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서로 소통하며 살아갑니다. 최근 코로나로 인해 서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긴 어렵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이 완전히 분리된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다. ‘온택트(Ontact)’라는 새로운 방법으로 여전히 타인과 소통하며 지내고 있지요. 일반적으로 소통은 정신적 교류나 감정적 교감이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하지만 소통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 의미는 훨씬 넓습니다. 소통은 인간이 사회를 만들면서 생긴 것이 아니라 생물이 탄생하면서부터 시작된 아주 오래된 자연 현상으로, 생물의 공통적인 특성입니다.
‘우리나라’, ‘우리 국민’, ‘우리 학교’ 등등 우리라는 말은 같은 무리에 속한 사람들을 서로 엮어 주는 역할을 합니다. 우리라는 말 속에는 나와 너를 구분하겠다는 의미가 들어있으며, 우리를 어떻게 정의하는지에 따라 사회의 모습이 달라지지요. 생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생물의 역사는 자기(self)를 비자기(non-self), 즉 주변과 구분되면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생물은 세포(cell)로 되어있습니다. 세포는 생물 구성의 기본 단위로 모든 생명 활동은 세포 단위에서 벌어집니다. 40억 년 전 지구의 바다는 너와 나의 구분이 없었습니다. 생명체의 재료가 되는 유기화합물 분자들과 물이 뒤섞인 화합물 죽이나 다름없는 상태였지요. 그러던 중 유기화합물이 모여 코아세르베이트나 마이크로스피어와 같은 덩어리를 형성하게 됩니다. 물이나 아미노산으로 둘러싸인 화합물 덩어리에 불과했던 이 물질들이 세포로 진화할 수 있었던 것은 인지질로 된 2중 층의 막이 생겨났기 때문이에요. 인지질 막 구조로 인해 내부 물질이 안정적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되면서 원시적인 생명체로 발전하게 된 것입니다.
원시 생명체가 원핵세포에서 진핵세포로 발전할 수 있게 된 것도 막 덕분입니다. 세포는 핵막으로 구분된 핵의 유무에 따라 원핵세포와 진핵세포로 나뉩니다. 원핵세포는 ‘원시적인 핵’을 가진 세포, 진핵세포는 ‘진짜 핵’을 가진 세포라는 뜻을 가져요. 원핵세포를 가진 생물은 세균, 즉, 박테리아로 대부분 단세포 생물들이기 때문에 식물이나 동물 그리고 인간과 같은 다세포 생물은 복잡한 일을 할 수 있는 진핵세포가 필요합니다. 진핵세포는 DNA를 핵막으로 둘러싼 것을 비롯해 골지체, 소포체, 리소좀, 액포 등이 모두 막을 가지고 있어요. 막으로 구획을 나눈 뒤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있게 되었지요.
기업은 성장하기 위해서 외부에서 인재를 영입하거나 합병합니다. 세포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주 오래전 진핵세포는 세균이었던 미토콘드리아와 엽록체를 영입했어요. 지금도 미토콘드리아와 엽록체는 세포 내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DNA를 가지고 있고, 다른 소기관과 달리 두 겹의 막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외부 영입의 흔적이랍니다. 따라서 외부의 세균이 세포 속으로 들어와 공생하면서 오늘날의 진핵세포가 된 것이지요.
인재 영입은 진핵세포의 능력을 한 층 업그레이드시켰습니다. 엽록체는 식물에 광합성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었어요. 광합성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된 식물은 스스로 영양분을 합성하는 독립영양생물이 될 수 있었습니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호흡 능력을 주었어요. 세포 내에서 산소를 이용해 에너지를 만들어내고 이산화탄소를 방출할 수 있게 된 것이죠. 쉽게 말하면 미토콘드리아를 영입한 덕분에 우리는 숨 쉬며 살 수 있게 되었다는 겁니다.
사람의 몸에는 서로 다른 역할을 하는 200가지 이상의 세포가 무려 30조 개나 있어요. 지금 글을 읽고 있는 이 순간에도 우리 몸에서는 수억 개의 세포가 새로 생겨납니다. 물론 그만큼 죽기 때문에 총량이 크게 늘거나 줄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모든 세포가 똑같이 생겨나고 죽는 건 아닙니다. 창자 세포처럼 계속 손상을 받는 세포는 매일 새로운 세포를 만들어내는 반면, 신경세포나 골격 세포처럼 한번 만들어지면 평생 분열하지 않는 세포도 있습니다. 나머지 세포들은 상황에 따라 생겨나거나 죽게 되지요. 그렇다면 그 상황을 어떻게 판단할까요?
많은 세포 중에서 누가 죽고 살 것인지 세포끼리 서로 죽고 사는 것을 결정합니다. 동료 세포에게 죽을 것을 명령한다니 매정하게 느껴질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것은 대를 위한 희생으로, 세포 사이에서는 그러한 약속이 이미 되어있답니다.
엄마 뱃속의 태아의 손가락을 보면 물갈퀴처럼 생겼습니다. 세포분열을 하는 동안 이 물갈퀴처럼 생긴 부분의 세포들은 스스로 죽음을 맞이하고, 비로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손가락 모양이 됩니다. 만일 그 세포들이 죽음을 거부했다면 우린 물갈퀴를 가진 채로 태어날 것입니다.
또한, 우리 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도 필요 이상으로 많았던 신경세포를 적당한 수준으로 제거한 덕분입니다. 개구리에게 꼬리가 없어지는 것도 예정된 세포죽음(apoptosis)의 결과이지요. 세포죽음은 마치 어명으로 사약을 마시는 신하처럼 자살 신호를 받은 세포가 깔끔하게 자살을 받아들이면서 끝납니다. 자살 후 죽은 세포는 분해되어 주변 세포에게 먹힘으로써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되지요.
약속된 죽음 이외에도 DNA가 손상된 세포도 제거됩니다. 손상된 DNA를 가진 세포는 복제과정에서 돌연변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손상된 세포라고 해서 바로 제거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선은 세포분열을 정지시키고 손상을 복구할 시간을 줍니다. 그래도 복구가 안 될 때는 자살 신호가 내려옵니다. 문제는 이 신호를 거부하는 녀석입니다.
다른 세포에서 보낸 신호를 무시하고 멋대로 세포분열을 하는 반란군이 바로 암세포입니다. 암세포는 다른 세포들과 소통을 통해 개체의 생존 모색하지 않고 멋대로 세포분열을 통해 주변을 손상시킵니다.
주변의 세포와 소통을 거부하고 독자적인 행보를 걷는 암세포는 결국 개체를 죽음으로 몰고 가 자신도 파멸하게 됩니다.
암세포처럼 멋대로 행동해서 집단이나 사회에 피해를 주는 대상이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처럼 소통은 세포들의 세계에서도,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도 서로를 위해 꼭 필요한 일입니다.