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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의 과학 Apr 24. 2020

고속도로 위 세이렌의 정체?


바다의 요정 세이렌(Siren 또는 Seiren)은 누구라도 한 번 들으면 황홀경에 빠질 정도로 아름다운 노랫소리를 가졌습니다. 세이렌 자매들의 목소리에 매혹된 선원들은 스스로 바다에 뛰어들어 목숨을 잃었지요. 세이렌의 노랫소리는 항해하는 선원들에게 죽음을 알리는 신호였던 셈입니다. 위험을 미리 알리는 소리 신호를 뜻하는 단어, 사이렌(siren)은 역설적이게도 세이렌의 전설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오늘날에는 바다가 아닌 도로에서 세이렌의 연주를 들을 수 있습니다. 물론, 운전자를 위험에 빠뜨리는 소리가 아니라 위험으로부터 지켜주는 소리입니다. 


오디세우스와 세이렌 by John William Waterhouse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운전자를 구하는 세이렌,

멜로디 로드


도로 위에서 우리를 위험에 빠뜨리는 존재는 바로 ‘잠’입니다. 졸음운전은 교통사고 사망원인의 90%를 차지하며, 과속이나 음주운전보다 치사율이 높습니다. 시속 100km로 주행할 때, 단 2초만 졸아도 56m를 운전자 없이 차가 움직이는 것과 같으니까요. 특히 길고 어두운 터널 안을 오래 달리다 보면 나도 모르게 졸음이 쏟아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자동차 사고는 일반 구간에서도 위험하지만, 터널 안에서는 더 큰 피해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긴 터널 안에서는 운전자의 졸음운전을 방지하기 위해 여러 장치가 설치되어 있어요. 멜로디 로드도 그중 하나입니다.


인제 양양터널 멜로디로드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터널인 인제양양터널을 지나다 보면 귀에 무척이나 익숙한 음이 들립니다. 영상 속의 멜로디가 무엇인지 눈치채셨나요? ‘도도솔솔 라라솔-’ 모차르트의 <작은별 변주곡>이에요. 스피커를 틀어놓은 것도 아닌데 누가 이 연주를 하는 걸까요?




자동차 바퀴와 

도로의 마찰이 만들어내는 소리


연주자의 비밀을 파헤쳐보기 전에 소리란 무엇인지 알아보겠습니다. 우리가 어떤 물체를 두드리면, 탄성에 의해 물체의 표면이 진동합니다. 아래의 영상처럼 쇠그릇에 물을 담고 두드리면, 표면이 진동하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요. 이 진동은 기체・액체・고체의 매질을 통해 전파되어 우리의 고막을 진동시킵니다. 청세포는 고막으로 전달된 진동을 전기 신호로 변환해서 뇌로 보내고, 뇌가 전기 신호를 종합해서 우리는 그것을 소리로 인식하게 돼요. 


소리 파동
그루빙

음악 소리가 들리는 구간의 도로를 자세히 살펴보면, 차의 진행 방향에 가로로 파인 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도로에 홈을 파는 것을 ‘그루빙(grooving)’ 시공이라고 합니다. 가로 방향 그루빙 도로에서는 자동차 바퀴와 지면 사이의 마찰이 커지고, ‘드르륵- 드르륵-’거리는 마찰음이 발생합니다. 이 구간에서 운전자는 소리와 진동으로 졸음운전을 방지하고, 주의를 환기할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그 소음이 다소 거슬리기도 하지요. 공학자들은 이 소음을 듣기 좋은 소리로 바꾸기 위해 고민했습니다. 어떻게 해서 그저 소음에 불과한 마찰음을 멜로디로 바꿀 수 있었을까요?






소음을 멜로디로 바꾸는 원리,

홈의 간격


비법은 주파수에 달려 있습니다. 소리는 곧 파동이기 때문에 고유의 주파수를 가지고 있어요. 주파수는 1초 동안 음파가 진동한 횟수로, 단위는 ㎐(헤르츠)를 사용해요. 낮은 소리는 작은 주파수를, 높은 소리는 큰 주파수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도의 주파수는 261.6㎐이고 라의 주파수는 440㎐입니다. 진동수를 조절하면 음의 높낮이를 만들 수 있는데, 그루빙 도로에서는 홈의 간격을 달리하여 진동수를 조절할 수 있습니다. 


그루빙 간격 = 자동차의 속력 ÷ 주파수 


시속 100㎞로 달리는 도로에서 ‘도’ 음을 내기 위해서는 그루빙 간격이 얼마가 되어야 하는지 계산해 볼까요? 우선 시속을 초속으로 바꾸어 줍니다. (100㎞/h = 27.78m/s) 그리고 자동차의 속력을 원하는 음의 주파수로 나눕니다.


27.78 m/s ÷ 261.6㎐ = 0.106m = 10.6㎝ 


다시 말하면, 1초에 움직이는 거리 27.78m 안에 261.6개의 홈을 파주는 것이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홈 하나의 간격이 10.6㎝가 되어야 하고요. 같은 방법으로 계산하면 솔(392.6㎐)의 홈 간격은 7.1㎝, 라(440㎐)는 6.3㎝가 돼요. 


또 홈의 개수 통해 박자를 조정할 수 있습니다. 사분음표(♩) 한 박자의 길이가 약 0.75초 일 때, 일정한 간격의 홈을 20m 정도 늘어놓는 방식입니다. 홈 하나의 폭을 좁게 파느냐 넓게 파느냐에 따라서 볼륨도 달라집니다. 보통은 홈 하나당 2.4㎝의 넓이로 시공을 합니다. 


재미있고도 유익한 멜로디 로드에도 치명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지정된 속도보다 너무 느리게 가거나 도로가 마모되면 아름다운 멜로디 대신 늘어진 테이프나 귀신 울음처럼 무서운 소리가 들리게 됩니다. 그래서 현재 멜로디 로드가 설치된 곳은 아주 제한적이지요. 고속도로의 세이렌, 멜로디 로드가 안고 있는 문제들이 잘 해결되어 더 많은 도로에서 흥겨운 멜로디를 듣는 날이 올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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