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중반 우리나라에 역사상 가장 심각한 기아 사태가 있었습니다. 당시 조선 인구는 1300만 명 정도로 추정되는데 약 90만에서 150만 명이 사망하는 참담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피해가 얼마나 심각했으면 임진왜란도 이것보다는 나았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조선 현종 재위기인 1670년(경술년)~1671년(신해년)의 일로 ‘경신대기근’이라고 부릅니다. 각종 기상 이변과 가뭄, 돌림병이 제주도부터 함경도까지 강타했습니다. 그 사회적인 여파는 너무 심각하여 글로 옮기기 어려운 정도입니다.
19세기까지 유럽에서도 갖가지 기상 이변이 속출했는데 가장 유명한 것이 아일랜드 대기근입니다. 아일랜드 감자 기근으로도 알려진 이 사건은 감자 역병이 아일랜드를 휩쓸면서 일어났습니다. 1845년~1852년까지의 기간에 대략 100만 명의 사람이 죽고 비슷한 숫자의 사람들이 아일랜드를 떠나 해외로 이주했습니다. 결국, 아일랜드의 인구는 25%가 줄어들게 됩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현재 학자들은 이 사건을 중세 소빙하기(Little Ice Age)의 소행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소빙하기는 약 12,500년 전에 종식된 마지막 빙하기 이후 가장 추웠던 시기를 의미합니다. 정확한 연도를 특정하는 것은 어렵지만 대체로 1300년에서 1850년까지로 보고 있습니다. 절정기는 1600년에서 1800년이라고 봅니다. 이 중 추위가 극심했던 17세기를 유럽에서는 ‘17세기의 위기’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영국 템스강은 겨울에도 잘 얼지 않는 강입니다. 20세기 이후 영국의 겨울은 멕시코 난류의 영향으로 그리 춥지 않습니다. 하지만 소빙하기에 템스강은 무려 24차례나 얼어붙었습니다. 1683년~1684년 추위가 가장 심했을 때는 거의 두 달간 얼어붙었습니다. 얼음의 두께가 거의 사람 키만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꽁꽁 언 강에서 장터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네덜란드의 화가 에이브러햄 혼디우스의 그림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먼저 빙하기와 소빙하기가 생기는 원인은 나누어 생각해 봐야 합니다. 왜 빙하기가 일어나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가장 많이 인정받은 것은 밀란코비치 주기, 이산화탄소와 같은 온실가스의 농도 변화 등입니다.
빙하기와 간빙기* 간의 주기는 밀루틴 밀란코비치(1879~1958)가 밝힌 세 가지 천문학적 요인으로 설명됩니다. 첫째는 약 10만 년을 주기로 원형에서 타원 형태로 변하는 지구 공전궤도 모양의 변화 즉, 이심률 변화입니다. 둘째는 팽이 축이 기울어져 도는 것처럼, 지구 자전축이 비스듬히 원형으로 회전하는 세차 운동입니다. 약 2만6000년의 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심률과 세차 운동은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에 변화를 일으켜 지구가 받는 태양에너지가 변화시킵니다. 셋째로 4만1000년을 주기로 21.5도에서 24.5도까지 오르내리는 지구 자전축 기울기의 변화입니다. 자전축 기울기 변화 그 자체로는 지구에 도달하는 전체 태양에너지를 변화시키지는 못하지만, 위도에 따라 입사되는 태양에너지를 변화시킵니다. 이심률, 세차 운동과 자전축 기울기의 세 주기는 서로 얽혀 작용하면서 서로를 증폭시키기도 하고 상쇄시키기도 하며 빙하기를 만들어 낸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간빙기: 빙기와 다음 빙기 사이에 있는 기간으로 전후의 빙기에 비해서 따뜻한 시기가 비교적 오래 계속되는 시기
소빙하기의 원인은 변동 기간이 짧은 만큼 인과관계를 밝혀내기가 더 어렵습니다. 먼저 태양의 활동으로 지구의 온도가 내려갔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극심히 추웠던 1645년~1715년 동안에 태양의 흑점 수가 상대적으로 급격하게 줄어들었습니다. 이 기간을 영국의 천문학자 마운더의 이름을 따서 ‘마운더 극소기(Maunder Minimum)’라고 부릅니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는 2019년 5월 31일자 특집기사를 싣고 태양 흑점의 11년 주기가 올해 말 다시 시작할 것이라는 전문가 예측을 실었습니다. 이번 태양 주기는 2019년 7월부터 2020년 9월 사이 시작되고 극대기는 2023년에서 2026년 사이가 될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대기 중의 온실가스가 빙하기와 소빙하기를 유발하는 원인인지에 대한 연구도 이뤄지고 있습니다. 가장 주목받는 온실가스는 이산화탄소, 메탄입니다. 온실가스는 무조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어서 만약 온실가스가 없다면 지구는 태양에너지를 흡수하지 못하기 때문에 평균기온은 지금보다 훨씬 낮은 –18도 정도 될 것이라고 합니다. 온실가스 중 현재 가장 문제시되고 있는 것은 이산화탄소입니다.
대기 중에 이산화탄소의 농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식물의 광합성입니다. 식물은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이용하여 광합성을 하고 유기물을 만듭니다. 식물이 죽으면 박테리아는 사체의 탄소를 분해하여 이산화탄소로 대기 중에 방출합니다. 광합성 주기는 빠른 편이어서 여름에는 이산화탄소가 소모되고 겨울에는 그 반대가 됩니다. 지질시대 석탄기에는 식물들의 사채가 매몰된 후 분해되지 않아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량이 상당 부분 줄어들었습니다. 이런 원인이 페름-석탄기 빙하시대 시작의 원인이 됐습니다.
이를 통해 유추하면 식생에 의한 이산화탄소 증감이 지구 기온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농경사회가 시작되면서 인류는 지구 식생에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따라서 이런 연관성을 통한 빙하기 연구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연구팀이 2019년 1월 제4기 과학리뷰(Quaternary Science Reviews)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16~17세기의 소빙하기 원인이 유럽인의 아메리카 대륙 식민지화 결과라는 의견이 있습니다. 인류가 지구 기후에 영향을 준 것이 산업혁명 이후부터라는 이야기와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식민화 과정에서 당시 세계 인구의 10%인 6천만 명에 이르던 아메리카 원주민은 100년 만에 90%가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정복자들의 학살, 천연두와 홍역 등 외래질병, 침략에 따른 사회적 스트레스가 그 원인입니다. 이에 따라 프랑스 면적만 한 경작지가 숲이나 초원으로 변했고 대기 중으로 방출되는 이산화탄소량이 감소하게 됩니다. 그 결과 1500년대 말과 1천600년대 초의 평균기온이 0.15도까지 떨어졌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입니다.
연구팀은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들의 엄청난 죽음은 산업혁명 이전 2세기 동안 지구 시스템 전반에 충격을 줬다"라고 밝혔습니다. 이는 우리가 이야기하는 소빙하기를 말하는 것입니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마운더 극소기가 1645~1715년에 겹쳤다는 것입니다. 소빙하기의 원인이 이산화탄소의 감소인지, 태양 주기의 변화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이유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주장이 있습니다. 소빙하기의 원인을 밝혀낼 후속 연구를 기대해 봅니다.
소빙하기의 추위를 견디고자 유럽 사람들은 더 많은 목재를 땔감으로 사용하였습니다. 목재 가격이 급등하자 새로운 연료를 찾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바로 석탄입니다. 처음에는 지표면에서 캐기 쉬운 석탄을 이용해도 충분했지만, 사용량이 늘어남에 따라 점점 지하에 매장된 석탄을 찾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때 가장 큰 문제는 탄광에 물이 차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해결한 것이 증기기관의 발명입니다. 결국, 소빙하기는 인간에게 추위만 가지고 온 것이 아니라 산업혁명의 불씨도 함께 가져 왔습니다.
물론 역사는 하나의 인과관계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소빙하기로부터 나타난 결과를 직선적으로 연결하는 것은 무리일 수도 있습니다. 최근 기후라는 변수가 무시하지 못할 역할을 했다는 것이 점점 밝혀지고 있습니다.
미국 해양대기청(NOAA)과 스크립스해양대(SIO)은 2019년 5월 평균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414.7ppm으로 측정된다고 발표했습니다. 지난 10년간 연평균 2.2ppm씩 증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점은 기후의 변화가 갑작스럽게 일어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산화탄소 증가에 의한 기온변화는 다시 해저나 툰드라 지역의 메탄가스를 대기 중으로 방출시키는 방아쇠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온실가스의 복합적 작용으로 갑작스러운 기온상승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인류는 이제 점진적인 기후변화에는 어느 정도 대비할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완벽한 대비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제는 급격한 기온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한다는 생각으로 지구 기후에 관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참조자료
그림으로 읽는 빅히스토리, 김서형, 학교도서관저널, 2018.01.
대기근, 조선을 뒤덮다, 김덕진, 푸른역사, 2008.12.
우리는 지금 빙하기에 살고 있다, 더그 맥두걸 저, 조혜진 역, 말글빛냄, 2005.11.
이미지 참조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2000_Year_Temperature_Comparison.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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