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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의 과학 Dec 04. 2019

빨대를 지닌 곤충?!


지구에서 가장 많은 종류를 자랑하는 동물은 곤충입니다. 우리 주변에서만 봐도 나비, 벌, 모기, 파리, 딱정벌레, 쇠똥구리, 잠자리 등 다양한 곤충들이 있지요. 곤충은 또 사람과 달리 내부에 뼈가 없고 껍데기로 외골격을 형성하고 있어 구조도 굉장히 특이한 경우가 많은데, 특히 구기(口器 : 입 부분의 기관)가 그렇습니다.    


곤충이 빨다  


곤충 구기의 다양한 진화 by Xavier Vázquez CC BY-SA 3.0 (Wikimedia).


사람의 입에 해당하는 곤충의 부위를 구기(口器 : mouthpart)라고 합니다. 그냥 입이라고 부르기에는 뭔가 매우 달라서이죠. 같은 포유류도 먹이에 따라서 모양이 다르지만, 그래도 입술이 있고, 아래턱과 위턱에 이빨이 있고, 혀가 있는 기본 구조는 모두 같습니다. 다만 이빨의 모양, 입술 모양, 혀의 모양 정도가 저마다 다를 뿐이죠. 그러나 곤충의 구기 모양은 먹이 섭취에 따라 달라도 아주 다릅니다. 잎을 갉아 먹거나, 작은 벌레를 사냥하여 물고, 써는 모양은 우리에게 익숙한 입 모양과 비슷한 편이나, 액체를 빨아먹을 때에는 이것도 입인가 싶을 정도로 다릅니다. 마치 입 대신 빨대를 가지고 있는 모습인데, 그 빨대를 평소에 계속 편 채로 가지고 다니기가 성가셔서 둘둘 말아놓는 모양도 있습니다.  


이런 빨대 모양의 구기를 가진 곤충은 나비, 모기, 파리, 딱정벌레 등이 있는데 기본 구조가 아주 비슷합니다.      




날기 시작한 곤충의 고민  



이들이 이런 구기를 가지게 된 진화적 배경을 한 번 살펴보도록 하지요. 아주 옛날, 그러니 지금부터 약 4억 년 정도 전의 일입니다. 곤충들이 날기 시작하면서 에너지 소비가 급격히 늘어납니다. 날아다닌다는 것은 중력을 거슬러 공중에 떠 있는 것이기에 지상에서 걷거나 뛰는 것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가 소모됩니다. 물론 천적을 피할 수 있고, 더욱 넓은 범위의 먹이를 취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에너지 소모가 극심해지는 단점이 있더라도 생존 가능성이 커져 이렇게 진화한 것이지요.


그래도 에너지 소모가 커지니 되도록 에너지가 높은 먹이를 선호하게 되는 건 당연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날기 위해서는 되도록 체중이 작아야 합니다. 무거우면 아무래도 날 때 에너지 소모도 커지고 방향 선회 등도 힘이 들지요. 체중을 줄이는데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소화기관을 줄이는 것입니다. 위장이나 소장 등을 아예 없앨 수는 없지만, 그 길이를 줄이고 부피를 줄이는 것은 가능합니다. 문제는 이렇게 소화기관이 줄어들면 소화 흡수율 또한 감소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화하기 쉬운 먹잇감을 찾게 되지요. 


소화하기 가장 어려운 것은 식물의 잎입니다. 나뭇잎이나 풀잎은 단위 질량당 에너지도 적은데 소화시키기는 아주 까다롭습니다. 그래서 소나 말처럼 풀을 주식으로 먹는 동물은 소화기관이 아주 길지요. 마찬가지로 곤충도 날지 않는 애벌레 시절에는 잎을 갉아 먹지만, 번데기 시절을 거쳐 성충이 되어 날개를 가지고 날기 시작하면 잎을 먹지 않게 식성을 바꾸는 경우도 있습니다. 




     
곤충이 빨대를 가지게 된 사연 


날기 시작하면서 이렇게 까다로운 입맛을 가지기 시작한 곤충들에게 안성맞춤인 먹잇감이 있으니 바로 꿀입니다. 꿀은 소화하기도 쉽고 단위 질량당 에너지도 아주 높지요. 하지만 4억 년 전 지구에는 꽃이 없었습니다. 꿀로 곤충을 유혹하는 꽃은 지금으로부터 2억 년 정도 전부터 슬금슬금 모습을 나타내다가 공룡이 멸종한 후 본격적으로 지상을 점령한 터입니다. 그럼 4억 년 정도 전의 지상에서 곤충에게 가장 적합한 먹이는 무엇이었을까요? 소화하기도 좋고 단위 질량당 에너지도 높은 첫 번째 먹이는 다른 동물입니다. 잠자리가 그렇게 진화했지요. 잠자리는 최초로 날게 된 곤충 중 하나인데 이 녀석들은 날기 시작하면서 다른 곤충을 잡아먹습니다. 채식보다는 육식이 에너지 효율도 높고 소화도 쉽지요.  


하지만 모든 곤충이 육식할 수는 없습니다. 생태계에서 육식하는 동물은 채식하는 동물에 비해 그 수가 대단히 적고, 이는 생태계 유지의 근간입니다. 육식하는 동물이 늘면 초식을 하는 동물의 수가 줄고, 이는 다시 육식 동물의 수를 줄여 항상 일정한 비율이 되도록 만듭니다. 따라서 날기 시작한 곤충 중 일부는 육식을 하더라도 나머지는 여전히 채식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식물의 잎은 원래 에너지 효율도 작고 소화도 어렵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단 하나입니다. 바로 식물의 수액을 먹는 것이죠.  


식물의 수액을 빠는 진딧물이 꽁무니에서 내놓은 단물을 먹고 있는 개미 by Dawidi CC BY 2.5 (Wikimedia)

식물은 잎에서 광합성을 통해 포도당을 합성합니다. 이렇게 합성한 포도당은 잎에 임시 저장이 되었다가 다시 설탕으로 바뀌어 체관을 타고 식물의 뿌리로 내려갑니다. 우리가 봄철 고로쇠나무에 구멍을 뚫어 마시는 수액이 바로 이것이죠. 나무의 경우 수액까지 구멍을 뚫는 것이 힘들지만 풀의 경우는 다릅니다. 곤충 중 일부가 잎 대신 줄기를 갉아 먹다가 이 체관도 같이 갉아 먹게 됩니다. 체관에서 흘러나온 수액은 이 곤충에게 효율성 높은 에너지를 제공합니다. 더구나 설탕은 고분자 화합물인 전분이나 녹말보다 소화 흡수가 쉽고 빠릅니다. 곤충 중 일부가 가지나 줄기를 갉아낸 뒤 수액을 섭취하는 방향으로 섭식 습관이 바뀌는데 이 과정에서 구기 모양이 빨대 형태로 진화합니다.     





빨대에 대한 또 다른 가설 


빨대 형태로의 진화는 수액과 같은 액체 상태의 물질을 더 빠르게 섭취할 수 있게 합니다. 이는 대단히 중요한 이점입니다. 대부분의 곤충은 천적이 있고, 천적이 사냥하기 가장 쉬운 순간이 먹잇감이 짝짓기하거나 무엇인가를 먹을 때입니다. 따라서 먹이 섭취의 시간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 잡아먹힐 확률을 줄이지요. 빨대 모양으로 구기가 진화한 곤충은 다른 곤충에 비해 빠르게 수액을 섭취함으로 생존율이 높아집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수액을 먹는 곤충 대부분이 결국 빨대 모양의 구기를 가지는 방향으로 진화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이렇게 수액을 빨기 위해 곤충의 구기가 빨대 모양으로 진화했다는 것은 아직 완전히 확인되지 않은 가설입니다.  


나비 중 일부는 진흙이나 물구덩이 혹은 사체에서 영양분을 빨아먹는다. 이미지 by Jee & Rani Nature Photography CC BY-SA 4.0 (Wikimedia)

또 다른 가설도 있습니다. 빨대 모양으로 구기가 바뀐 것이 수액 때문이 아니라 다른 동물의 사체에서 체액을 먹는 과정에서 진화한 것이라는 가설입니다. 겨울이 아닌 계절에 등산하다 보면 가끔 죽은 동물을 만날 때가 있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간 사체라면 예외 없이 주변에 파리나 나비 등이 떼로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동물이 죽고 나서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른 동물에 의해 피부 조직이 뜯겨나가게 되고 그런 상처로 사체 내부의 체액이 흘러나옵니다. 이런 체액에는 꽤나 영양분이 많이 있습니다. 나비나 파리 같은 곤충 중 일부는 바로 이런 체액을 빨아 에너지를 보충합니다. 이 과정에서 구기의 모양이 빨대와 같은 형태로 진화했다는 주장이죠. 그러나 이 가설에는 한 가지 단점이 있는데 죽은 동물의 사체를 만나는 것은 매일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또 경쟁이 대단히 치열합니다. 다른 나비나 파리도 경쟁의 대상이지만, 죽은 동물의 사체를 즐기는 쥐나 오소리 같은 다른 동물과도 경쟁해야 합니다. 따라서 곤충의 경우 사체만을 찾아다니기보다는 다른 먹이를 주로 섭취하면서 사체를 만날 경우 별식(?)을 즐기는 차원이라고 봐야 할 수도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빨대로 성공한 곤충


빨대처럼 생긴 구기가 꽃 속으로 들어가 꿀을 빨고 있다. 


어찌 되었건 빨대 모양의 구기를 가지고 나타난 종은 최초에 나무의 수액을 빨거나 동물 사체의 수액을 빠는 섭식 행동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식물도 이에 대응합니다. 수액을 빠는 곤충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가지의 표피를 단단하게 만드는 식물이 증가합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이런 단단한 표피를 뚫고 수액을 빨기 위해 곤충의 구기 또한 진화합니다. 먼저 식물의 표면을 긁어내는 부위와 뾰족하고 단단한 침의 형태로 체관까지 뚫는 빨대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이런 형태의 구기를 가진 곤충이 다시 한 번 진화하는데 바로 동물의 피를 빠는 흡혈 곤충이죠. 모기가 대표적인 생물이죠. 그러나 모기도 항상 피를 빠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모기가 피를 빠는 것도 아니지요. 번식기가 되어 알을 낳아야 하는 암컷 모기만이 피를 빱니다. 수액이나 꿀에는 없는 필수 영양소를 보충하기 위해서지요. 


그리고 중생대가 되자 손쉬운 먹이를 제공하는 이들이 나타납니다. 꽃을 피우고, 그 꽃에 꿀을 담아두는 식물들이 나타난 것입니다. 꽃 아랫부분에 고이 담겨있는 꿀은 단단한 표피를 뚫고 수액을 빨아먹는 것보다 훨씬 손쉽습니다. 더구나 꿀은 농축되어 있어 조금만 먹어도 수액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이 좋은 먹잇감을 놓칠 리 없습니다. 고생대 페름기 말에 나타났던 딱정벌레가 선두에 섭니다.      





꿀을 매개로 한 공진화 


식물과 곤충의 공진화


꽃의 꿀을 빠는 과정에서 꽃을 피우는 식물과 딱정벌레 사이의 공진화가 진행됩니다. 꽃의 입장에서 한 번 생각해보죠. 꽃이 꿀을 주는 이유는 자기 꽃의 꽃가루를 다른 꽃의 암술에 묻혀달라는 겁니다. 그런데 진달래꽃에서 꿀을 빨고는 채송화로 가봐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같은 진달래에게로 가야죠. 그래서 꽃들은 같은 종류의 꿀만 빠는 곤충을 선호합니다. 이 과정에서 딱정벌레들도 자연스레 종이 나뉘게 됩니다. 식물들은 먼저 서로 꽃을 피우는 시기를 다르게 합니다. 그리고 장소에 따라 달라지고, 크기나 모양도 달라지지요. 자신이 선호하는 꽃에 의해 딱정벌레들도 서로 만나는 시기와 장소 꽃들이 다르게 되지요. 이 과정에서 조금씩 종이 나뉘게 됩니다. 이렇게 종이 분화된 결과 딱정벌레는 현재 전체 곤충 종류의 40%를 차지합니다.  


딱정벌레가 꽃을 선점했다고 다른 곤충들이 가만있을 리 없지요. 벌과 나비, 모기와 파리들이 달려듭니다. 이들도 딱정벌레와 마찬가지로 꽃과의 공진화를 통해 다양한 종으로 진화합니다. 그래서 현재 곤충은 전체 동물 종의 75%를 차지합니다. 그중에서도 딱정벌레가 가장 많고, 다음으로 나비와 파리 벌 등이 종류가 많습니다. 결국, 꿀을 빠는 곤충들이 공진화를 통해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다양한 생물종이 된 것입니다.       





빨대로 꿀만 빠는 것이 아니다!


곤충들이 빨대로 꿀만 빠는 건 아닙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동물의 사체에서 흘러나오는 체액을 빨기도 하고 피를 빨기도 합니다. 나비 중 일부는 하마나 악어 같은 덩치 큰 동물의 눈물을 빨아먹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수액이나 꿀에는 소금 성분이 부족하니 이를 보충하려는 것이죠.   


똥을 먹고 사는 쇠똥구리 by Dewet CC BY-SA 2.0 (Wikimedia)

또 조금 더럽지만, 똥을 빨아먹는 곤충들도 굉장히 많습니다. 대표적인 곤충이 쇠똥구리지요. 이들의 조상은 원래 수액을 빨아먹는 딱정벌레였는데 경쟁과정에서 남들이 신경 쓰지 않는 새로운 먹이 똥을 발견한 것이지요. 똥파리나 쇠파리 등도 똥을 빨아먹는 대표적인 동물이지요. 그래도 이들이 똥을 처리하지 않았다면 지구의 표면은 온통 똥으로 덮여버렸을지도 모릅니다. 오스트레일리아에 처음 이주한 영국인들은 소와 양을 놓아 기르는데 몇 년 기르다 보니 초원에 이들이 싼 똥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있더란 거죠. 알고 봤더니 오스트레일리아 원산의 딱정벌레는 캥거루의 똥만 먹었던 것입니다. 결국, 영국에서 소똥을 먹는 딱정벌레를 데려와서야 해결이 되었습니다. 


가지의 수액과 꽃의 꿀, 덩치 큰 동물의 눈물, 심지어 사체의 체액과 다른 동물의 배설물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흔히 생각하지 못하는 다양한 곳에서 영양을 섭취하기 위해 발달한 곤충의 구기는 진화가 만들어낸 다양성을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합니다.    






  

[이미지 참조]

https://en.wikipedia.org/wiki/Honeydew_(secretion)#/media/File:Ant_Receives_Honeydew_from_Aphid.jpg

https://en.wikipedia.org/wiki/Mud-puddling#/media/File:Parthenos_sylvia-Kadavoor-2016-06-25-001.jpg

https://ko.wikipedia.org/wiki/%EC%87%A0%EB%98%A5%EA%B5%AC%EB%A6%AC%EC%95%84%EA%B3%BC#/media/%ED%8C%8C%EC%9D%BC:Dungbeetle.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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