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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의 과학 Apr 22. 2020

진화의 단위는 ‘유전자’다

1973년 영국 보수당의 노동정책에 반발해 석탄을 캐던 광부들이 파업을 일으켰습니다. 이 때문에 전력 생산에 차질이 생겼고, 영국 전역이 비상사태를 맞이합니다. 옥스퍼드대학교 동물학과에서 귀뚜라미 수컷의 구애 노래를 연구하던 어느 조교수는 당분간 실험을 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생각했습니다. “전기가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고심 끝에 그는 양초 불빛 아래서 타자기로 책을 쓰기 시작합니다. 1966년 처음 동물행동학을 학생들에게 가르칠 때 만든 강의록이 토대가 됐습니다. 두 장의 원고를 썼을 때 아쉽게도 전기가 들어오면서 글쓰기는 거기서 멈췄습니다. 하지만 1975년 안식년을 맞아 서랍 속에서 잠자던 원고는 집필에 속도가 붙었습니다. 그는 농담처럼 “내 베스트셀러”라고 말하며 글을 썼는데, 35세였던 1976년 책이 출판되자 이는 현실이 됐습니다. 그 책은 바로 리처드 도킨스를 과학계 스타로 만든 《이기적 유전자 The Selfish Gene》 입니다.


리처드 도킨스 by Liberal Democrats ⓒ CC BY-ND 2.0 (flickr) / 리처드 도킨스 시그니처 by Richard Dawkins derivative work ⓒ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그 저자들은 전적으로, 완전히 틀렸다


The Selfish Gene by Oxford University Press (Wikimedia commons)


《이기적 유전자》는 과학책이지만 깊은 철학을 담고 있습니다. 도킨스에 따르면 어떤 행성에서 지적 생물이 성숙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생물이 자기의 존재 이유를 처음 알아냈을 때입니다. 만약 우주의 다른 곳에서 지적으로 뛰어난 생물이 지구를 방문했을 때, 그들이 우리의 문명 수준을 파악하기 위해 맨 처음 던지는 질문은 “당신들은 진화를 알아냈는가?”일 것이라고 합니다.


지구의 생물체는 자신들 가운데 하나가 진실을 밝혀내기 전까지 30억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자기가 왜 존재하는지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도킨스는 그 진실을 밝혀낸 사람의 이름이 찰스 다윈(1809~1882년)이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과학법칙인 진화를 통해 ‘생명에는 의미가 있는가?’, ‘우리는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같은 가장 근본적인 질문에 대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를 통해 이기주의와 이타주의의 생물학을 탐구하고자 했습니다. 이 주제는 우리 사회생활의 모든 면, 즉 사랑과 미움, 싸움과 협력, 주는 것과 훔치는 것, 탐욕과 관대함 등이 모두 관련돼 있습니다. 콘트라 로렌츠의 《공격에 대하여》, 로버트 아드리의 《사회 계약》, 이레노이스 아이블-아이베스펠트의 《사랑과 미움》에도 같은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도킨스는 말합니다. 


“이 책들의 문제점은 그 저자들이 전적으로, 완전히 틀렸다는 데에 있다. 이들이 틀린 이유는 어떻게 진화가 진행되는지 잘못 이해했기 때문이다.” 


과연 무엇이 도킨스와 다른 생각일까요?







불멸의 진화 단위 ‘유전자’
  

일벌이 침을 쏘는 행위는 벌집의 침입자를 막아내는 효과적인 수단입니다. 그러나 침을 쏘는 행위는 자폭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침을 쏘는 것과 동시에 생명 유지에 필요한 신체 기관의 일부가 몸 밖으로 빠져 버립니다. 그 벌은 얼마 지나지 않아 죽게 됩니다. 벌의 자살 행위가 집단의 생존에 필요한 벌집을 지켜냈을지 몰라도 일벌 자신은 그 이익을 누리지 못합니다. 
  
둥지나 체내에 알을 품고, 엄청난 비용을 감수하면서까지 새끼를 낳아 먹이를 주는 것, 목숨을 걸고 포식자로부터 새끼를 지켜내는 일도 이타적인 행동입니다. 땅 위에 둥지를 트는 새는 여우와 같은 포식자가 접근하면 일명 ‘혼란 과시 distraction display’ 행동을 합니다. 어미새는 한쪽 날개가 꺾인 양 몸짓하며 여우를 둥지에서 먼 곳으로 유인합니다. 그리곤 공중으로 뛰어올라 여우의 습격을 피합니다. 새끼의 목숨을 구하긴 했지만 자칫 자신이 여우의 먹이가 될 수 있는 위험한 일입니다. 
  
이전의 과학자들은 집단 전체의 생존이라는 측면에서 일부 개체들의 이타적 행동이 전체 집단의 생존력을 높여주기 때문이라는 ‘집단선택설’을 지지했습니다. 흔히 ‘큰 것을 위해 작은 것을 희생한다’는 논리로, 생물체의 본능이라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도킨스는 가장 작은 것에 주목했습니다. 집단도 종도 개체도 아닌 유전자, 즉 DNA 분자들이 길게 늘어선 물질로 눈길을 돌렸습니다. 유전자만이 어떤 의미에서 영원한 생명을 지니기 때문입니다. 
  
유전자는 복제본의 껍질을 바꾸면서 수십, 수백만 년 동안 안정적으로 존재해 왔습니다. 자연선택이 작용해 더 ‘이기적’인 유전자가 널리 퍼지는 발판이 됩니다. 반면 개체나 집단은 짧게 나타났다 멸종할 수 있습니다.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이나 사막의 모래바람처럼 덧없는 존재입니다. 소크라테스는 독배를 마시면서 함께 사라졌지만, 소크라테스의 유전자는 그 후손을 통해 불멸의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연선택의 단위는 ‘유전자’란 뜻입니다.







종교는 밈 meme 이 공적응된

안정한 세트다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 ⓒ Public domain(Wikimedia commons)


도킨스는 진화의 단위를 유전자라고 봤기 때문에 유전자를 둘러싸고 있는 껍질인 생명체를 ‘생존 기계’라고 부릅니다. 기계라는 단어를 쓰는 이유는 동물이란 단어를 쓰면 식물이 제외될 수도 있고, 일부 사람의 머릿속에서는 인간까지 제외시키기도 합니다. 이처럼 생존 기계는 모든 동식물, 박테리아, 바이러스, 인간을 포함한 개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속한 인간이라는 종은 다른 생존 기계와 달리 특이한 것이 없을까요? 도킨스는 인간의 특이성을 문화라는 한 단어로 요약했습니다. 그는 유전적 방법이 아닌, 모방을 통해 전해지는 문화 유전자를 '밈(meme)' 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유전자를 통해 어떤 정보가 전달되는 게 아니라 문화, 철학, 사상 같은 인문학적인 요소도 적절한 환경이 주어지면 다른 생명체에 의해 모방되고 또다시 복제돼 후대에 전달된다는 개념입니다. 
  
도킨스는 신에 대한 믿음도 하나의 밈이라고 설명합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내 머리에 ‘번식력 있는 밈’을 심어 놓는다는 것은 곧 그 밈이 내 뇌에 기생하는 행위입니다. 바이러스가 숙주 세포에 기생하면서 그 유전 기구를 이용하는 것과 같이 나의 뇌는 그 밈의 번식을 위한 운반자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수백만 전 세계 사람들은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이라는 밈을 지닌 숙주일 수 있습니다.
  
혹자는 신이라는 밈의 생존 가치에 대한 설명이 논점을 흐린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도킨스는 종교도 생물학적 이점으로 설명합니다. 유전자 단위 진화는 뇌를 만들어내면서 최초의 밈이 발생할 수 있는 ‘수프’를 마련해 주었다는 주장입니다. 
  
육식 동물의 유전자 풀에서는 이, 발톱, 소화관, 감각기관이 하나의 세트를 이루어 서로 적합한 형태로 진화합니다. 마찬가지로 건축, 의식, 율법, 음악, 예술, 문서화된 전통 등이 조직화된 종교는 밈이 공적응된 안정한 세트로 간주할 수 있는 ‘사회문화적 유전자’인 것입니다.




<참고문헌>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 이상임 옮김, 2006, 이기적 유전자, 을유문화사, pp.38-335.
·전중환, 2017, 어떻게 유전자가 ‘이기적’일까, 과학동아 11월호, pp.138-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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