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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의 과학 Jan 27. 2021

존재하는 듯 존재하지 않는 자, 좀비

영화 <부산행>에서 시작된 한국형 좀비의 인기는 최근 드라마 <킹덤>으로 이어지면서 좀처럼 식을 줄 모릅니다. 외국에서 시작된 말이지만 이제는 ‘K-좀비’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우리나라가 좀비 캐릭터의 수출국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사랑스러운(?) 좀비의 모습과 공격성의 원인이 무엇인지 생물학적으로 알아봅시다. 과연 좀비는 존재할 수 있는 존재일까요?
* 스포일러가 있으니 영화 <부산행>을 안 보신 분은 참고하세요! 



워킹 데드 아닌 좀비 워킹


어눌하게 움직이는 시체 정도로 여겨졌던 좀비

좀비(Zombie)는 ‘살아있는 시체’를 뜻하는 말로 아이티 지역의 부두교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부두교의 사제에게 영혼을 빼앗긴 노예가 좀비죠. 물론 영화처럼 시체가 좀비가 되거나 다른 사람에게 물려서 좀비가 되는 건 아닙니다. 단지 제사장이 만든 약으로 인해 판단력이 떨어져 노예처럼 된 사람일 뿐입니다. 


좀비가 대중문화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조지 로메로 감독의 영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Night of the Living Dead, 1969> 입니다. 이 영화로부터 <워킹 데드 The Walking Dead, 2010~>에 이르기까지 좀비는 괴상한 소리를 내며 어눌하게 움직이는 존재로 묘사되었습니다. 생각 없이 움직이는 시체라고 여겼으니 그렇게 움직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영화 <부산행>에서는 그러한 생각을 버리고 굉장히 난폭하고 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으로 좀비가 묘사되면서 관객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좀비가 공격적인 이유는 흥분 때문?


좀비가 어눌하게 움직이건 난폭하고 빠르게 움직이건 그들의 모든 행동은 신경계와 관련 있습니다. 부두교의 주술사는 약을 사용해서, 영화에서는 바이러스가 신경계를 지배하여 사람을 마음대로 조종하였지요. 특히 아이티의 주술사는 복어 독인 테트로도톡신을 이용했어요. 


신경세포가 자극을 받으면 세포막 안팎의 Na⁺-K⁺(나트륨–칼륨 이온) 농도가 변합니다. 이온 농도가 변해서 세포막의 전위(전압)가 변하는 것을 흥분이라고 불러요. 흥분이 전달되는 것을 흥분 전도라고 하는데, 드라마에서 환자의 심장에 전극을 붙여 놓고 심장이 뛰는지 모니터로 관찰할 수 있는 것도 흥분이 전달될 때 전위가 변화하기 때문입니다. 


심장의 움직임 역시 세포막의 전위 변화로 인한 것이다


테트로도톡신은 세포막의 출입구인 이온 통로를 막아서 Na⁺이 제대로 이동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테트로도톡신에 중독되면 흥분 전도가 안 되니 근육이 마비되어 행동이 이상하게 보이는 겁니다. 심하면 호흡 곤란으로 죽을 수도 있어요. 이처럼 주술사나 마녀, 제사장과 같은 사람들은 신경전달을 방해하는 약을 사용해 환각이나 환청을 만들어냈어요.


테트로도톡신의 작용 기전



대뇌를 장악하는 좀비 바이러스


그렇다면 <부산행>에서 좀비 바이러스(종류가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가 신경계를 지배한 경우를 살펴볼게요. 좀비에게 물린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 망각하고 오로지 다른 사람을 물기 위해 사납게 날뛰는 좀비가 됩니다. 좀비와 열심히 싸우던 상화(마동석 분)와 석우(공유 분)도 좀비에게 물려 결국 좀비가 되지요. 상화와 석우는 좀비가 되는 과정에서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하지만 어쩔 수 없이 좀비가 되어 버립니다. 


여기에서 더 이상 자신을 통제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은 좀비 바이러스가 대뇌를 장악했다는 의미입니다. 언어, 기억, 판단, 감정 등 고등정신 기능을 담당하는 대뇌를 장악하는 순간 몸은 좀비 바이러스의 수중으로 넘어갔다고 할 수 있지요. 영화 속 좀비 바이러스는 참으로 대단한 녀석입니다. 신체에 침입하자마자 신속하게 대뇌겉질을 장악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두께가 2~4mm 정도밖에 안 되는 얇은 대뇌겉질(피질)을 점령하면 덩치 큰 상화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았던 겁니다.


영화 <부산행>의 한 장면Ⓒ 네이버 영화 ‘부산행’

대뇌겉질은 감각기관에서 오는 정보를 처리하는 감각령, 들어온 정보를 분석하고 종합, 판단하는 연합령, 근육에 명령을 내리는 운동령의 세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감각령은 구심성 신경세포, 연합령은 연합 신경세포, 운동령은 원심성 신경세포로 되어 있습니다. 좀비가 사람을 보거나 소리를 듣고 반응하려면 감각령의 신경세포는 살아있어야 합니다. 눈과 귀가 있다고 보고 들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보고 듣는 것은 뇌에서 합니다. 


감각령, 운동령, 연합령으로 이루어진 대뇌겉질


사람을 보고 공격하려고 달려가기 위해서는 연합령과 운동령도 작동해야 합니다. 사람의 근육은 대뇌의 명령으로 움직이는 수의근(맘대로근)과 명령 없이 자동으로 움직이는 불수의근(제대로근)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먹이를 보고 달려가려면 대뇌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수의근을 작동시켜야 하므로 운동신경도 살아있어야 하는 겁니다. 





전두엽이 무너지면 공격성이 살아난다


좀비는 인간과 다르게 대단히 공격적인 성향을 지닙니다. 공격성은 대뇌의 전두엽과 연관이 깊습니다. 따라서 좀비 바이러스는 전두엽 부위를 망가뜨려 사람을 난폭하게 만든 것으로 볼 수 있지요. 더 나아가 바이러스는 시상하부와 편도, 해마 등 대뇌변연계를 조종했을 겁니다. 대뇌변연계는 식욕이나 성욕과 같은 기본적인 욕구 외에도 분노와 같은 감정과 연계된 부분이기 때문에 이곳에 문제가 생기면 온순하던 사람도 폭력적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대뇌변연계의 위치


좀비 바이러스는 최대한 사람을 공격적으로 만들기 위해 신경전달 물질의 분비에도 관여할 것입니다. 공격성을 억제하는 세로토닌과 감마아미노뷰티르산(GABA)의 수치를 낮추고, 도파민이나 노르아드레날린, 글루타메이트와 같이 공격성을 촉진하는 신경전달 물질의 수치를 높였을 겁니다. 


이렇게 보니 죽은 채로 돌아다니는 서양 좀비보다는 감염에 의한 K-좀비가 좀 더 그럴 듯 합니다. 하지만 영화 <조선명탐정: 흡혈괴마의 비밀>에서 좀비를 ‘존비(存非)’라고 불렀던 것처럼 존재하지 않는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과연 이렇게까지 사람의 신경계를 꿰뚫고 조종할 수 있는 어마무시한 바이러스나 세균은 존재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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