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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의 과학 Aug 24. 2020

인류 최초 달 착륙의 주인공,
닐 암스트롱

닐 암스트롱 ⓒPublic domain(Wikimedia commons)



“휴스턴 나와라. ‘고요의 바다’에 독수리가 착륙했다. 

이제 사다리를 타고 아래로 내려갈 것이다. 
개인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커다란 도약이다.”
     


   

1969년 7월 21일 미국의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이 달에 첫 발걸음을 딛으며 한 말입니다. 그의 달 착륙은 달토끼와 같은 전래동화가 말해주듯 감성적이었던 우주의 모습을 인류의 생활 무대로 바꾼 역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아쉽게도 암스트롱은 2012년 8월 25일 심장관상동맥협착증 수술로 인한 합병증으로 향년 82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미국 오하이오주 와파코네타에서 태어나 퍼듀대에서 항공공학을 공부했습니다. 남캘리포니아대학에서 항공우주공학 석사를 마친 뒤1949년부터 1952년까지 해군 비행사로 군복무를 했는데, 이때 우리나라 6․25전쟁에 참전해 78회의 출격 기록을 남겼습니다. 주로 동해와 북한 원산항 근처를 중심으로 임무를 수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전역한 뒤 1955년 미항공우주국(NASA)의 전신인 국립항공자문위원회(NACA)의 연구조종사로 합류한 암스트롱은 캘리포니아 에드워즈 공군기지가 있는 NACA의 고속비행연구소에서 일하게 됩니다. 이곳에서 X-15 등 시속 약 6437km로 비행하는 고속 항공기 개발에 참여합니다. 그는 미국 최초의 우주비행사 앨런 셰퍼드가 1961년 5월 첫 우주비행에 성공한 이듬해인 1962년 NASA 제2기 우주비행사에 선발됩니다.          





      

‘달 궤도 랑데부’ 방식으로

우주선의 무게와 연료를 줄여라  


이륙하는 아폴로11호의 모습 ⓒPublic domain(Wikimedia commons)

“우리는 달에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우리는 1970년대가 오기 전에 달에 갈 것이며, 또 다른 탐사 임무를 찾을 것입니다. 이 일이 쉬워서가 아니라 어려운 일이라는 점을 알기 때문입니다.”    

1961년 9월 12일 텍사스 휴스턴에 있는 라이스 스타디움에서 미국 대통령이던 존 F. 케네디는 연단에 올라 4만여 명의 청중들에게 유인 달 탐사 계획을 선포합니다. 미국과 구(舊) 소련의 냉전이 한창이던 1957년 10월 4일 소련은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를 지구궤도에 쏟아 올리는데 성공합니다. 이에 미국은 해군의 뱅가드 로켓을 같은 해 12월 서둘러 발사했지만, 로켓은 발사대에서 폭발해 버렸습니다.  


이처럼 미국은 구겨진 자존심을 펴기 위해 소련의 과학기술을 뛰어넘는 목표로 ‘유인 달 탐사’를 설정하게 됩니다. 하지만 달에 도착한 뒤 지구로 되돌아오는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우주선을 타고 달에 착륙했다가 다시 이륙해 지구로 귀환하기에는 연료와 산소가 너무 많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아이디어가 달 궤도 랑데부 (LOR․Lunar orbit rendezvous) 방식이었습니다. 


달의 랑데부 방식을 제안한NASA의 항공우주공학자 존 후볼트 ⓒPublic domain(Wikimedia commons)

    

달 궤도 랑데부 방식은 사령선과 착륙선이 하나의 몸체로 이뤄진 우주선으로 지구에서 출발합니다. 우주선이 달 궤도에 도착하면 비행사 3명 중 1명은 사령선에 남고, 나머지 2명은 착륙선을 타고 달 표면에 내려갑니다.     

우주비행사 2명이 달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사령선의 조종사는 달 궤도를 돌면서 이들을 기다립니다. 그 뒤 우주비행사 2명이 달 탐사의 임무를 마치면 착륙선을 타고 이륙해 공중에 대기 중이던 사령선과 만나 연결됩니다. 즉 사령선과 착륙선이 달 궤도에서 랑데부하고, 도킹을 통해 착륙선에 사령선으로 우주인이 모두 옮겨타면, 착륙선은 버리고 지구로 돌아오는 방식입니다.     


이 방식은 로켓의 무게와 연료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었고, 지금까지도 유인 행성 탐사를 위한 교과서적인 개념입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그 누구도 우주 공간에서 랑데부와 도킹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총알보다 10배 이상 빠르게 비행하는 우주선 2대가 같은 궤도로 진입해 가깝게 접근한 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통로를 연결하는 고난도의 비행술이 요구됐습니다.     


NASA는 지구궤도에서 랑데부와 도킹을 훈련하는 ‘제미니 계획’을 착수했습니다. 마침내 1966년 3월 16일 제미니 계획의 8번째 우주선인 ‘제미니 8호’가 랑데부와 도킹에 처음 성공했습니다. 이후 ‘제미니 12호’까지 발사가 이어지면서 달을 향한 인류의 준비는 착실히 이어집니다.     






암스트롱 혼자 달에 다녀온 것은 아니었다
  

1969년 달 탐사 당시 아폴로 11호에 승선한 우주인들. 왼쪽부터 닐 암스트롱, 마이클 콜린스, 버즈 올드린 ⓒ Public domain(Wikimedia commons)


제미니 계획에 이어 본격적인 ‘아폴로 계획’이 수립됩니다. 그런데 시작부터 비극적인 사고가 발생합니다. 1967년 1월 발사대에서 모의 카운트다운을 하던 ‘아폴로 1호’의 조종실에 화재가 나면서 비행사 3명 전원이 목숨을 잃었고 사령선이 전소됐습니다.     


이 때문에 화재 발생 가능성을 낮추기 위해 선실의 대기 구성을 바꿨고, 소화기와 응급 산소마스크를 비상용 장비에 포함시켰습니다. 이때 비행사들의 모습을 지구에 생중계로 전송할 수 있는 카메라도 처음 달았습니다. 이러한 준비를 거쳐 1968년 12월 21일 발사된 아폴로 8호가 인간을 태우고 달 궤도를 돌아 지구로 돌아오는데 처음으로 성공합니다.  


발사를 준비하는 아폴로8호의 승무원 ⓒPublic domain(Wikimedia commons)

    

마침내 NASA는 1969년 7월 16일 달 착륙을 목표로 아폴로 11호를 쏟아 올립니다. 엄청난 화염을 분사하며 3,800톤짜리 로켓은 9초 뒤 하늘로 치솟아 지상에 있던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졌습니다. 아폴로 11호는 2시간 반 동안 지구를 돌다가 분속 650km에 이르러 지구의 중력을 벗어나 달로 향하기 시작했습니다. 1, 2, 3단 로켓이 떨어지자 남은 것은 로켓 꼭대기에 붙어있던 사령선 콜럼비아호였습니다. 원뿔 모양의 컬럼비아호는 달착륙선 독수리호를 앞머리에 달고 날아갔습니다.    


컬럼비아호는 지름 3.3m, 높이 3m 크기의 원뿔 모양으로 꽤 넓은 편이지만 계기판과 간이 침대 등이 꽉 들어차 우주비행사들은 움직일 틈없이 비좁았습니다. 그 틈바구니에서 선장 닐 암스트롱과 선원 에드윈 올드린, 마이클 콜린스 세 사람이 쉴새 없이 계기들을 살피고 점검했습니다.     


나흘 뒤 컬럼비아호는 달 궤도에 들어갔습니다. 컬럼비아호는 속도를 낮추면서 달 궤도를 따라 돌았고, 열한 바퀴째 돌 때 암스트롱과 올드린이 우주복을 입고 착륙선인 독수리호로 옮겨갔습니다. 콜린스는 독수리호가 임무를 마치고 올 때가지 컬럼비아호에 남아 달 궤도를 돌았습니다.     


달 표면에 내린 ‘첫 번째 인류’(First man)가 될 기회는 단 한 사람에게만 주어졌습니다. 바로 닐 암스트롱입니다. 그는 달 표면에 첫 발자국을 남긴 최초의 인간이었습니다. 그 뒤를 따라 달 착륙선의 계단을 내려간 버즈 올드린은 평생 ‘두 번째 사람’(Second man)으로 불려야 했습니다. 훗날 올드린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를 옮아 맨 그 수식어 때문에 좌절감을 느낄 때도 있었다”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암스트롱은 1971년 NASA에서 은퇴하기 전까지 항공분야 부책임자로 일했습니다. 그 뒤 신시내티대학에서 교수로 근무하며 연구와 후학양성에 몰두했습니다. 암스트롱은 스스로 영웅으로 불리기를 꺼려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진정한 영웅이었습니다. 이제 인류는 달이 아닌 다른 행성에서 더 큰 꿈과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도2018년 마련된 제3차 우주개발 진흥 기본계획에 따라2022년에 달 궤도선, 2030년에 달 착륙선 발사를 목표로 하고 있답니다.      







<참고문헌>  

ㆍ마이클 콜린스 지음, 조영학 옮김, 2019, 달로 가는 길, 사월의 책, pp1-616.  

ㆍ서동준, 2019, 달부터 화성까지, 과학동아7월호, pp108-111.  

ㆍ이주희, 2012, 닐 암스트롱, 영원의 바다로 떠난 달의 영웅, 과학동아10월호, pp.120-121.  

ㆍ이병철 편저, 2002, 세계탐험사100장면, 가람기획, pp1-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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