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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의 과학 Jul 06. 2020

과학이 밝혀낸 유령선
‘플라잉 더치맨’ 전설의 진실

항구에 정박하지 못하고 영원히 바다를 표류해야 하는 저주에 걸린 유령선, ‘플라잉 더치맨 (Flying Dutchman)’에 대한 이야기는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의 상상력과 공포심을 자극했습니다. 플라잉 더치맨 설화는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가 황금기를 맞이했던 17세기에 기원하였는데, 실존 인물과 사건까지 더해져 서양 문화권 전반에 널리 퍼졌습니다. 특히 뱃사람들은 플라잉 더치맨을 죽음과 파멸의 징조라고 여기며 극도로 두려워했지요. 이 이야기를 단순히 미신으로 취급하기에는 너무 많은 실제 목격담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유령선이 정말로 존재하는 걸까요? 그 진실을 과학으로 알아보겠습니다. 
     

플라잉 더치맨  by Charles Temple Dix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빛의 굴절에 의해 나타나는 광학 현상 


플라잉 더치맨은 다양한 형태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목격자들은 그 배가 으스스한 빛을 내거나, 하늘에 떠 있거나, 파도 속을 떠다니거나, 형체를 끊임없이 바꾸거나, 혹은 뒤집어진 채로 매달려 항해했다고 진술했지요. 이들이 거짓말을 하거나 헛것을 본 걸까요? 아닙니다. 당시 선원들이 본 플라잉 더치맨은 유령 같은 초자연 현상이 아니라, 빛의 굴절에 의해 나타나는 광학 현상입니다.  


빛은 직진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고, 진공에서 1초당 약 30만km를 움직일 수 있습니다. 만약 빛이 어떤 물질을 통과하게 되면 속도가 느려지게 됩니다. 그 속도는 물질의 종류에 따라서 달라져요. 빛이 서로 다른 두 물질의 경계를 지날 때 진행 방향이 바뀌게 되는데, 이것을 굴절(refraction)이라고 합니다. 굴절 현상은 일상에서 쉽게 관찰할 수 있어요. 물에 담긴 연필을 옆에서 보면 꺾여 있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면 연필의 끝이 원래 위치보다 수면에 가깝습니다. 공기와 물의 경계면에서 빛의 진행 방향이 구부러지는데, 우리의 눈은 빛이 직진한다고 인식하기 때문이에요.


빛의 굴절: 물에 연필을 넣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면, 연필의 끝이 원래의 위치 X보다 수면에 더 가까운 곳 Y점에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공기와 물의 경계에서 빛이 굴절하지만(빨간색 실선), 우리는 빛이 직진한다고(검은색 점선)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by Theresa_knott CC BY-SA 3.0 (Wikipedia)    






균일한 물질 내에서도

굴절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런데 굴절 현상이 대기 중에서도 발생할 수 있어요. 균일한 물질을 지나는데 어떻게 빛의 진행 방향이 꺾이는 걸까요? 온도와 압력에 따라서 공기의 밀도가 바뀌기 때문입니다. 진공은 아무 방해물이 없는 고속도로와 같아요. 만약 여기저기 장애물이 있는 도로를 달려야 한다면 도착까지 걸리는 시간이 늘어나겠지요? 동일한 물질이라도 장애물이 덜 빽빽한 상태, 즉 밀도가 낮은 상태일수록 빛은 진공에서의 속도에 가까워지게 됩니다. 온도가 높고, 압력이 낮을수록 공기의 밀도는 감소합니다. 밀도가 다른 공기의 층이 생기게 되면, 그 경계면에서 빛이 굴절하지요. 


   






경이로운 거울, 신기루 현상 


태양이 내리쬐는 사막에서는 지면에 가까울수록 공기의 온도가 뜨겁고 위로 올라갈수록 상대적으로 차가워요. 그 결과로 밀도가 다른 공기층이 연속적으로 형성되는데, 이 공기층을 지난 빛이 아래로 볼록한 곡선처럼 휘어집니다. 이때 관찰자는 원래의 물체 아래쪽(지면)에 상하좌우가 반전된 도립상(inverted image)을 보게 되고, 마치 그곳에 물이 있다고 착각하게 됩니다. 이런 현상을 아래 신기루(inferior mirage)라고 불러요. 사막의 오아시스나 뜨거운 도로 위의 물웅덩이가 바로 아래 신기루의 예입니다. 


사막에서의 아래 신기루 CC BY 2.0 (flickr)


아래 신기루와 위 신기루 현상의 원리: 이해를 돕기 위해 과장되게 그린 그림입니다. 실제로 이렇게 큰 곡률을 갖지는 않습니다.  


극지방이나 바다에서도 신기루 현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바다에서는 해수면 쪽에 가까울수록 온도가 낮아지기 때문에 사막과 달리 빛이 위로 볼록하게 휘지요. 그래서 하늘에 거울이 있는 것처럼 상하좌우가 뒤집힌 상이 보이게 됩니다. 원래 물체 위쪽에 상이 생긴다고 하여 위 신기루(superior mirage)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플라잉 더치맨 목격담에서 뒤집힌 배가 항해한다는 표현은 위 신기루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지요.   


위신기루: 원래 물체(배)가 뒤집힌 이미지가 배 바로 위에 형성되어 있습니다. by Juris Seņņikovs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요정 모르가나의 마법,

파타 모르가나 현상


보통 신기루는 물체의 위나 아래쪽에 하나의 도립상이 생기는 광학 현상을 지칭합니다. 그런데 여러 개의 도립상과 정립상(erect image, 물체와 상하좌우의 배치가 같은 상)이 교차하고, 수직으로 늘어나 복잡한 이미지를 형성하는 신기루 현상도 있습니다. 이런 신기루를 파타 모르가나 (Fata Morgana)라고 해요. 파타 모르가나는 이탈리아어로 요정 모르가나라는 뜻이에요. 전설에 따르면, 모르가나는 마법을 통해 공중에 떠 있는 성이나 가짜 육지를 만들어 선원들을 유혹하고 죽음으로 이끌었다고 합니다. 메시나 해협 (Strait of Messina, 이탈리아반도와 시칠리아섬을 가르는 좁고 긴 바다)에서는 종종 탑, 배, 궁전 심지어는 도시가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물론 거기에는 어떠한 도시나 배, 건물이 존재하지 않았지요. 사람들은 이러한 현상을 요정 모르가나가 마법을 부린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요정 모르가나 : 아서왕의 이복동생인 모르가나는 마법으로 공중에 떠 있는 성이나 가짜 육지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by Frederick Sandys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파타 모르가나는 위 신기루의 일종으로, 아직 그 원리에 대한 설명이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일관되지는 않아요. 대기에 기온 역전이 있을 때 발생하고, 아래쪽의 찬 공기와 위쪽의 따뜻한 공기 사이의 관(duct)이 굴절 렌즈 역할을 한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됩니다. 파타 모르가나는 매우 불안정해서 그 이미지가 빠르게 움직이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파도 속을 떠다니거나, 형체를 끊임없이 바꾸는 유령선은 바로 파타 모르가나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지요. 극지방뿐만 아니라 봄이나 여름철 잔잔한 날씨의 해안가와 호숫가에서도 파타 모르가나 현상을 자주 관찰할 수 있어요. 



파랄론 제도(Farallon Islands)의 광학 현상: 오른쪽에 삽입된 3개의 이미지의 맨 위에서부터 루밍, 타워링, 파타 모르가나 현상 by Brocken Inaglory CC BY-SA 3.0 (Wikipedia)  






Looming(루밍, 떠오름) 현상과 

Towering(타워링, 길어 보임) 현상 


빛의 굴절은 신기루 외에도 다양한 광학 현상을 만들어 냅니다. 루밍 (looming)은 원래의 물체가 원래의 위치보다 떠올라 보이는 현상이에요. 유령도시나 공중도시, 으스스한 빛을 내거나 하늘을 항해하는 유령선이 바로 루밍 현상의 예이지요. 타워링 (towering)은 물체가 원래 자리에 있지만, 실제 크기보다 더 크게 보이는 현상이고요. 타워링 현상에 의하면 아주 작은 돛단배도 커다란 함선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루밍과 타워링은 신기루 현상과는 다릅니다. 신기루 현상은 원래 물체에 대한 이미지와 도립상을 포함하여 2개 이상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데, 루밍이나 타워링은 1개의 이미지만 보이거든요. 루밍, 타워링, 신기루 현상은 복합적으로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훨씬 더 복잡하고 경이로운 장면들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맨하탄의 루밍 현상: 붉은색 점선 안쪽에 도시의 모습이 보입니다. by Waterson1986 CC BY-SA 3.0 (Wikimedia Commons)     





신기루는 착시가 아니다 


흔히 사람들은 신기루를 잡을 수 없는 환상이나 착시라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사전이나 책에서도 틀린 정의를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신기루는 착시와 완전히 다릅니다. 착시는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뇌가 착각하는 것을 말하지만, 신기루는 물리적으로 실재하는 현상이거든요. 따라서 신기루 현상은 착시와 달리 사진이나 영상으로 기록될 수 있습니다.루밍이나 타워링 같은 광학 현상도 마찬가지예요. 과거 뱃사람들이 본 유령선 플라잉 더치맨은 인간의 공포심이 만들어 낸 환영이나 뇌의 착각이 아니라, 빛의 굴절이 만들어 낸 관측 가능한 광학 현상입니다.      





 


[참고문헌] 
1. Andrew T Young, An Introduction to Mirages, 
  
https://aty.sdsu.edu/mirages/mirintro.html
2. Young, A. T., & Frappa, E. (2017). Mirages at Lake Geneva: the fata morgana. Applied optics, 56(19), G59-G68.
3. Mirages and other atomospheric optic phenomena, 
   
http://hyperphysics.phy-astr.gsu.edu/hbase/atmos/mirage.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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