 특이성을 인정받아 2017년 청송이라는 이름의 유네스코 지질공원으로 인증받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에 이어 두 번째이며, 세계적으로는 120번째입니다.
대만을 방문하는 여행객이라면 빼놓지 않고 방문하는 곳 중의 하나가 예류지질공원입니다. 수도 타이베이 북동쪽 지룽시에 위치한 공원으로 한 시간 남짓이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정치적 이유로 유네스코 지질공원은 아니지만, 바닷가와 어우러지는 이 공원은 CNN에서 마치 우주의 풍경처럼 아름다운 곳으로 지구상에서 가장 화성과 비슷한 곳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이암층과 사암층이 차별침식을 받아 여왕바위 등 뛰어난 조형물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이웃 나라 일본에는 9개의 유네스코 지질공원이 등록되어 있습니다. 그 중 큐슈의 아소지질공원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활화산인 아소산은 거대한 칼데라와 화산체로 구성되어 있어 큐슈 여행 중에 많은 관광객들이 들르던 곳입니다. 2019년 4월에는 또다시 분화하여 연기가 200m 높이까지 올라갔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살아있는 지구의 모습을 체험할 수 있는 지질공원입니다.
우리나라는 국토면적은 작지만 화성암, 퇴적암, 변성암 등이 골고루 분포하여 있고 각 지질시대별로 다양한 지질학적 명소가 산재합니다. 또 여러 차례의 지각변동과 오랜 풍화 침식의 결과로 아름답고 독특한 지형 경관이 많이 존재합니다. 이 중 기준에 적합한 장소를 지질명소라고 합니다. 지질공원은 지질명소로 이루어집니다.
현재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된 곳은 10개소입니다. 제주도, 울릉도/독도, 부산, 강원평화지역, 청송, 무등산, 한탄강, 강원고생대, 경북동해안, 전북해안권입니다. 2019년 3월 현재 184개의 지질명소가 지정되어 있습니다. 각 지질명소는 국가지질공원 홈페이지에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추가로 지질공원 인증신청을 준비하는 곳은 백령∙대청, 단양, 의성, 무주, 전라남도, 설악권, 태안∙서산 등이 있습니다. 제주도, 청송, 무등산권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의 인증을 받았습니다.
지질공원은 명소에 따라 구성 암석, 지질작용, 주변 인문학적인 스토리 등이 다양하기 때문에 사전 지식을 갖고 방문하는 것이 좋습니다. 알게 되면 우리 땅이 새롭게 보이고 그때부터 우리 땅은 예전과 다르게 느껴집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지질공원의 주요 장소에는 안내소와 해설사가 탐방객을 맞고 있습니다. 전문교육을 이수한 주민들로 구성된 해설사와 함께 하는 것이 지질공원을 즐기는 가장 현명한 방법입니다.
참고자료
손영운의 우리땅 과학답사기, 손영운, 살림, 2009
한국지형산책, 이우평, 푸른숲, 2007
국가지질공원 홈페이지 www.koreageoparks.kr
세계지질공원네트워크 홈페이지 www.globalgeopark.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