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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의 과학 Jan 22. 2020

생명체의 산소 운반책, 포르피린 구조의 비밀



환경문제가 심각해지면서 한 번 쓴 물건을 다시 사용하는 재활용이 중요한 화두가 되었습니다. 쓰레기를 배출할 때도 일반 쓰레기와 재활용 쓰레기를 나눠서 내놔야 하지요. 이 재활용이 생태계에선 진작에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녹색의 비밀 


식물의 잎은 녹색입니다. 잎이 녹색을 띠는 것은 광합성을 하는 세포내 소기관인 엽록체가 있기 때문이지요.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엽록체 내에 태양빛을 흡수하는 색소인 엽록소의 색깔입니다. 엽록소는 빛을 흡수하여 이후 이어지는 광합성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하는 기관입니다. 엽록소의 모습의 아래의 그림과 같습니다. 질소를 한 꼭짓점으로 하는 오각형의 탄소화합물 네 개가 가운데 마그네슘 원자를 중심으로 모여 있습니다. 그리고 한쪽에 긴 꼬리가 있지요. 햇빛이 가운데 마그네슘 원자에 부딪치면, 그 에너지를 흡수해서 전자가 하나 튀어나옵니다. 그로부터 광합성이 시작되는 것이지요. 


엽록소 구조식 @Public Domain (Wikipedia)






적혈구는 엽록소의 친척


그런데 잠시 우리 몸의 적혈구를 한 번 볼까요? 적혈구가 하는 일은 산소를 운반하는 것입니다. 산소는 물에 잘 녹질 않습니다. 따라서 혈액을 타고 이동하기가 힘들지요. 그래서 적혈구가 산소 분자를 잡아다가 이동시켜줘야 온몸에 산소가 원활하게 공급됩니다. 적혈구에서 산소분자를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헤모글로빈인데, 적혈구 하나는 헤모글로빈 분자를 약 2억 8천만 개 정도 가지고 있습니다. 헤모글로빈 하나는 산소분자 4개를 운반할 수 있으니 결국 적혈구 하나가 11억 개가 넘는 산소분자를 운반하는 셈이지요. 


헤모글로빈 구조식 @Public Domain (Wikipedia)


헤모글로빈의 구조는 위의 그림과 같습니다. 그런데 모양이 어째 엽록소와 비슷하지요. 엽록소의 꼬리 부분을 빼고 보면 헤모글로빈과 닮아도 아주 많이 닮았습니다. 특히 질소를 한 꼭짓점으로 하는 오각형의 탄소화합물 네 개가 가운데 철 원자를 중심으로 모여 있는 모양은 완전 판박이지요. 가운데만 마그네슘 대신 철이 들어갈 뿐입니다. 


무척추동물 중에는 헤모글로빈 대신 헤모시아닌으로 산소를 운반하는 녀석들도 있습니다. 헤모시아닌의 경우 헤모글로빈과 거의 똑같고 가운데 금속 원자만 철 대신 구리를 씁니다. 







비타민도 친척?


그리고 우리 몸에 꼭 필요한 비타민 중 비타민 B12의 구조도 비슷합니다. 아래 그림에서 보다시피 헤모글로빈의 철이 들어간 자리에 코발트(Co)가 들어간 것만 다르죠. 


비타민 B12 구조식 @Public Domain (Wikipedia)

뿌리혹박테리아에는 레그헤모글로빈이란 단백질이 있습니다. 앞 글자 leg만 빼면 그냥 헤모글로빈이죠. 구조도 거의 같습니다. 특히나 철 원자를 중심으로 한 인접 부위는 헤모글로빈과 완전히 같지요. 레그헤모글로빈의 역할도 산소를 운반하는 것이죠. 














포르피린 구조 

피롤(pyrrole) 구조식 @Public Domain (Wikipedia)

엽록소, 헤모글로빈, 비타민 B12와 레그헤모글로빈에서 나타나는 공통 구조를 조금 자세히 보면 피롤(pyrrole)이라는 화합물 네 개가 묶인 모습입니다. 피롤은 탄소 원자 네 개와 질소 원자 하나가 오각형을 이루는 화합물입니다. 이 피롤 네 개가 질소 원자 부분을 안쪽으로 하여 탄소 원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사각형 모습을 띠게 된 것을 포르피린(porphyrin) 구조라고 합니다.

포르피린 구조식 @Public Domain (Wikipedia)


이 포르피린 구조의 한 가운데 금속 원자가 하나 들어갈 수 있고, 이 금속 원자가 산소와의 친화력이 아주 큽니다. 즉 산소 운반에 특화된 것이죠. 그런데, 이 포르피린 구조는 언뜻 보기에도 굉장히 복잡한데 다양한 생물체에서 이들이 발견되는 건 아마 이들 모두의 공동 조상(?)이 있었기 때문으로 추정됩니다. 












산소를 없애라 


이 분자구조의 탄생은 아마도 체내 산소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시작이었을 겁니다. 초기 지구 생물들은 대기나 바닷물 속에 산소가 없는 환경에서 살았습니다. 하지만 세포내의 물질대사 과정에서 활성 산소가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오늘날 사람도 인체 내 활성 산소 문제로 골치를 앓듯이 당시 생물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산소는 다른 원자나 분자와의 결합력이 아주 강해서 세포 내의 소기관 등을 파괴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내부에서 생긴 혹은 외부에서 유입된 산소 원자를 처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포르피린이 이 산소를 자신의 금속 원자와 결합시켜, 제거한 것이죠. 그리고 세포막으로 이동하여 산소를 배출합니다.








포르피린 구조의 재활용


아데노신삼인산(ATP)은 일종의 에너지 화폐인데 아데노신이인산(ADP)과 인산기가 결합해서 만들어집니다. 모든 생물은 이 ATP를 이용해서 각 부분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합니다. 초기 생물들은 포도당과 같은 탄수화물을 분해하는 과정에서 나온 에너지를 이용해서 ATP를 합성합니다. 


처음 포도당을 분해해서 에너지를 만들던 생물들은 포도당 한 분자에서 3~4개의 ATP밖에 생산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진화가 이루어지면서 미토콘드리아라는 세포내 소기관이 산소를 이용해서 같은 포도당 한 분자에서 34개의 ATP를 생산하게 됩니다. 엄청난 비약이지요. 이제 오히려 산소가 필수적인 요소가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많은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게 되자 먼저 생물들은 세포의 크기를 키우고 세포내 다양한 소기관들도 만들게 됩니다. 수입이 늘면 집도 늘리고 가전제품도 늘리는 거나 마찬가지지요. 


포유류의 다양한 적혈구 @Public Domain (Wikipedia)


a 적혈구의 겉모습 
b 적혈구들이 겹쳐진 옆모습
c 적혈구 안으로 물이 들어가서 부푼 모습
d 적혈구 안에 물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 세포막이 터진 모습 








다시 생물들은 단세포에서 다세포 생물로 진화합니다. 농업 생산량이 늘어나 한 명의 농민이 여러 명을 먹여 살릴 수 있게 되면서 다른 직업들이 늘어나듯이 한 세포가 생산하는 에너지가 많아지면 다양한 기능을 하는 세포가 늘어나게 됩니다. 이렇게 다양한 형태의 세포가 모여 하나의 생물체를 이루자 이제 산소를 공급하는 일도 누군가는 맡아 하게 되었습니다. 

생물체는 포르피린 구조를 재활용합니다. 이전에는 생체 내의 해가 되는 활성산소를 세포 밖으로 제거하기 위해 이용되었습니다만, 이제 산소를 온몸의 세포로 공급하는 일을 맡게 된 것이지요. 적혈구의 헤모글로빈이 대표적이죠. 물론 피가 푸른 동물들은 헤모글로빈이 아닌 헤모시아닌이 운반체입니다. 








빛에서 전자로 


그런데 이 포르피린 구조의 한 가운데 있는 금속 원자는 산소와의 친화력도 강하지만 빛을 받으면 전자를 내놓는 성질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튀어나온 전자는 빛으로부터 받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지요. 아주 먼 옛날 지금 식물의 최초의 조상은 이렇게 탄생합니다. 어느 날 황화수소가 잔뜩 주변에 널려있는 온천 주변 혹은 해저 화산 주변에 있던 세균 안에서 역사적인 사건이 벌어집니다. 세포안의 포르피린 구조 한 가운데 금속이 햇빛을 받게 되었고 거기서 전자가 빠져나옵니다. 탈출한 전자가 마침 주변에 있던 황화수소(H2S)를 분해하고 이 과정에서 수소의 전자가 다시 탈출합니다. 마침 세포막 주변이었지요. 황은 세포막 밖으로 빠져나가고 전자를 잃은 수소 원자핵과 전자가 여러 화학반응 끝에 주변에 있던 ADP와 인산기를 연결하여 ATP를 만듭니다. 생물 입장에서는 뜻하지 않던 횡재를 한 셈이지요. 그런 일이 자주 발생하자 이 생물은 빛과 포르피린 구조를 이용하여 ATP를 합성하는 과정을 보다 정교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진화합니다. 

녹색황세균 @Public Domain (Wikipedia)


황세균이 바로 그 주인공이지요. 우리가 알고 있는 광합성의 탄생은 이렇게 산소를 제거하기 위해 사용하던 포르피린 구조를 재활용한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황세균이 진화를 거듭하여 마침내 지금의 식물이 되었습니다. 포르피린의 재활용이 아니었으면 지금의 생태계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을 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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