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공상과학(SF ) 문학의 거장으로 꼽히는 아이작 아시모프(1920~1992)가 올해 1월 탄생 10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그는 1년에 9권 넘게 약 50년 동안 460권이 넘는 책을 썼습니다. 아시모프는 과학저술가와 SF 소설가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셰익스피어 문학 입문》, 《성경 입문》, 《로마 제국》, 《신화의 탐구》, 《프랑스의 역사》와 같이 인문학적인 책도 많이 펴냈습니다.
아시모프는 1920년 1월 2일 소련 페트로비치에서 태어나, 3살 때 가족을 따라 미국에 이민을 떠났습니다. 컬럼비아대학교에서 화학과 생화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고, 보스턴대학교에서 생화학과 교수로 임용됐습니다. 39살 때 전업 작가가 되기 위해 교수직을 그만두었는데, 그가 소설 습작을 시작한 것은 10대 초반이었습니다. 또 SF 작가로 등단한 것은 불과 19살 때의 일입니다.
미국의 저명한 SF 작가 이블린 델레이는 “아이작, 당신이 쓰면 그게 바로 SF 에요.” 라고 말할 정도로 아이작 아시모프는 SF 의 거장인데요. 특히 은하계 전체로 인류의 문명이 펼쳐진 시점을 가정해 은하제국의 흥망을 다룬 대서사시 《파운데이션 시리즈》는 SF 문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또 1977년에는 아시모프가 편집 고문으로 참여한 《아시모프 SF 매거진》이 창간됐습니다. 그는 1942년 단편소설 《런 어라운드⋅Run around》에서 ‘로봇 3원칙’을 소개합니다.
제1원칙. 로봇은 인간을 위험에 처하게 하면 안 된다.
제2원칙. 1원칙에 어긋나지 않는 한 로봇은 인간의 명령을 들어야 한다.
제3원칙. 1, 2원칙에 어긋나지 않는 한 로봇은 자신을 지켜야 한다.
아시모프는 로봇의 지능을 프로그램할 때 이들 원칙을 지키면 안전하고 인간의 통제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실제로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은 우리나라의 산업표준으로 쓰고 있습니다. 2006년 산업자원부(현 산업통상자원부)가 ‘로봇 안전행동 3대 원칙’이란 이름으로 서비스 로봇이 갖춰야 할 안전지침을 만들어 KS규격*으로 제정한 것입니다. 또 인간보호와 명령복종, 자기보호가 기본인 아시모프의 3원칙의 실효성을 위해 세칙(細則)이 추가됐습니다.
*한국산업표준(Korean Industrial Standards, KS)은 대한민국 산업 전 분야의 제품 및 시험, 제작 방법 등에 대하여 규정하는 국가 표준이다.
제1원칙(인간보호)은 △충돌, 끼임 등의 기계적 안전 △감전, 과열 등의 전기적 안전 △전기자기파 적합성 등 환경적 안전을 확보하도록 한 규정입니다. 제2원칙(명령복종)은 △인체공학적 설계 △사용자 편의 인터페이스 구현도 고려하도록 한 내용입니다. 제3원칙(자기보호)은 △로봇의 기계적 강도 유지 △비허가 사용자에 의한 시스템 및 네트워크 보안 기능 확보 등을 담보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로봇들은 이미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에 따라 제조되고 있습니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SF 소설 가운데 백미는 단연 《200살 맞은 사나이》 입니다. 1976년 처음 발표된 이 소설은 SF 문학계의 최고 권위인 네뷸러상 Nebula Award 과 휴고상 Hugo Award 을 연이어 휩쓸었습니다. 1999년에는 크리스 콜럼버스가 감독을, 로빈 윌리엄스가 주연을 맡아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 Bicentennial Man 으로 재탄생했습니다.
영화는 미국 뉴저지주를 배경으로 가사도우미 로봇 NRD-114가 한 가정에 배달되면서 시작됩니다. 가족들은 이 로봇에 앤드류라는 애칭을 붙여주는데, 인간을 완벽하게 닮은 로봇을 지칭하는 ‘안드로이드’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앤드류는 가사, 청소 등 모든 집안일을 척척해 냅니다. 영화에서 가정한 가사도우미 로봇의 출현 시기가 2005년인 것을 고려하면 아시모프의 예측은 너무 낙관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기술의 고도화는 부수적인 부분이었습니다. 작가는 로봇의 구동시스템 혹은 효율적이고 작아진 배터리 같은 기술적 진보보다 ‘자아’를 지닌 로봇이 탄생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아시모프가 창조해낸 로봇은 단순히 인간의 명령이 있을 때만 행동하지는 않았습니다.
가사도우미 로봇 앤드류는 인간의 명령 없이도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감상했고, 목공예품이나 시계 등을 만들어 팔았습니다. 처음에는 주인의 배려로 은행 계좌를 개설해 자신이 만든 물건의 판매 수익을 저축했습니다. 어느 날 앤드류는 로봇으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권리를 지녔음에도 자신을 인간이 되도록 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그가 지적 능력이 있어도 영원한 생명을 가진 로봇을 인간으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거절합니다.
그러자 앤드류는 번즈 박사에게 자신이 늙어 죽을 수 있도록 프로그램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이어 법정에 다시 자신을 인간으로 인정해 달라고 소송을 제기합니다.
전 점점 늙어서 쇠약해지고 있어요. 여러분들처럼 곧 기능이 정지할 겁니다. 로봇이라면 영원히 살 수 있죠. 하지만 저는 영원히 기계로 사느니 인간으로 죽고 싶습니다.
법정에서 “왜 죽고 싶은가?”는 질문에 앤드류가 한 답변입니다. 결국 그는 ‘인권’을 얻습니다. 이처럼 법적으로 완벽한 인간이 되어 숨을 거둡니다.
아시모프가 던졌던 인간과 로봇의 경계, 인간으로서의 자유와 권리 등의 질문은 로봇의 3원칙과 더불어 우리가 깊게 고민해 봐야 할 문제 같습니다.
<참고문헌>
이종호, 2016, 로봇은 인간을 지배할 수 있을까?, 북카라반, 35-36pp.
전승민, 2017, 휴보, 세계 최고의 재난구조로봇, 예문당, 45-46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