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Extinction)이란 한 종(species)의 모든 생물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사건을 말합니다. 바퀴벌레를 예로 들자면 우리 집의 바퀴벌레뿐만 아니라 윗집, 아랫집, 서울, 대한민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바퀴벌레가 모두 사멸하는 것이죠. 한두 마리가 아니라 수백만, 수천만 마리의 동일 종이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모두 사라지는 현상이니 대단히 큰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멸종은 지구 생태계에서 아주 흔한 사건입니다.
지구 생태계에는 수천만 종, 수억 종의 생물들이 각기 자기 자리에서 나름의 역할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만 환경의 변화나 경쟁 등에 의해 한 해에도 수십, 수백 종의 생물들이 멸종의 길로 들어섭니다. 그러나 대멸종은 다른 상황입니다. 아주 짧은 시간에 지구상의 전 생물종 중 다수가 사라진 사건이지요. 4억 6천만 년 전 고생대가 시작된 이래로 총 다섯 번의 대멸종이 있었습니다. 과연 어떤 이유로 그런 일들이 벌어진 걸까요?
4억 6천 5백만 년 전에서 2억 5천만 년 전까지의 시기를 고생대라고 합니다. 고생대는 다시 캄브리아기, 오르도비스기, 실루리아기, 데본기, 석탄기, 페름기로 나눕니다. 이중 오르도비스기와 실루리아기 사이에 첫 번째 대멸종이 있었습니다. 오르도비스기는 아직 생물 대부분이 바다에서만 살던 시기입니다. 육지에는 세균 등 아주 소수의 생물만 간헐적으로 살던 시기지요. 이 오르도비스기 말에 당시의 초거대 대륙인 곤드와나 대륙이 남극으로 이동합니다. 현재의 남극대륙과 비슷한 위치로 간 것이지요. 하지만 그 크기는 남극대륙의 세 배가 넘었습니다.
곤드와나 대륙이 남극에 가까워지면서 대륙은 얼음으로 뒤덮입니다. 이 또한 현재의 남극과 비슷한 경우지요. 푸른 초원과 숲은 태양 에너지를 흡수하지만 하얀 얼음은 햇빛을 반사합니다. 더구나 그 면적은 현재의 남극보다 훨씬 컸지요. 지구가 흡수하던 태양 에너지 중 일부가 곤드와나 대륙의 얼음으로 인해 우주로 다시 반사됩니다. 이에 따라 지구 전체의 평균 기온이 내려가고 기온이 내려가면서 곤드와나 대륙 주변의 바다도 얼기 시작합니다. 곤드와나 대륙 주변의 바다 표면이 얼음으로 뒤덮이니 반사되는 햇빛도 더욱 늘어나지요. 이에 따라 지구의 평균 기온이 더 내려가게 됩니다.
온대지역의 해수 온도가 내려가면서 빙하기에 접어들기 시작하고 결국 바다 생물 중 많은 수가 멸종합니다. 일부는 열대 지역으로 피하지만 열대 지역의 해수 온도도 내려가니 그곳의 생물들도 다수가 멸종됩니다. 결국, 50%에 달하는 생물이 멸종됩니다. 전 생물의 절반이 사라진 것이지요. 일부 과학자들은 오르도비스기 말 멸종에 대해 초신성 폭발에 의한 감마선 때문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만 그 증거가 부족합니다.
고생대의 두 번째 대멸종은 데본기말에 일어났습니다. 이때는 전 생물의 70%가 사라졌습니다. 데본기말 대멸종은 근 천만 년에 걸쳐 일어난 아주 긴 과정이었습니다. 원인으로는 두 가지 이유를 추정합니다.
먼저 육상 식물의 번창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당시 육상에 식물이 먼저 상륙하여 열심히 광합성을 한 결과 대기 중 산소 농도는 높아지고 이산화탄소 농도는 낮아졌습니다. 이산화탄소는 지구에서 빠져나가는 에너지를 잡아두는 온실 가스 역할을 하는데 그 농도가 낮아지니 자연스레 지구의 평균 온도가 내려갑니다. 첫 번째 대멸종과 마찬가지로 빙하기가 찾아온 것이지요. 여기에 육상식물에 의해 암석이 풍화되면서 많은 양의 무기염류가 바다로 흘러갑니다. 무기염류가 많아지면 바다에선 적조 현상이 활발해집니다. 이에 따라 바닷물 중의 산소 농도가 낮아지고 해양 생물 중 많은 수가 멸종했다는 추정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해퇴현상입니다. 쉽게 말해서 해안선이 바다 쪽으로 물러나는 현상이지요. 이렇게 해안선이 바다 쪽으로 물러나면서 바다의 얕은 부분이 많이 줄어듭니다. 바다는 대부분 수심 3~4km에 이르는 심해저평원으로 이루어져 있고 육지를 둘러싸고 아주 얇은 띠 모양의 대륙붕이 있는데 해퇴현상으로 이 대륙붕 중 많은 부분이 육지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삶의 터전이 사라지자 해양 생물이 멸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해양 생물의 대다수는 수심 200m 이내의 얕은 바다에서 살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대멸종은 고생대의 마지막 시기인 페름기와 중생대 첫 시기인 트라이아스기 사이에 일어납니다. 페름기 대멸종이라 불리는 이 사건은 대멸종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컸습니다. 해양 생물의 96%, 육상 척추동물의 70% 이상이 사라졌습니다. 얼마나 커다란 사건인지 비유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느 대초원 지역에 사슴, 말, 노루, 소, 염소, 양, 토끼, 낙타, 기린, 코뿔소 등 열 종류의 초식동물들이 각각 10만 마리씩 총 100만 마리가 살고 있었다고 가정합시다. 육상 척추 동물 중 70%가 사라진 것이니 사슴, 말, 노루, 소, 염소, 양, 토끼 7종류, 70만 마리가 모두 떼죽음을 당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살아남은 낙타, 기린, 코뿔소는 모두 무사했을까요? 분명 운 좋은 낙타, 기린, 코뿔소가 각각 1,000~2,000마리 정도씩 겨우 살아남아 멸종을 면한 것일 겁니다. 총 100만 마리 중 기껏 해봤자 5,000마리 정도 살아남은 것이죠. 이는 개체 수로 따지면 0.5%만 살아남고 99.5%가 죽은, 엄청난 규모의 멸종 사건입니다.
페름기 대멸종의 원인은 시베리안 트랩입니다. 페름기 대멸종 시기의 지구에는 모든 대륙이 모여 하나의 커다란 초대륙인 판게아를 구성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판게아의 유라시아 대륙에 위치한 화산 지대를 시베리안 트랩이라고 부르지요. 페름기 당시, 이 시베리안 트랩에서 엄청난 규모의 화산 분출이 일어납니다. 이때 흘러나온 용암의 양만 미국 전체를 600m 두께로 덮을 정도였습니다. 이 규모의 화산 분출이면 빠져나오는 화산 가스도 엄청난 양입니다.
그리고 화산 가스에서 가장 많은 것은 수증기이고 그 다음은 이산화탄소입니다. 이때 빠져나온 이산화탄소의 온실 효과로 인해 지구의 평균 기온이 높아졌습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전 세계 바다의 심해에 묻혀있던 메테인 가스가 녹아 대기 중으로 빠져나옵니다. 대기 중의 메테인 가스는 산소와 결합하여 이산화탄소와 물이 됩니다. 이로 인해 지구 평균 기온이 더욱 올라가지요. 바다의 평균 수온도 같이 올라가는데 수온이 올라가면 산소가 잘 녹지 못합니다. 이에 의해 해양 생물 중 상당수가 산소호흡을 할 수 없어 멸종하게 됩니다. 육지에서도 당시 시베리안 트랩 폭발에 의한 화산재로 인한 죽음 이후 다시 온난화에 의해 해수면이 상승하고, 산소 농도가 낮아지는 등의 영향으로 수많은 생물이 멸종하게 되었습니다.
중생대는 트라이아스기, 쥐라기, 백악기의 세 시기로 나눕니다. 이 중 트라이아스기와 쥐라기 사이에 일어난 사건이 네 번째 대멸종입니다. 고생대 말에 지구는 모든 대륙이 모여 만들어진 초거대대륙 판게아가 형성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판게아가 갈라지기 시작합니다. 판게아가 갈라지는 경계에는 맨틀에서부터 올라온 용암이 분출됐지요. 그 결과가 지금 대서양의 북극에서부터 남극까지 이어진 대서양 중앙 해령입니다. 지구의 북극과 남극까지 이어진 거대한 화산지대가 시베리아트랩보다 더하게 용암분출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에 따른 이산화탄소 농도의 증가, 메탄 가스의 분출 등이 이어지면서 거대한 대멸종이 일어나지요.
이 대멸종도 결국 마지막은 산소 농도의 감소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대멸종이 현재의 포유류와 새를 만든 원인이기도 합니다. 당시 산소 농도가 감소하자 많은 생물에서 이에 적응하는 진화가 일어납니다. 그중 공룡은 폐와 이어지는 공기주머니, 기낭을 만들게 됩니다. 폐에서 기낭으로 공기를 돌려 최대한 많은 산소를 흡수하고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려고 한 것이지요. 그 결과 공룡은 이후 자신의 몸 내부에 여러 개의 기낭을 가지게 되었는데 현재까지 살아남은 공룡인 새들은 기낭으로 인해 하늘을 나는 데 아주 유리해집니다. 그 결과 이전 하늘을 지배하던 익룡을 몰아내고 하늘의 지배자가 되지요. 포유류는 다른 방식으로 이에 적응합니다. 원래 폐는 스스로 수축하거나 확장할 수 없어 폐를 둘러싼 갈비뼈와 근육으로 숨을 쉽니다. 그러나 이 정도로 만족할 수 없었던 포유류는 가슴과 배 사이의 가로막과 그 주변의 근육을 강화해서 가로막을 아래위로 움직여 호흡을 더 효율적으로 만들게 됩니다. 흔히 갈매기살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이 부위를 가리키는 것이지요.
마지막 다섯 번째 대멸종은 중생대와 신생대 사이에 일어납니다. 바로 공룡이 사라졌다는 유명한 대멸종, 백악기 대멸종이죠. 하지만 공룡만 멸종한 건 아닙니다. 공룡을 포함하여 당시 하늘을 지배했던 익룡을 포함하여 육상 생물 종의 75%가 멸종했습니다. 바다에서도 모사사우루스나 장경룡 등 해양 파충류와 암모나이트 등이 사라졌습니다. 원래 백악기 대멸종에 대해서 과학자들은 인도 데칸고원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일어난 데칸 트랩을 원인으로 들었습니다. 1만 세제곱미터에 달하는 엄청난 용암이 뿜어져 나왔고 인도 서부의 고원에 쌓인 용암의 두께만 2,400m에 달할 정도였죠. 또한 비슷한 시기에 해퇴현상이 일어나 해수면이 낮아집니다. 즉 이전의 페름기 대멸종이나 트라이아스기 대멸종과 비슷한 이유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알바레즈 부자가 이에 이의를 들고 나옵니다.
아버지 알바레즈는 물리학자였고, 아들 알바레즈는 지질학자였죠. 이들은 백악기와 신생대 제3기가 만나는 틈새 지층에서 이리듐이 광범위하게 발견된 것을 통해 운석 충돌을 제안합니다. 원래 지구에 있던 이리듐은 아주 옛날 지구가 거대한 마그마 덩어리였을 때 지구 중심으로 내려가 지구의 핵에 주로 존재하고 지표면에는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운석은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아 운석에는 이리듐이 상대적으로 풍부하게 존재합니다. 이런 이리듐이 전 세계의 중생대와 신생대 사이 지층에서 풍부하게 발견되었으니 이는 운석 충돌의 결과라는 것이죠. 나중에 과학자들은 실제로 운석이 충돌한 흔적을 멕시코 유카탄반도의 칙슬루브에서 발견합니다. 이를 통해 운석 충돌이 백악기 대멸종의 원인이라는 것이 밝혀졌지요. 하지만 아직도 일부 과학자들은 데칸 트랩에 의해 이미 대멸종이 진행되고 있었고 운석은 마지막 결정타 정도였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대멸종은 지구 생명의 역사를 확연하게 바꾸는 역할을 합니다. 그 과정에서 옛 주인공은 사라지지만 그를 잇는 새로운 주인공이 탄생하지요. 고생대 말에 일어난 페름기 대멸종으로 삼엽충이 사라졌습니다. 삼엽충만이 아니라 고대 바다를 지배했던 수많은 어류가 사라졌지요. 하지만 그 덕분에 중생대 바다의 지배자로 파충류가 나타납니다. 어룡, 장경룡, 모사사우루스 등 다양한 해양 파충류가 대멸종의 빈틈을 타고 새로 등장하지요. 중생대 중간의 트라이아스기 멸종도 마찬가지 역할을 했습니다. 아주 작은 공룡만 존재했던 이전 시기와 달리, 트라이아스기 대멸종으로 커다란 육상 척추동물이 육상의 지배자가 됩니다. 또 백악기 대멸종으로 새를 제외한 모든 공룡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포유류가 메우게 되었지요.
이렇듯 대멸종은 한 편으로는 종말이지만 또 다르게는 새로운 생명이 만개할 기회를 주기도 했습니다. 지구 생태계는 생산자와 1차 소비자, 2차 소비자, 분해자 등으로 이어지는 촘촘한 그물을 짜서 균형을 유지합니다. 대멸종은 그물의 상당 부분을 허물어 버리지만, 생명의 진화는 손상된 부분을 복구하면서 이전과 다른 새로운 모양과 색깔로 지구 생태계를 다시금 복구하지요.
그렇다면 제6의 대멸종은 언제 일어날까요?
과학자들은 바로 지금이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과학자들이 밝힌 바에 따르면 지금 지구상에서 생물이 멸종하는 속도는 과거 가장 거대한 규모였던 페름기 대멸종보다 더 빠르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원인은 바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인간이 도시를 만들고, 경작지를 개간하고, 소와 양을 사육할 초지를 만들면서 혹은 대지와 바다를 오염시키면서 생물들의 살 자리가 점점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인간 혼자 사는 지구는 얼마나 외로울까요? 아니 그 이전에 지구 자체가 인간만을 위해 존재하는 행성이 아닐 터인데 우리가 이렇게 다른 종들을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 온당한 일일까요? 지금 진행되고 있는 제6의 대멸종을 막기 위해 우리 각자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깊게 고민해볼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